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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을 키우고 성장하는 방법

혼자 다루기 어려운 일은 전문가에게 도움 받기

by 오월의 나무
3_실력을 키우는 방법.png 나무 판넬에 처음으로 그린 크레파스화


고등학교 2학년 때 짝꿍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싶어 했다. 내가 자율학습을 가장한 타율학습으로 밤 10시까지 학교 책상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짝꿍은 정규수업을 마치면 곧바로 미술학원에 갔다. 일찌감치 진로를 정한 친구가 멋있어 보였고, 밝은 낮에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이 마냥 부러웠다. 나의 진심 어린 부러움이 부담스러웠던지, 친구는 미술 전공을 준비하는 것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며, 학원 등록비도 비싸고 물감이나 붓 같은 재료들만 해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며 투덜대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유치원 대신 미술학원에 다니던 동네 친구들이 있었다. 노란 베레모를 쓰고, ‘꿀벌 미술학원’ 로고가 박힌 노란색 가방을 메고 다니던 친구가 얼마나 부러웠던지. 당시는 공교육의 범위가 초등학교부터였기 때문에 나는 유치원도 미술학원도 다녀본 적이 없다. 엄마가 반찬값이라도 보태시려고 집에서 부업을 하셨지만 취학 전 사교육을 시킬 형편은 아니었다. 내 기억 속 미술학원은 부잣집 아이들이나 다닐 수 있는, 나 같은 평범한 아이는 함부로 갈 수 없는 그런 느낌으로 기억된다.


처음에 차를 마시러 카페에 갔을 때 제일 눈에 띄었던 그림이 바로 이 그림이었다. 물론 내가 그린 이 그림이 아니라 이보다 열 배, 스무 배는 잘 그린 것이었지만. 연초록 잎들이 안개처럼 가득한 주황색 토분에 노란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초록 잎들 사이로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있는 작고 붉은 꽃송이들이 귀여웠다. 그림에서 온기와 생명력이 느껴졌다. 어디서 구했을까 궁금했는데 카페 주인이 직접 그린 것이라니 더욱 눈길이 갔다. 주인은 미술을 전공한 분이었는데, 카페 안에 걸린 다른 그림이나 인테리어를 모두 손수 작업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카페 안쪽에 공간을 분리하여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나의 호기심 어린 눈빛이 들켰는지, 관심 있으면 둘러보고 구경해도 된다고 했다. 작업실로 들어서자 벽 쪽으로는 각종 화구들과 그림이 가득했고, 가운데는 야트막한 책상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특이한 것은 마치 목공소처럼 다양한 크기의 나무 판들이 이곳저곳에 포개져 있는 것이었다. 흔히 MDF(Medium Density Fiberboard)라고 불리는 합성 목재였다. 생소해서 용도를 물어보니 이곳에서는 그림을 그릴 때, 캔버스 대신 주로 MDF 패널을 활용한다고 했다. 카페에 걸려 있는 대부분의 그림들도 MDF를 활용한 것이라고 하니 놀랍기만 했다. 별도로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가구나 선물 세트, 공사 현장 등에서 버려지는 것이 눈에 보일 때면 하나둘씩 모아둔다는 것이다. 값나가는 캔버스가 아니라 재활용한 MDF가 캔버스를 대신할 수 있다니 아이디어가 신선하고 훌륭했다.


마음에 들었던 그림이 크레파스화였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크레파스로 이런 느낌을 낼 수 있다니, 그림에 문외한으로서 믿기지 않았다. 그저 아이들이나 가지고 노는 재료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멋진 작품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할 수만 있다면 정말 내 손으로 그려보고 싶은 생각이 살짝 들었다. 하지만 나 같은 마이너스의 손이 흉내나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재료비가 은근히 부담일 텐데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 주저했다. 별 기대 없이 강습과정을 물었는데 등록만 하면 모든 재료는 무료로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배우고 싶으면 강습비만 내고 몸만 오시면 된다고. 아, 이럴 수가! 조금도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그날부터 카페 주인은 나의 미술 선생님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카페 화실에서의 시간. 그리고 이날의 설렘을 기억한다. 처음 카페 화실에 등록한 후, 소묘로 두 작품을 연달아 그리면서 나도 무언가 그릴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내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선생님이 알려주신 대로 따라 하다 보니 내가 그린 것이라고 믿을 수 없는 그림이 완성되었던 것이다. 소묘 두 작품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바로 크레파스화를 배우게 되다니. 그것도 내가 카페 화실에 등록하게 된 바로 그 이유였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 시작도 하기 전에 기분은 둥실 날아올랐다.


하지만, 크레파스로 처음 완성한 그림은 나의 기대와 의지를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 앞선 2주 동안 내가 그린 것이 맞나, 나조차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만족스러웠던 결과물과 비교하면 초라했다. 크레파스화는 평소 나의 감각이나 실력을 감추기에는 너무나도 정직한 작업이었다. 전체 과정은 처음 해 보는 것들이어서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다. 누군가로부터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었으니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어서 흐뭇하고 행복했다. 비록 음영이며 구도며 채색까지 어느 하나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실력을 감추지 않았다.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는 결과가 조금 부끄럽기는 했지만.


