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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나를 응원하는 방법

평생 나의 편은 바로 나라는 것을 기억하기

by 오월의 나무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서 처음 그린 그림


세 번째 기법은 아크릴화였다.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엄밀하게 아크릴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크릴화 느낌을 줄 수 있는 기법이라고 하셨다. 정통 아크릴화와 아크릴화 느낌을 줄 수 있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모르는 문외한인지라 물감을 사용한다는 것만으로도 설렜다. 앞서 크레파스화를 처음 그릴 때도 어떤 대상이 색을 입으면서 표정을 갖게 되는 것이 신기했었는데 아크릴화 기법으로 그려진 몇 개의 샘플을 보니 더 전문적인 느낌이 들었다. 크레파스화와는 확연히 다른 쨍한 느낌의 컬러감과 좀처럼 실수를 허락할 것 같지 않은 새침함이 그림마다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매 시간 마음 깊숙한 저변에 깔려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두려움과 긴장감은 무시할 수 없었지만.


아크릴화도 일반 캔버스가 아닌 MDF에 직접 그리고 채색하는 작업이었다. 크레파스화처럼 밑작업을 하지 않아도 되고, 물감이 금세 마르기 때문에 훨씬 빠른 속도로 완성할 수 있다고 하셨다. 워낙 색에 대한 미적 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는 자기 이해는 분명하니, 결과물의 완성도는 고려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초보자도 해 볼만한 난이도의 샘플을 잘 고르는 것이 우선 일 것 같았다. 일러스트 책과 동화책 몇 권을 뒤적이다가 한 장면을 골랐다. 때가 때인지라 벚꽃이 흩날리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할아버지와 손자쯤으로 보이는 아이가 마주 보는 모습이 무척 사랑스러워 보였다. 이 정겹고 따뜻한 느낌이 잘 표현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중고등학교 때 미술 시간이 즐겁지 않았던 이유 중에 하나가 다른 친구들에 비해 한참 뒤떨어지는 미술 재능의 부족이었다. 친구들을 보면 한 가지 색깔만이 아니라 두세 가지 색깔을 섞어 기본 물감에 없는 색깔도 만들고, 자연스러운 느낌의 아름다운 색깔을 잘도 만들었다.


하지만 내가 표현하고 싶은 색깔을 만들려면 도무지 무슨 색들을 섞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형편없는 나의 미적 감각을 탓하기에 바빴을 뿐. 파란색과 초록색을 섞으면 청록색이 된다거나, 빨간색과 노란색을 섞으면 오렌지 색이 된다는 것 정도의 상식적인 배합도 머릿속으로만 가능할 뿐, 실제 섞어보면 양이 조금만 많거나 적어도 원하는 색이 아니었다. 그나마 청록색과 오렌지색은 이미 기본 물감에 포함된 색이니 그 색들에서 명도나 채도를 조절하고 또 다른 색들과 섞어서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려면 더욱 섬세한 감각이 필요한데, 나에겐 그런 게 없었다.


아크릴화를 그리려고 마주한 파렛트에는 여러 색깔 물감들이 칸칸이 채워져 있었고, 팔레트에 없는 색깔은 물감들을 섞어 새로운 색을 만들 수 있었다. 물감의 양을 조금씩 조절해 가며 섞어 보았는데, 아주 적은 양이라도 다른 색과 섞이면 느낌이 확연이 달라졌다. 예전에 없던 재능이 갑자기 생겼을 리도 없고, 샘플처럼 근사하게 그릴 자신은 더더욱 없었지만, 빼곡히 채워진 팔레트와 물감들, 붓을 손에 쥐는 것만으로도 괜히 설레는 마음만 전과 달랐다.


내가 고른 그림은 비교적 색깔이 다양하지 않았을뿐더러 세밀한 묘사가 많지 않아서 조색하는 일이 어렵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막상 작업을 해 보니 상당한 정교함과 꼼꼼함을 필요로 했다. 무슨 일이든 대충 넘어가지 않고, 공을 많이 들이는 편이라 꼼꼼하다는 말을 듣는 편인데, 그림 작업에서는 내가 생각해도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일을 맡으면 전반적인 계획을 세우고, 일의 끝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시작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림 작업에서는 엄벙덤벙, 좌충우돌, 일을 저지르고 나서 아차 하는 순간이 불쑥불쑥 나타났다.


원하는 색이 파렛트에 없으면 조색하면 되고, 물감은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자유롭게 써도 된다고 하셨는데 그럴 때만 신중에 신중을 기해 찔끔찔끔 물감을 섞었다. 평소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였던 꼼꼼함은 그림을 그리면서 쩨쩨함이 되어 나타났다. 붓질만 해도, 한 번에 시원스레 칠해야 할 곳과 살짝 조심스럽게 해야 할 곳에 차이가 없었다. 붓에 물을 너무 많이 묻혀서 농도가 옅어지거나 생각한 것보다 조색한 물감의 양이 너무 적어 몇 번이고 다시 만들어야 하는 일은 너무 흔했다.


크레파스화는 채색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는데 아크릴화는 훨씬 정직한 느낌이 들었다. 산뜻하고 깨끗한 느낌 이면에 빈틈없고 새침한 느낌이 바로 나의 능력과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 같았다.


처음 기대한 결과물에는 못 미쳤지만 그래도 두 시간 만에 작업을 마무리했다. 크레파스화보다는 못 그리는 것이 더 티가 나는 것 같아 만족도는 조금 떨어졌다. 하지만 맨 마지막에 벚꽃을 표현하면서는 기분이 정말 좋았다. 투박하고 조악한 꽃잎일지언정 연한 분홍 빛 다섯 장의 꽃잎을 그리고, 더 수줍게 붉은 꽃술을 내 손으로 그려 넣을 때의 설렘만큼은 황홀했다. 할아버지와 아이가 마주 보는 장면을 내가 축복해 주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지금도 이 그림을 보면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설렘이 느껴진다. 더 근사한 작품은 아니지만 첫 시도한 아크릴화 작업이었다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그리고 스스로도 썩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 일에 도전하고 있다는 점은 응원할 만한 것 같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한다면, 결과는 좋겠지만 더 이상 새로운 시도는 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 잘할 수 있는 정말 잘 해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고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안다. 땅을 단단하게 다지는 것처럼 어떤 분야에서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가는 과정도 필요하니까.


하지만 내가 그리 잘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일지라도, 결과가 좋을 것이라 예상되는 일이 아닐지라도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새로운 일이니까 잘할 수 없을 것 ‘같은’ 것은 나의 ‘예상’ 일뿐이니까.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경험이란 자산은 쌓이지 않을 테니까. 그저 나는 무언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있다는 점을 응원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 같다. 결과가 어떻든, 그 과정이 낯설고 어려움을 무릅쓰는 일이더라도 무언가 한걸음 내딛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를 응원하기로 했다. 적어도 나는 늘 내 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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