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에 집중해 보기
나는 미술 시간이 즐겁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거나 그리는 일에 통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술 시간에 챙겨야 할 재료나 도구가 풍족했으면 결과가 조금은 만족스러웠을까? 실력 없는 목수가 연장을 탓한다는데... 그래봤자 부족한 실력을 감추려는 핑계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다. 연년생인 오빠랑 미술 시간이 겹치는 날은 준비물을 온전히 챙겨가기 어려웠다. 지금처럼 학용품을 여유 있게 준비할 수 있는 때도 아니었고, 크레파스나 물감을 두 자녀에게 각각 사 주실 만큼 넉넉한 살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주제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좋아하는 색깔을 골라 미리 나눠서 챙겨가면, 부족한 것은 친구 것을 빌려 쓰거나 완성하지 못한 것을 집에 가져와 마무리하곤 했었다. 24색 물감도 다 챙겨가지 못할 때, 36색이나 48색 물감을 가져온 친구들을 보면 붓을 든 나의 손은 괜히 힘이 빠졌다. 색에 대한 감각, 그리기에 대한 자신감은 재료의 풍성함과는 무관할 텐데도 어린 시절 미술 시간은 나를 점점 작아지게 만들곤 했다.
그림을 완성하여 제출한 후에 평가 결과를 받으면 기대보다 늘 실망스러웠다. 높은 점수를 받은 친구들의 작품을 보면 내가 그린 것보다 훨씬 나아 보였음에도 말이다. 다른 과목에 비해 미술 성적은 항상 부족해서 평균을 깎아 먹기 일쑤였고, 그저 피하고 싶은 시간이었다. 더 높은 점수를 받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무엇보다 노력해도 더 좋은 점수를 받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까지 드니 미술 시간을 즐기지 못했다.
중학교 때 미술 시간이었다. 당시 미술 선생님의 평가과정은 꽤 신선했다. 여느 미술 선생님들의 경우라면 완성된 작품이 담긴 스케치북을 모두 걷어가신 후 혼자 평가하고 돌려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우리 반을 담당하셨던 선생님은 모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개별 작품에 대한 의견을 덧붙여 공개적으로 평가를 하셨다. 작품을 완성하고 나면 번호 순서대로 예닐곱 개의 스케치북이 칠판 앞에 나란히 세워진다. 어떤 작품은 선이 너무 가늘다, 너무 진하다고도 하셨고, 또 어떤 작품은 색감에 대해서 또는 원근감에 대해서 코멘트를 해 주셨다.
데생을 배우는 차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각자 자신의 손 모양을 보고 그리는 것이었다. 별다른 준비물이 필요하지 않은 방법이라 주눅 들 일이 없어서였는지 꽤 열의를 가지고 그려나갔다. 당시 나는 왼손으로 나를 향해 V자를 한 모습을 그렸다. 정말 열심히 들여다보면서 정성껏 그려나갔다. 최대한 보이는 그대로 왼손 모양이 잘 드러나도록 아주 성실하고 거짓 없이. 결과물은 나름 만족스러웠다. 적어도 이번만큼은 A0를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림을 다 완성하고 평가받는 시간, 칠판 앞에는 다양한 손 모양이 펼쳐졌다. 어떤 친구는 활짝 핀 손바닥, 누구는 주먹 쥔 손, 오케이 동작을 표현한 손 등 단순한 듯하면서도 제법 다양한 모양의 손들이 볼 만했다. 그런데 다른 어느 때보다도 공을 들여 완성한 나의 작품에 선생님은 B0를 주셨다. 보면 볼수록 실물과 비슷하게 그렸다고 생각해서 기대가 컸지만 결과는 또 불만족이었다.
선생님은 나의 작품을 보시고, 손바닥과 손가락의 비율이 잘 맞지 않는다고 평가하셨다. 손가락이 손바닥에 비해 너무 짧게 그려졌기 때문에 아름답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저 보이는 대로 그렸을 뿐인데.
‘선생님! 제 손 좀 한 번 봐주실래요? 저는 보이는 대로 똑같이 그렸어요.’
만약 그때 조금 더 내 그림에 자신이 있었다면 혹은 나에 대해 자신이 있었다면 당당히 의견을 말할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에휴... 내 손가락이 짧은 탓이지, 누구를 탓해!’
하며 아름답지 않은 비율의 짧은 손가락을 감추기에 바빴다. 내가 쏟을 수 있는 정성을 다했음에도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에 크게 실망했고, 미술은 열심히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고 말았다. 그 이후로 미술 시간과는 더 이상 친해지지 못했다.
그렇게 그리기와는 전혀 담을 쌓고 지낸 지 근 25년이 지난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선생님이 예쁜 카페를 발견하셨다며 커피 한 잔 하러 가자고 연락을 하셨다. 카페 이름이 독특하고 간판 디자인도 눈에 띄었는데 안으로 들어서니 인테리어는 더 마음에 들었다. 연필 스케치, 수채화, 판넬 소품들로 가득했는데 기성작품을 사서 장식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직접 그리고 만든 것이었다. 알고 보니 카페 사장님은 미술을 전공하신 분이었고, 작품들은 손수 작업하신 것들이었다. 카페 안쪽을 작업실로 사용하면서 성인들을 대상으로 취미반도 운영한다고 했다. 무슨 용기였을까? 그날부터 그곳에서 매주 한 번, 한 번에 두 시간씩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진에 담긴 데생은 카페 화실에서 완성한 나의 첫 작품이다. 선생님은 연필 쥐는 법, 구도 잡는 법 등 기본적인 것부터 가르치셨다. 하지만 미술학원에서 데생을 배운다고 생각하면 흔히 떠올리기 쉬운 아그리파나 줄리앙, 비너스 같은 조각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었다. 작업실 한쪽에 꽂혀 있는 오래된 잡지 속의 사진, 일러스트, 주변 소품들을 소재로 시작할 수 있다고 하셨다. 나의 첫 작품조차도 표지가 떨어져 나간 낡은 잡지 속에 있던 사진을 보고 따라 그린 것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여 완성한 작품은 아니지만, 몇 가지 간단한 기법만 알면 그럴싸하게 흉내 낼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과정을 즐길 수 있음을 경험했다.
무엇보다 나는 그곳에서 그림을 잘 그리는 특별한 방법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다. 그 방법은 바로 다른 누구와 경쟁하지 않는 것, 성적으로 평가받지 않고 그리는 것이었다. 학창 시절 동안 내가 미술 시간이 즐겁지 않다고 느꼈던 이유는 완성된 그림에 점수를 매기는 것 때문이었고, 그 점수가 종합 성적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매겨진 점수가 마치 '나'라는 한 사람의 가치인 것처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미술에서 평균 점수만 깎아 먹지 않으면 조금 더 높은 점수, 조금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뒤늦게 알았다. 내가 받았던 점수와 나의 가치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친구보다 더 높은 성적을 받는 것과 내가 더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은 당연하게 알고 있는 그 사실을 부끄러워 피하기만 했던 그림 그리기를 하며 깨달았던 것이다.
흔히 중요한 시합이나 경연을 앞둔 사람들에게 ‘즐기라’고 조언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누군가와 경쟁하고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처지에 있으면 그 말은 한낱 사치스러운 말, 그럴싸한 액세서리 같은 말로만 들렸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 말은 그리 틀린 말이 아니었다. 다만 즐기기 전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었던 것이다. 무엇인가를 즐기려면, 잘하려면 남과 경쟁하지 않는 것, 평가 결과가 아닌 과정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잘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나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그것이 필수조건이었다. 점점 그리기와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