대학 졸업 직후, 기간제 교사로 잠시 고등학교에서 근무했던 때가 있었다. 출산 휴가를 받고 자리를 비운 선생님을 대신하여 얼마간 수업을 맡게 되었다. 불과 두세 달 남짓이었지만, 최대한 수업 손실이 없도록 나름대로는 매시간 준비를 철저히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학생의 질문에 미리 공부하지도 않은 예를 덧붙여 가며 설명했다. 그런데 다른 학생이 내가 추가 예시로 든 단어에서 오류를 지적했다.


“선생님, 틀린 것 같은데요? ‘scholarship’은 학위가 아니라 장학금인데요.”


아차 싶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손에 땀이 나고 얼굴이 뜨거웠다.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 싶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체감했다. 차라리 모르는 단어였으면 모른다고 했거나, 제대로 알지 못하면 다음 시간에 알려주었어도 될 것을. 그때의 나는 잘 몰랐다고 솔직하게 말할 용기가 없었다. 헷갈려서 틀릴 수도 있지, 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넘어갈 만큼 뻔뻔하지도 못했다. 그저 너무 부끄러웠다. 그날부터 수업에서 학생들을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가르치기 전에 정확히 확인하고, 더 공부하고 조금 더 철저히 준비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았을 텐데, 자신 없는 내 모습을 가리고 감추기에 급급했다.


6개월 후, 나는 상담심리를 공부하기 위하여 대학원에 진학했다. 어쩌면 당시의 대학원 진학은 일종의 도피였는지도 모른다. 학생들 앞에서 당당하지 못했던 순간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가끔 그 장면이 떠오를 때가 있었다. 만약 그때 내가 좀 더 솔직했다면 상담심리가 아닌 영어교육을 전공으로 선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상담심리를 공부했던 시간은 나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 되었기에 후회도 아쉬움도 없다.


공부를 하면서 무엇보다 내가 부끄러워야 할 것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감추면 감출수록 교정하고 배워야 할 기회를 잃게 된다는 것도 함께. 오히려 모르는 것을 드러내야 배울 기회가 생기고, 더 성장할 기회가 생긴다는 것을 알았다. 설령 그것이 지우고 싶은 기억일지라도. 오히려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저선으로, 일종의 기준점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았다.


그림을 그리게 되면서 나는 완전히 초보자로 돌아갈 수 있었다. 모르는 것을 묻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신기했고, 재미있었다. 낯선 영역에서 초보자로서 조금씩 배우고 성장해 가는 경험이 참 좋았다. 앞서 소묘 두 작품이 있었지만, 어떤 면에선 2년여 동안 카페 화실에서 보낸 시간의 출발점이 되었던 것 같다.


지금 보면 이 그림은 어설프기 짝이 없지만, 나의 성장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아 각별하다. 부족하고 볼품없어 보여도, 오히려 솔직한 나의 처음 실력을 담고 있는 것이기에 소중하다.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용기 있는 도전을 보여주는 것 같아 대견하다.


그림을 그리면서 느꼈다. 기대에 못 미친다며 결과를 감추는 것은 마이너스의 손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상처가 난 곳은 소독하고 약을 발라 주어야 하는 낫는 것처럼. 소독약이 상처에 닿을 때 아프다고 치료를 미루거나 싸매고만 있으면 덧나는 것처럼 말이다.


가벼운 상처는 쉽게 아물기도 하지만, 깊은 상처는 좀처럼 낫지 않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있다. 이때 깊은 상처를 치료하겠다고 그저 드러내 보이기만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상처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누구나 아프다고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상처를 들여다 보고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이에게 보여야 할 것이다. 당장은 더 아프더라도 정말로 아픈 곳에 알맞은 약을 발라야 나을 테니까.


평소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감춰둔 마음의 상처를 보였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더 큰 상처를 입었다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다. 아픈 것은 드러내야 낫는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지만, 해결은커녕 또 다른 아픔이 되었던 것이다. 스스로도 치료할 수 없고, 도움 받을 수 있다는 기대도 사라졌으니 돌보지 않은 상처는 더욱 깊어져 있었다. 하지만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은 그저 다른 이의 상처에 공감하고 살펴줄 준비가 되지 않았을는지 모른다. 뜻밖의 상처를 보고 어쩔 줄 몰랐거나, 도와주고 싶어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당황했던 것뿐일지도 모르고. 돌봐 주길 기대했던 상대의 반응에 실망해서, 어쩌면 상처가 덧나는 것을 자신조차 외면하고 있음을 모르고 말이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스스로 캔버스를 채워갔다. 결코 능숙하지는 않았지만 필요한 부분에 맞춰 선생님의 조언을 청했다. 때에 맞는 선생님의 짧은 코멘트가 그림을 완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비록 결과물은 예상보다 아쉬웠지만 중도에 포기하지 않아 완성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미술에는 마이너스의 손이었지만 선생님 덕분에,


‘예쁘게 못 그리니까 안 그려요.’가

‘잘 그리지 못해도 해볼 만한 것 같아요.’로 바뀔 수 있었다.


돌보지 않은 마음의 상처로 아파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돌 볼 준비가 된 전문가를 만나,


‘상처받을까 봐 묻어둘래요.’가 아니라

‘아플지 몰라도 달라지고 싶어요.’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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