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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습관을 들이는 방법

정말 하고 싶은 것이라면, 한 번 더 연습해 보기

by 오월의 나무
카페 화실에서 그린 두 번째 데생

불과 일주일 전. 선 그리기만으로 그럴싸한 그림을 하나 완성했다. 겨우 두 시간 만에 기적 같은 일을 경험한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도 몇 번이나 스케치북을 들춰 보았는지 모른다. 첫 시간이어서 선생님이 많이 도와주시기는 했지만 과연 내 손으로 그린 것이 맞는지 보고도 믿지 못할 만큼 결과가 만족스러웠다. 워낙 손재주가 없어서 손을 대면 댈수록 망치는 편이라 스스로를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부르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런 형편없는 솜씨임을 감안할 때, 첫 그림에 기적이라는 표현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한 번씩 스케치북을 열어 볼 때마다 뿌듯해지면서 다음번 카페화실에 가는 날을 소풍 기다리는 아이의 심정으로 고대했다. 기대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받아 든 것 이상으로 온전히 두 시간을 집중할 수 있었기에 휴식 같은 그림 시간이 더욱 기다려졌다.


설레는 마음으로 일주일 만에 카페화실에 간 날. 부풀었던 설렘이 당황으로 바뀌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분명히 지난주 꼬박 두 시간 집중을 하면서 스케치를 하고 흡족한 그림을 그렸다는 기억은 너무도 또렷한데, 연필을 어떻게 잡았는지, 선을 어떻게 그렸는지 너무나 생소했다. 마치 완전히 리셋하고 새로고침을 한 것처럼. 넓게 펼쳐진 새하얀 스케치북은 공간이 아니라 꽉 막힌 벽처럼 느껴졌고, 혹시라도 선을 잘못 그리면 당장이라도 스케치북 밑에 잠자던 무언가가 튀어나와 더럽힌다고 한 소리 할 것 같았다. 잘 그리지 못하면 어떠냐고, 그저 온전히 내 시간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두 시간 동안 즐거웠다고, 또다시 즐길 생각을 하니 너무나 이 시간이 기다려진다던 생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선생님은 그런 내 속도 모르시고, ‘오늘은 이거 한 번 그려보시죠.’ 하고 사진을 하나 골라주셨다.

지난주 그렸던 것을 복습해도 못할 것 같은데, 몇 배는 어려워 보이는 장면이었다. 놀란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어휴... 이건 너무 어려운데요. 제가 이걸 어떻게 그려요?’


자신 없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어려워 보이지만 할 수 있을 거라며 격려하셨다.


‘한 번 해 보세요.’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한 번 배워 보겠다고 시작한 지 겨우 두 번째 시간이니 이건 뭐 어디 그만두겠다고 하기도 부끄럽고, 도망가기에도 우스운 상황이었다. 첫 시간 기대를 뛰어넘었던 만족도가 지금은 오히려 부담으로 느껴졌지만, 하는 수 없었다. 그냥 다시 하는 수밖에.


선생님으로부터 연필 쥐는 법과 선 그리는 법을 다시 한번 배우고 천천히 그리기 시작했다. 운동장처럼 넓은 종이에 연필의 힘을 조정하면서 선을 채워 나갔다. 선이 촘촘한 곳은 조금 더 어둡고 성긴 곳은 조금 더 밝았다. 어떤 곳은 선이 굵고 길었고, 어떤 곳은 가늘고 짧아서 힘의 차이가 느껴졌다. 그렇게 새하얀 스케치북이 어두워질수록 벽같이 느껴지던 마음은 오히려 차분해졌다.


선은 계속 쌓이고 쌓여 바다가 되고, 산이 되었다. 먼 산이 생겨나고, 그 앞으로 더 가까운 곳에 또 다른 산도 자리를 잡았다. 사이사이 몇 개의 산 등성이가 새로 생겨났다. 해안가도 나타났고, 해안가와 먼 산 사이에 작은 섬도 생겼다. 선을 더할수록 새로운 형태들이 자리를 찾고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스스로도 신기했다. 마지막에 바닷가에 나무 말뚝을 세운 일종의 자연그물 같은 개막이까지 더하니 있어야 할 것들은 얼추 제자리를 찾은 것 같았다.


두 시간여 꼬박 진지하게 그리고 있는 모습을 선생님은 틈틈이 지켜보셨다. 약한 필압으로 툭툭 끊어서 그릴 때의 자신 없는 모습에서 점점 선의 형태가 또렷해지는 것을 보시면서 흐뭇해하시는 것이 느껴졌다. 채워야 될 것들이 자리를 잡고 나니 이제 거의 다 끝난 것 같았다.


