태어난 죄
지난 2019년 아프리카 돼지 열병 감염과 코로나 감염병을 이후로 전 세계가 동물과 사람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질병과 재난에 주목했다. 세상을 보는 시선이 분명히 그 전과는 달라졌다. 이미 그전부터 경계해야 한다는 사인은 여럿 있었다. 매년 겨울철이면 경보가 뜨는 조류 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부터 메르스(MERS;MERS-CoV)와 사스(SARS;SARS-CoV), 에볼라(Ebola virus) 유행이 지금의 코로나(COVID-19)까지 바통(bâton)을 이어왔다.
영화를 좋아하고 환경에 관심이 많은 부모님 아래에서 자란 나는 어릴 적부터 재난 영화를 좋아했다.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1995년작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아웃브레이크]라는 영화가 있다. 원숭이와 사람 사이에서 감염이 일어나며, 그 경로는 신고되지 않은 원숭이의 대륙 이동이다. 그러다 보니 원인체 찾는데 시간이 걸려 상태는 심각해진다. [컨테이젼]이라는 영화는 많은 주연들이 같은 상황을 서로 다르게 보고 스토리가 진행되는 말 그대로 전지적 시점 비슷한 영화인데 난 둘 다 추천한다. 만약 미리 이 영화들을 봤다면 우린 모두가 공공장소에서 조금 더 개인위생에 신경 썼을 것이라 생각한다(나는 실제로 어릴 적부터 대중교통을 타고 나면 꼭 손을 씻어야 마음이 편했다).
어쨌든 이런 병들의 시작이 동물한테서 온다는 이유로 원인체(병원체)를 가질 수 있는 동물을 눈살 찌푸리며 보게 만드는 문화를 만들어냈다. 거기에 언론도, 소셜 네트워크도, 프로불만러들도, 손해 보면 안 되는 자영업자들도 모두 목소리를 얹었다. 지금은 코로나 감염병에 묻혀 아프리카 돼지 열병이 조용한 듯 보이지만 이 역시 안 그래도 눈엣가시였던 멧돼지한테 마음껏 볼멘소리를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 감염병(ASF;African swine fever)이 국내로 들어왔을 땐 멧돼지가 전파한다며 감염될 수 있는 지역에서의 총 개체수를 줄여 전파를 줄이고 결국은 막을 수 있게 해 보려고 수렵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방법과 함께 멧돼지가 남쪽으로 이동할 수 없도록 울타리를 치기 시작했다. 두 가지 방법 중 수렵은 아무래도 총을 사용하는 방법이기에 위험하고 언제나 허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스페인과 같은 다른 나라에서 이 감염병(ASF)의 전파를 막아보려는 방법인 울타리를 우리나라에 시도하게 된 건데, 다른 나라들과 우리나라의 차이점이 국내 지형은 산림이 많아 설치에 어려움이 있고, 도로가 사방으로 있어 울타리로 모두 두를 수 없는 것 하며, 중간중간에 사유지가 있으면 울타리가 돌아가야 하거나 어쩔 수 없이 뚫리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 입장에서는 감염의 전파를 막기 위해 사용한 방법을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도록 풀어내어 도입하는 노력을 했어야 했고, 그런 이유로 감염이 생긴 지역 주변으로 전파되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설치했다. 하지만 비특이적으로 감염지역으로 부터 멀리 튀어 감염이 발생하다 보니 '과연 이게 멧돼지가 전파하는 것인가'하는 의문이 생긴 것이다.
감염병이 발생한 지역에는 멧돼지뿐 아니라 다른 동물도 산다. 사람도 살고 있다.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보니 쥐나 새, 차와 사람까지 바이러스를 이동시킬 수 있는 오만가지가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울타리를 뛰어넘거나 파고 빠져나올 수 없는 동물을 제외하면 말이다. 물론 아까 말했다시피 이어지지 않은 부분도 있으니 그쪽으로 나올 수도 있다.
해외 사례에서는 멧돼지에 대한 연구가 꽤 진행된 듯하다. 포획이 자유로운 나라나 아프리카 돼지 열병(ASF)과 같은 감염병이 풍토병인 지역 같은 곳. 그리고 사실 우리나라에서 야생동물에 대한 연구가 그리 역사가 깊지도 않다. 특히 포유류 쪽은 말이다. 그러다 보니 멧돼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것을 최근 정부에서 깨달은 듯하다.
멧돼지가 하루에 최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보통 한 곳에서 지내면 그 서식지는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 어떤 먹이를 선호하고 계절이 바뀌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사람들에겐 관심 밖이다. 담비나 수달과 같은 천연기념물이고 흔하지 않은 귀엽고 멋진 동물이면 관심이 가는 것도 같다. 대체로 언론이나 공공기관에서는 멧돼지나 너구리, 집박쥐와 같은 일반종보다는 법정보호종이나 화면도 잘 받고 사람들도 꺼려하지 않는 생김새의 동물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동물과 사람 사이에서 감염병이 창궐해 전세게적으로 위험해진 뒤로는 조금은 지원이 되는 모양이다(전문가분들의 의견으로는 일반 포유류들의 연구와 조사가 많이 필요하고 또 그를 위한 연구/조사원도 많이 부족하다고 한다).
아무래도 동물의 대한 관심은 사람보다는 떨어지는 게 확실하다. 예전에는 사람이 이 지구에서 살면서 동물이나 공기, 물, 토양 등의 자원을 사용한다고 생각하는 관점으로 연구가 되었기에 동물에게 어떤 능력이 잠재되어 있는지는 볼 수 없었다. 다시 말하자면, 동물을 이익이 있는 자원으로써 사용하는 게 중요했던 거지, 그들을 통해 누가 손해를 보는지나 동물과 환경이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지는 논외였던 것이다.
동물 어느 한 종이 사라지면 생태계 질서가 파괴된다는 걸 깨닫고 난 뒤로는 생태계에 속한 모든 생명이 건강해야 사람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원헬스(One Health)라는 개념이 세워졌다. 지구에 살고 있는 이 모든 생명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쉽다. 그중 하나라도 빠져서 그 역할이 상실되면 톱니 빠진 공장처럼 결국은 모든 게 멈추고 고장 난다. 각종 재난과 감염병에 시달리는 현재 시점에서 여러 나라가 야생동물에 대해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국내에는 아직 포유류를 연구하거나 조사하는 전문가들이 부족하다고 한다. 아직도 모자란 정부의 지원만큼 대중의 관심도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너구리나 고라니, 멧돼지가 수행하는 순기능이 아무리 잘해봐야 보이지 않은 본전이고, 조금만 못해서 민가에 위해를 끼치고 반려동물 근처에 나타나면 절대악처럼 없애달라고 아우성이다.
나는 편중된 입장이 아니라고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편들고 욕하는 입장도 아니다. 양측의 입장이 이해되고 그 사이에서 원만한 이해관계를 만들지 못한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정부에서도 충분히 피해에 대한 지원을 해주려고 노력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지원이 성에 안 찰 수도 있다. 그것도 이해한다. 나 같아도 많이 속상할 것이다.
그래도, 멧돼지가 멧돼지로 선택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산에서 어렵게 먹이를 코 박고 찾아내는 것보다 산 아래 민가에서 가꾼 밭에서 크게 자란 먹이를 먹는 것이 훨씬 쉽다는 걸 학습한 게 의도적으로 악의를 가지고 선택하는 것도 아닐 텐데. 가끔 강경하게 없애달라고 목소리를 높이시는 분들을 보면 참 애석하다. 그런 분들의 입장에서 멧돼지는 멧돼지로 태어난 것만으로도 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