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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한 것을 만회하는 방법

감추지 말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_그곳에서 변화는 시작될 수 있으니까

by 오월의 나무
8_잘못한 것을 만회하는 방법.png 수채 물감과 수채 색연필로 그린 그림


‘비 오는 날의 수채화’


이 그림을 그린 날은 비 오는 수요일이었다. 카페 화실까지는 집에서 도보로 15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지만, 쏟아지는 빗 속에 우산을 받쳐 들고 나서려니 주저되었다. 공중목욕탕이나 운동을 하러 나설 때의 기분 같달까? 막상 도착해서 목욕하고 운동하고 나면 무겁던 몸이 날아갈 듯 가볍고 개운해서 오길 잘했다 싶지만, 도착하기 직전까지는 내내 나설지 말지 갈등하는 것과 비슷했다.


오늘은 그냥 집에서 쉴까.. 하는 마음이 들어 아파트 현관까지 내려갔다 다시 집으로 들어왔건만, 결국은 다시 집을 나섰다. 어림잡아 봐도 집에서 쉰다 한들 카페 화실에서 보낼 두 시간을 상쇄할 만큼의 양질의 휴식을 할 가능성이 적어 보였기 때문이다. 카페 화실은 주목적이 카페로 운영되는 곳이기 때문에 작업하는 동안 커피 한 잔은 늘 무료로 마실 수 있었다. 작품은 차치하고 최소한 맛있는 커피 한 잔은 마시고 오자는 마음이 몸을 움직인 것이다.


이 작품은 두 주에 걸쳐서 작업을 한 것인데, 이 날은 2주 차에 해당하는 날이었다. 절반 이상 작업을 하던 것을 이어서 하는데 일주일 만이라 그런지 색감이며 붓질이며 연결이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좀처럼 속도도 나지 않고, 선생님이 만들어 주신 아메리카노는 어느새 바닥을 보였다. 정말 커피만 마시고 가야 하는지 한 시간이 금세 지났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남은 시간이라도 좀 집중해 보자는 마음으로 다시 마음을 잡았다.


그렇게 꾸역꾸역 작업을 하다 보니 얼추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다시 수채화를 그리는 것이라 그런지 이날은 수채화 작업을 처음 했을 때의 느낌을 다시 한번 떠올릴 수 있었다. 수채화라는 기법이 참으로 정직한 작업이라는 것. 지난주에 이어서 작업을 하다 보니 빈 곳도 있지만 몇몇 부분은 덧칠을 해야 하는 곳도 있었다. 처음 채색을 할 때 대충 칠한 곳은 부족한 티가 너무 쉽게 드러났다. 붓질을 할 때 의도를 가지고 칠한 곳은 결과의 질을 떠나서 확실한 색감이 드러나는데 그렇지 않은 곳은 다시 채색을 해도 조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애초부터 확실한 의도를 가지고 칠한 것이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붓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으니 이것은 색을 칠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칠하지 않은 것도 아닌 애매한 결과물로 나타나는 것이다. 붓질을 한 번 더 하는 것으로 아쉬운 결과를 메꿔 보려고 해도 붓이 지나간 흔적만 겹쳐질 뿐이지 전체적인 조화나 완성도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주 약간의 색을 더하는 것만으로 색이 달라지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물을 한 방울만 더 첨가해도 느낌이 아주 다른 색이 만들어지는 것도 그렇고. 붓질 한 번을 더하고 덜 하고, 색을 소량 더 섞는 것과 아닌 것, 물을 한 방울과 두 방울 첨가하는 것이 많이 다른 것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흔히 수채화를 투명하다고 표현하는데 그 이유를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정말 정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생만 하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지우고 다시 그릴 수 있다. 유화는 직접 작업해 본 적은 없지만 수채화만큼 색이 배어 나오는 경우는 드물 것 같다.


하지만 수채화는 그리는 사람의 모든 행동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기법임을 실감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만회해 보겠다고, 채색한 곳이 다 마르기도 전에 성급히 작업을 하면 색이 번져 더 망치게 되는 것을 경험했다. 만회를 하고 싶어도 너무 서두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림을 그리는 ‘사람’만 준비가 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상황’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는 사실.


이 그림을 그린 날, 찌뿌둥한 몸 상태 때문에 평소와 달리 그리기가 즐겁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내 몸 상태가 그림에도 반영된 것은 아닌가 싶다. 평소에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인데, 온전히 이 시간에 집중하지 못한 것이 고스란히 결과물로 나타난 것 같다.


과정에 집중하지 못하고 즐기지 못했던 나,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했던 나, 모자라는 실력을 감추고 싶었던 나의 모습을 정직한 수채화를 통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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