‘선생님 말씀대로 해보니까 뭐가 되긴 하네요.’


살짝 기분이 좋아져서 말했다.


‘이제 끝난 거죠?’

‘그것 보세요. 할 만하실 거라 했잖아요. 해만 만드시면 되겠네요.’

‘아.. 근데 정말 해는 못 하겠어요, 선생님...’

‘아유, 왜 그러세요. 지금까지 다 하셨으면서... 오늘은 직접 해 보세요.’


지난주 그림에서도 태양이 있었는데 그때는 방법을 알려주시려고 선생님이 만들어 주셨었다. 이번 주에도 같은 표현이 들어가는 것이니 직접 해 보라는 말씀이었다.


지금까지 표현했던 바다와 산과 바위 들은 선을 더하고 겹쳐서 형태를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면, 해는 정 반대였다. 겹치고 더해서 쌓아 온 선을 지워야 하늘에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깨끗하게 지우는 것은 얼마든지 자신이 있었지만 태양이 둥글다고 너무 깨끗하게 지우면 자연스러운 느낌이 나지 않을까 봐 조심스러웠다.


어떻게 하면 그림에 어울리는 태양을 만들 수 있을지 지우개를 들고 망설였다. 원래는 반듯한 직육면체였을 지우개지만, 한쪽면은 사용한 흔적 대로 둥글었고, 반대쪽은 사선으로 잘라져서 직사각형의 단면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우개의 둥근면과 직사각면을 번갈아 사용하며 신중하게 태양을 만들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별 것도 아니지만, 이때만큼은 중간중간 호흡을 참아가며 태양을 만들었다. 우주를 창조하는 마음이었다 해도 지나친 과장이 아니었을 만큼 집중했던 것 같다. 하늘에 태양이 떠오르자 바다에도 빛이 반사되었다. 아.. 드디어 또 하나를 이렇게완성했구나. 긴장되어 떨리던 마음은 기분 좋은 흥분으로 바뀌었다.


이 두 번째 그림을 그리면서 배운 것이 있다. 형태는 선을 더하고 쌓으면서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것. 가까이 보이는 것은 더 많은 선을 쌓아야 하는 만큼 더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것. 빛은 자신의 흔적을 없앨 때 비로소 정체감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과연 할 수 있을까 자신 없어 주저하는 마음이 들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냥 다시 한번 해보기. 이 그림을 그렸던 날처럼. 선을 쌓고 더하는 것처럼 그렇게 내가 바라는 무엇도 형태가 잡힐지 모르니까. 그렇게 쌓고 쌓다 보면 마지막엔 내 힘으로 빛을 만들 때도 있겠지.


문득 ‘고도원의 아침편지’에서 읽었던 문장이 떠오른다.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따로 저장해 두었다가 수업 시간에도 종종 예를 들어 설명하곤 했는데, 이 날의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었다.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 같아 두려워요.”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은 대부분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창작품입니다. 그걸 깨닫지 못한 것뿐이죠.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를 보세요. 아기가 단번에 성공할 거라 믿나요? 다시 서 보고, 그러다 또 쿵하고 넘어지곤 하지요. 아기는 평균 2천 번을 넘어져야 비로소 걷는 법을 배웁니다.”

평균 2천 번. 고도원의 아침편지(2009년 12월 4일 자)

- 로랑 구넬. 가고 싶은 길을 가라 중에서.


특별한 장애가 있지 않은 이상 사람들은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걷기까지 평균 2천 번의 넘어짐이 있었다는 사실은 인식하지 못한다. 평균 2천 번을 넘어져야만 걸을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과연 몇 명이나 도전할 수 있을까? 2천 번을 ‘실패’라고 본다면 오히려 시도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일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 발로, 자기의 의지대로 걷기까지 2천 번의 넘어짐을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모두 승리자다. 2천 번의 과정을 거쳐서 끝내는 두 발로 걸을 수 있게 된 승리자.


몇 번 넘어졌다고 일어서지 않았다면 걸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때에 나는 2천 번의 실패를 과정으로 여기며 다시 일어섰던 사람이기에, 오늘 부끄러운 문장을 이렇게 또 꾸역꾸역 써 보는 수밖에.


p.s. ‘고도원의 아침편지’. 고도원 씨가 읽은 책 중에서 좋은 문장들을 발췌하고 거기에 단상을 더해 구독자들에게 발송해 주는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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