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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속도를 확인하는 방법

일주일에 온전히 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얼마나 보내고 있는가 확인하기

by 오월의 나무
판넬에 그린 크레파스화


새 학기가 시작되면 몹시 바빠질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온전히 나 자신만을 위해 일주일에 두 시간을 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밥 먹고, 자고, 씻고, 화장실 가는 일 같은 기본적인 생활 유지 외에는 학교와 집 트랙을 왕복하는 날들이었다. 제대로 된 아침 식사는 꿀보다 단 아침잠과 바꾼 지 이미 오래.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단 한 번도 먹지 않았던 시리얼로 아침 식사를 대체했다. 어릴 때부터 찬 우유를 먹으면 소화가 잘 되지 않아서 시리얼에 우유를 부어 먹는 일은 그저 TV에서만 보는 감상용이었다. 물론 눈뜨자마자 따뜻한 밥과 국을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신 엄마의 사랑이 덕분이기도 했지만. 분가를 한 후부터는 아침 단잠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락토 프리 우유를 찾아 간편식과 친해졌다.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8시에 출근하면 강의하고, 회의하고, 보고서 쓰고, 늦은 밤 집에 돌아와 씻고 잠드는 일과의 연속.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일주일이 지나면, 한 달이 쏜살같이 흘러가 있다. 무언가 굉장히 열심히, 부지런히 시간을 보낸 것 같은데 돌아보면,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고, 정신을 차리려 하면 멍한 느낌과 허전함이 밀려오곤 했다.


소묘 두 개를 그리고 나서 이어지는 작업이 크레파스화였다. 앞서 그렸던 크레파스화는 처음 해보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크기가 작아서 그랬는지 2주 만에 마쳤었다. 어차피 처음 하는 것이니 결과물의 완성도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기에 무언가를 완성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이 작품은 시작하고 3주에 걸쳐 완성했다. 판넬 사이즈가 훨씬 커진 탓도 있지만 단순해 보이는 풍경인데도 좀처럼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일상에서 벗어나 나에게 시간을 허락한 것이기에 내가 원하는 대로, 이 시간을 즐겨도 될 텐데 시간이 지나도 끝이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니 초조해졌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처럼 어떤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하는 일도 아니고, 부담감이나 스트레스를 받으며 할 일은 더더욱 아닌데도 나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졌다. 선생님은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으세요? 오늘 다 못하시면 다음 주에 이어서 하셔도 괜찮아요.’


라고 하시며 속도를 조절하게 하셨다. 이제 막 시작한 초보이면서 기한을 두고 완성해야 하는 일도 아닌데 서두른다고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여기에서 지금 뭘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서 몇 줄을 더 쓰고, 회의를 위한 문서를 작성하는 일처럼 의무도 아니고 생산적인 일도 아닌데 이 일을 왜 하고 있을까? 보고서 몇 줄 안 쓰고, 회의를 위한 문서 작성을 하지 않는다면, 집에 가서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 수도 있고 아무 생각 하지 않고 쉴 수도 있는데. 나는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와 있을까?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결과물로 물질적인 보상이 있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솜씨가 좋아 멋지게 완성하고 나서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것도 아니고, 근사하다고 칭찬을 해 줄 사람은 더더욱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곳에서 나는 왜 이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확실한 것은 고단함과 피로를 감수하고라도 나를 위한 무언가에 집중하고 싶었던 것이다. 비록 보잘것없는 실력이지만 기분 좋게 마음을 흔드는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물질적인 보상은커녕 물질이상으로 귀한 시간을 할애하고 육체적인 피로를 덜지 못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물질적 보상 이상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즐거움과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일상 업무에서처럼 생산을 위한 생산이 아닌 유일한 작업이었기에 이 시간이 더 소중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림이, 음악이, 예술이 나의 삶에 왜 필요한지, 왜 중요한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으니까.


평소에 나는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긴 시간을 썼다. 열심히 성실하게 일한 결과로 물질적인 보상도 받았다. 하지만 양적으로 계산되어 꼬박꼬박 주어지는 보상에도 불구하고 ‘해야 할 일’을 통해서 얻는 성취감과 만족감만으로는 무언가 충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일주일 168시간을 100이라고 할 때, 단 2시간에 불과한 1.19% 시간에서 얻는 성취감과 만족감은 100%를 채우고 남았다. 해야만 하는 일도 아닌, 안 해도 되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단잠 두 시간을 덜어내는 것이 결코 아깝지 않았다.


이제 겨우 두 번째 그리는 크레파스화 작업이지만 서둘러 완성하고 싶었다. 다음은 무슨 그림을 그리게 될까를 생각하느라 당장 눈앞에 하고 있는 과정에 집중하지 못했다. 분명히 샘플 그림에는 풀밭의 초록이 살아 있는 듯 생생한데, 내 눈앞의 판넬 속 초록은 한 가지 색으로 찍어낸 듯 단조로웠다. 딴에는 여러 색을 조금씩 섞어서 표현한다고 여기저기 조금씩 색을 더했지만, 크레파스가 점점 뭉쳐서 지저분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지켜보던 선생님은 옅은 레몬빛 노란색 크레파스를 들고 내가 칠하던 올리브색 옆 부분을 조금씩 덧칠하며 말씀하셨다.


‘풀밭이라고 해서 초록색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잎도 시든 게 있고 여린 잎도 있고요. 이렇게 작은 꽃도 있을 거예요.’


그저 노란색이 살짝 더해졌을 뿐인데 숨어 있던 꽃이 나타난 것 같았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연필로 군데군데 묘사를 더하니 판넬 속 그림엔 점점 생기가 돌았다. 평지로만 보였던 곳도 그제야 조금 언덕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선생님의 시범을 따라서 천천히 풀숲에 꽃을 더 피우고 음영을 더했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는데, 일상의 관성대로 쫓기듯 일하던 때. 내가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서 얻은 답. 아름다움은 서두르지 않는 데서 발견한다는 것. 예술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는 삶의 속도를 조절하라는 것. 볼품없는 솜씨일지언정 나의 작업의 결과를 감히 예술이라고 부를 수만 있다면. 그리고 한 가지 더. 98.81% 시간은 어쩌면 단 1.19% 시간의 에너지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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