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의 속도가 아니라 나의 속도에 맞춰 페이스를 찾기
가끔 나 자신을 사물에 비유해 볼 때가 있다. 현재 모습 그대로를 그릇으로 비유한다면, 국그릇은커녕 밥공기도 안 될 만큼 작은 간장 종지일 텐데, 되고 싶은 것은 큰 접시나 항아리 정도는 되어 조금 더 넉넉하게 담고 싶다. 갈등으로 인해 옹졸한 마음이 들거나 실수에 너그럽지 않을 때, 내가 조금 더 여유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 나라는 그릇의 크기를 가늠해 보곤 한다.
그 이야기를 친한 선생님께 했더니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선생님, 간장종지도 좋고 항아리도 좋은데요. 그릇이 꼭 세라믹일 필요가 있어요?’
그 순간 잠시 멍했다. 크기만 생각했지, 소재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선생님의 반응에 신선함을 느끼려는데 바로 이렇게 덧붙이셨다.
‘설사 세라믹 그릇이라고 해도 얼마나 예쁜 그릇인지, 얼마나 자주 쓰임이 있는 그릇인지 생각하면 좀 다를 것 같아요. 간장종지라도 장인이 만든 거면 귀하게 쓰일 거고, 공장에서 만든 거라도 전(煎) 요리 집에서는 꼭 필요한 그릇이니 자주 쓰일 거잖아요.’
그렇지. 어떤 크기의 그릇인지 한 가지만 생각했었는데, 어떤 소재로 만든 것인지를 생각하지 못한 것에 놀랐다. 비유를 하면서도 내가 스스로를 한정해서 생각하고 있었구나. 더군다나 어디에서 어떻게 쓰일지 실용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무리 귀하게 만들어졌어도 사용되지 못하는 것은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일 테니 쓸모가 없는 그릇일 것이다.
일상에서 지치거나 힘들 때 한없이 내가 작은 사람처럼 느껴질 때 간장종지 정도 그릇 크기로 스스로를 비유하던 내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이즈 만으로 자신을 작은 사람으로 생각했다는 사실에 아차 싶었는데, 다른 관점으로 한 번 더 스스로를 제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크레파스화를 그리려면 제일 먼저 MDF(Medium-Density Fiberboard) 패널에 흰색 크레파스로 바탕을 채워야 한다. 흰색 크레파스로 선긋기를 한 후, 손끝으로 선긋기 한 크레파스를 밀어서 전체를 포장하는 느낌으로 밑작업을 한다. MDF 패널은 나무 그 자체라서 바로 그림을 그리고 채색을 하면 색이 잘 입혀지지 않는다. 채색한 그림과 나무판이 겉돌아서 둘을 화합시키기 위한 하나의 과정인 것 같다. 나무를 일종의 스케치북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밑작업을 꼼꼼하게 하면 채색을 했을 때 크레파스가 잘 먹는다. 이때 흰색 선긋기 작업에도 강약조절을 잘해야 한다. 너무 약하게 듬성듬성해도 안되고 너무 굵고 진하게 해도 좋지 않다. 나무 느낌이 아니라 정말 스케치북처럼 하얗고 깨끗한 바탕이 완성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크레파스는 온도에 영향을 많이 받는 소재이다 보니, 여름에는 생각보다 굵고 두껍게 선긋기가 되어 밀리거나 뭉치는 경우가 잦고, 겨울에는 가늘고 얇게 선긋기가 되어 선을 펴는 작업 하는데 좀 더 힘이 든다.
이 그림은 일주일에 두 시간씩 3주에 걸쳐 완성한 것이다. 그림 사이즈나 계절을 고려하면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린 것이다. 학교에서도 기본적인 역할 외에 다른 여러 가지 책임을 맡고 있다 보니 머릿속을 각각의 구획으로 나누어 살아야 할 것 같은 심정이었다. 이런저런 일들이 뒤섞여 점점 꼬여만 가는 것 같았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단순한 무언가에 집중해 보자는 마음으로 카페화실에 갔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만큼은 그 시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 테니까. 역시나 첫 주는 따라서 그리고 싶은 그림을 고르고, 적당한 패널을 찾아 선긋기로 밑작업을 하는 것만으로 한 시간을 보냈다. 밑작업을 마친 화면에 옅은 크레파스로 밑그림을 그리고 나니 또 한 시간. 그렇게 두 시간을 집중하는 동안 복잡했던 일들은 조금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는 두 시간은 오직 한 가지로만 통합이 되는 것 같다.
이후 두 주에 걸쳐 채색을 하면서 최종적으로는 3주에 걸쳐 완성을 했다. 서두르지 않고 작업을 하니 완성하는 데까지 평소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렸지만 결코 그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완성도도 그다지 높지 않아서 3주간 시간을 투자한 것 치고는 그림 자체의 만족도도 높지 않았다. 마지막 마무리를 위해 바니시(vanish)를 바르고 마르기를 기다렸다. 바니시는 흔히 니스라고 부르는 도료인데, 크레파스로 채색을 마치고 바니시를 바르면 색이 변형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다. 빛이나 열, 공기 등과 접촉해서 채색이 변형되지 않고 원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다. 바니시를 바른 후 사용하던 용품들을 씻고 정리하면서 마르기를 기다리며 그림을 보니 이번에도 이전 그림들과 공통점이 보인다.
‘거북이가 가는 길...’
나름 그림의 제목까지 붙여보니 왜 이 장면을 골랐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왜 하필 거북이였을까?’ ‘왜 거북이 한 마리만 그렸을까?’ ‘다른 동물이나 사람은 어디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이어졌다.
천천히라도 결국 시작한 작업을 끝마쳤다.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스스로 이 작업을 해냈다. 결과물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아도 이 시간을 즐겼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빠르게 속도를 내지 않았지만 충분히 이 시간에 집중했고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그것으로 됐다. 다른 누군가와 속도를 다투지 않고, 내 속도대로 가도 괜찮다. 누군가로부터 결과를 평가받지 않아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할 것이다. 기대한 만큼의 결과물이 아니더라도 그 과정에 정성을 들였으면 족하다.
결국...!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 내 길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