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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을 찾는 방법

늘 보던 각도와 거리를 조금 바꾸어 바라보기

by 오월의 나무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서 그린 두 번째 그림


흔히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 온전히 한 달 꼬박 이렇게 화려한 수식어를 동반하는 경우가 있던가. 앞선 4월은 영국의 시인 엘리엇이 쓴 ‘황무지’의 시구절을 인용하여 잔인한 달이라 불린다.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잔인한 4월에 대비되어 5월은 더욱 빛나고 화려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바깥 날씨는 여름처럼 이른 더위가 느껴지는 날이었는데 어째서 이런 장면을 그렸을까? 카페 화실 한쪽에 쌓여 있는 일러스트 잡지를 뒤적이다 이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때 이른 더위를 식히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림 속 두 아이 모습에서 보고 싶은 조카들을 떠올렸던 것일까? 두 가지 모두였을지 모르겠다.


책에서 고른 일러스트 장면에는 귀여운 두 아이와 어른 남자, 작은 새가 다정하고 사랑스럽기 이를 데 없어 보였는데, 완성을 하고 나니 잡지 속 느낌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분명히 사람을 그린 것이긴 한데 동물 같기도 하고, 세밀한 뒷작업도 하지 않았던 탓인지 원작 느낌을 절반도 전하지 못한 채 졸작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콩깍지가 씐 것인지 볼수록 눈길이 갔다. 배경이 겨울이고 눈밭이라 몹시 추울 것 같지만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처음 일러스트를 봤을 때도 그런 느낌이 들어서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림 속의 인물은 셋인데, 두 사람과 한 사람이 마주하고 있는 장면이다. 그런데 작은 새를 포함하면 오른쪽과 왼쪽이 사이좋게 2:2로 마주하고 있다. 왼쪽에는 썰매를 탄 아이와 끄는 아이가 둘이, 오른쪽에는 아이들 몸집만큼 큰 눈덩이를 든 어른과 작은 새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묘하게 균형감이 느껴지는 것 같다.


처음 이 장면을 골랐을 때는 물론이고, 그림을 그릴 때도, 완성을 한 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도 균형감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못했었다. 전반적인 색감과 분위기가 겨울 장면임에도 따뜻하게 느껴져서 좋았던 것이지 다른 이유는 찾지 못했다. 색칠할 때 정성껏 터치하지 않은 흔적, 붓 굵기를 바꿔가며 칠하지 않아 섬세하지 못한 무늬들, 마지막에 세밀하지 못했던 마무리까지 온통 아쉬운 것들만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그림을 잘 그리려고 시작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흡족하지 않은 결과물일지라도 한 번 보고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이만큼 완성한 것에 스스로 뿌듯해하며 보고 또 보았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눈길을 주다 보니 처음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균형감을 느낀 것도 그 과정에서였다.


‘아이 둘과 어른 한 명 사이에 작은 새 한 마리도 함께 있었구나.’

‘나무가 한 그루가 아니었네. 혼자면 심심했을 텐데.... 덜 외롭겠다.’

‘썰매 탄 아이는 신나는 노래라도 부르고 있었을까? 입김이 나오네.’


썩 만족하지 못했을 때는 아쉬운 것들만 눈에 들어왔다면,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게 되자 이전과는 생각하는 것이 조금씩 달라졌다.


‘자작나무 표면이나 입김을 표현할 때는 조금 더 가는 붓을 써 보자.’

‘색깔을 바꿀 때는 붓을 깨끗하게 헹궈야겠다.’

‘다음에 그리게 되면 작은 새도 짝을 맞춰 한 마리 더 그려보면 어떨까?’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이런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아쉬움이 아니라 애정을 담은 시선으로 보게 되자 대안적인 방법을 스스로 찾고 다음을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까지 이어진 것이다. 나도 모르게 쌓여 있는 과제들, 업무에 쫓기듯 지내며 몸과 마음이 지쳐있던 때였다. 만약 이때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 카페화실에서 보낸 시간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왜 이렇게 일이 많은 거야?’

‘왜 이렇게 나만 힘들지?’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힘들어야 해.’

‘과연 이 힘든 시간이 끝나기는 할까?’


이런 우울함을 불러오는 생각들 속에서 허우적대며 소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침 이 그림을 완성한 날은 나의 생일이었다. 만약 그때도 당장 처리해야 할 여러 업무들에 빠져 있었다면, 스스로에게 선물 같은 시간을 허락하지 못했을 것이다. 과제에 치여, 업무에 쫓겨 나의 몸과 마음이 병들어 가는지 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업무라고,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다고 몰아붙이지 않기. 고생하고 있다고,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애정을 담아 나를 도닥여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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