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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Dec 22. 2023

내 아이의 영어공부

교육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

내가 첫 아이를 출산하고 키운 곳은 잠실이다. 잠실은 롯데몰이 거대하게 자리 잡아 마트를 마치 집 앞 편의점처럼 다닐 수 있고, 거기에 사는 아이들은 롯데월드나 아쿠아리움 일 년 회원권을 끊어 놀이터 가듯 갈 수 있다. 그런 잠실에서 처음 아이의 사교육을 시킨 것은 롯데몰 안에 위치한 짐보리라는 영아교육센터였다. 돌쟁이 아이들은 짐보리 센터에 가서 함께 노래 부르고 놀면서 그때부터 사교육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나는 워킹맘이었고, 친정엄마가 아이를 봐주시니 조금은 편하시길 바란다는 핑계로 자연스럽게 사교육의 장에 입성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큰아이가 4살이 될 무렵 우리는 제주로 이주했다. 집 앞에 양배추와 브로콜리 밭 밖에 없는 환경에서 어린이집이 유일한 교육기관이었다. 출퇴근이 힘들기도 했고 사교육을 전혀 시킬 수 없어 1년 뒤에는 제주시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이제 5세가 되었으니 영어를 좀 시켜야 하지 않을까 하 영어도 가르치며 체험이 많은 유치원을 선택했다. 영어 노래도 부르며 뮤지컬 같은 것도 하는 곳이었는데 숙제는 거의 없었다. 그때까지도 아직 아이가 어리니 이 정도면 되겠지라고 여겨 다른 영어노출은 거의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되어 외국인 선생님들이 수업을 하는 영어학원에 등록했다. 그동안 영어 유치원을 다녔다고 이야기하니 원장님이 영어유치원을 나온 아이들이 있는 레벨이 좀 높은 반으로 넣어주셨다. 아이에게도 물어보니 괜찮다고 하였고 나는 아이가 잘 적응할 것으로 생각했다. 몇 주가 지나 아이가 기뻐하며 말했다.

"엄마! 사실은 단어 시험이 매주 있었는데 내가 못 알아들어서 공부를 못했어. 근데, 오늘 친 시험은 그래도 몇 개 맞아서 다행이야!"


숙제나 시험이 있는 줄도 몰랐던 나는 충격을 받아 다시 한번 아이에게 학원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아이는 사실 영어 읽기가 너무 어렵고 수업시간에 거의 알아듣지도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만두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러면 오늘부터 엄마랑 공부를 하자.”

아이는 동의하였다. 퇴근 후 매일 아이를 붙잡고 한 시간씩 그날 배워 온 것을 복습하며 함께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몇 달은 한 시간씩 앉아있는 공부자체를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며 이러다 영어가 싫어지지 않을까 두렵기까지 했다. 나도 퇴근 후 피곤한 상태에서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지만 아이가 그만두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며 몇 달을 견뎠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아이는 이제 읽을 수 있어 숙제도 할 수 있으니 혼자 공부해 보겠다고 했다. 영어 일기 쓰기는 거의 일 년을 함께 했다. 무슨 내용을 쓸 것인지 아이가 결정하면 작문을 도와주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니 영어일기도 혼자 쓸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혼자 숙제도 하고 공부도 하지만 아이의 공부는 계속 체크하고 있고 언제든 아이가 나에게 물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나의 경우는 다행히 서로 잘 적응하고 공부지속도 잘 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엄마가 나처럼 아이 공부를 봐줄 수 있을까? 엄마가 이렇게까지 공부를 봐줘야만 할까?     


독일은 학교 입학 전에 숫자도, 알파벳도 가르치지 못하게 한다는데, 한국은 어떤가. 대치동에서 아이를 교육하고 있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7세 아이들이 5개의 문단으로 영어 에세이를 써낸다고 했다. 이게 과연 정상적인 교육인가. 7세면 한글도 겨우 읽을 나이인데 영어 에세이를 완벽히 쓰는 상태라는 것이 과연 필요한가. 우리나라 고등학생 중에서 한글로 수필을 제대로 쓰는 아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부모들은 어릴 때 공부로 본인이 상처받은 마음, 내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더 잘했으면 하는 바람, 세상을 살아가면서 쓴맛을 경험하며 생긴 불안 등으로 아이들의 교육에 너무 진심이 되어버린다. 더불어 그런 마음들을 자극하는 사교육들과 아이의 수준은 고려하지 않는 공부에 대한 허상들로 자신도 모르게 아이들을 교육으로 고문하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교육에 진심인 엄마로서, 어떤 것이 진짜 교육인지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진짜 필요한 교육을 시켜야지 다짐하면서도 초등학생아이가 중학교 수준의 영어지문을 읽어내는 것을 보며 ‘고등학교 영어는 중학교 때 끝낼 수 있겠는데’ 하는 어이없는 생각을 하는 나를 발견한다.

      

수학은 아직 학원을 안 다녀 집에서 하고 있는 딸이 말한다.

“그 학년 것을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엄마는 뭐가 그렇게 불안해서 빨리빨리가 입에 붙었어?”     

딸의 말에 할 말이 없었다. 그래 공부는 네가 하는 거고, 네가 그렇게 생각하면 자기 학년 공부를 잘해 나갈 텐데, 엄마는 뭐가 그렇게 불안한 걸까. 너희를 믿고,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말해 주어야 하는데, 그런 엄마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 아이들나중에 자신의 어린 시절을 어떻게 기억할까 두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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