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드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감사하다
‘야야.. 이거 너무 맛있다.’
병실로 들어서는데 엄마가 침대에 앉아 무언가를 드시고 계셨다. 맛은커녕 식사로 나오는 죽 두어 숟가락 드시는 것도 힘겨워하시면서 ‘맛’이 있다는 말씀을 하시다니. 생경한 광경에 눈도 귀도 번쩍 뜨였다. 도대체 뭐길래...? 엄마의 손에는 동글납작하고 옥수수 알맹이가 박힌 수제어묵이 들려있었다.
좀처럼 병원 식단에 적응을 못하셔서 집에서 드시던 반찬 몇 가지와 싱싱한 오이를 사서 부랴부랴 식사시간에 맞춰 오는 길이었다. 입안도 헐고 식욕이 없으시다며 식사 때마다 고역이라고 하셨는데 맛있다는 말씀이 첫눈처럼 반가웠다.
‘어쩐 일로 맛있다는 말씀을 다 하시고... 그게 뭔데요? 어디에서 난 거예요?’
엄마는 옆 병상을 가리키시며,
‘여기 이분이 주셨어. 근데 너무 맛있다, 얘. 어디서 샀는지 물어보고, 너도 다음에 올 때 몇 개 사와라. 나도 먹고 옆에도 나눠 드리게.’
모처럼 입에 맞는 것을 드셔서 그런지 엄마는 표정도 밝고 기분도 좋아 보이셨다. 엄마가 드시고 있던 수제어묵은 같은 병실의 옆 병상 환자분이 나눠준 간식이었다. 그분도 소화기계통 암 환자분이셨는데 오랜 투병 생활로 식욕부진에 저체중으로 고생을 하고 계셨다. 입맛이 없고 소화가 힘드니 소화기계 암 환자들에게 식욕부진과 저체중은 짝꿍처럼 붙어 다니는 어려움이다. 체중이 줄어드니 체력이 달리고 체력이 약하니 투병의지까지 꺾이기 십상이지만, 약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난제 중에 난제다. 어떤 식으로든 체중을 유지하고 체력을 보충하는 것이 장기간 병마와 싸우는데 기본이요 핵심인 걸 알면서도 말이다.
엄마의 옆 병상에 입원하셨던 환자분은 TV 먹방 프로그램의 열혈 시청자였다. 처음에는 같은 병실을 쓰면서 하루 종일 TV를, 그것도 종일 먹방을 보는 분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힘들었다. 2인실 벽면에 걸린 TV는 하나인데, 하루 종일 TV를 켜 놓는 것도 그렇거니와 내게 먹방은 그다지 관심 있는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유튜브 인기채널 중에도 음식과 관련된 채널이 많다고는 들었지만 TV에 수많은 채널에서 그렇게 다양한 음식 관련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채널도 프로그램 숫자도 어마어마해서 놀랍기만 했다.
그런데 그분이 먹방을 보는 이유가 조금 뜻밖이었다. 음식이 소개되고 맛있게 먹는 내용이 전부인 그런 프로그램을 그토록 열심히 시청하시는 것은 너무나 현실적인,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일차적인 대처법이었던 것이다. 먹고 싶은 생각도, 의지도 별로 없지만 화면 너머 먹음직스럽게 조리되거나 출연자들이 맛있게 먹는 장면이 나오면 그 음식을 바로 배달시키거나 사드신다고 했다. 너무 일차적인 욕구에 충실하다고 내가 외면했던 먹방은 그분에게는 그 자체로 식욕촉진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분이 드시게 된 것 중에 하나가 수제어묵이었다. 오랜 투병 생활로 인해 입원했던 병원의 단골 고객(?)이셨는데, 병원 편의시설에 수제어묵 매장이 있었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 마침 같은 병실을 쓰면서 며칠 동안 엄마가 계속 잘 드시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동병상련이랄까... ‘이거라도 한 번 드셔보세요.’ 하는 마음으로 보호자자를 통해 사온 어묵을 몇 개 나눠주셨던 것이다. 그분은 이후로도 엄마에게 미니 와플 과자,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땅콩버터 프레첼 같은 간식거리를 추천해 주셨다. 체중조절을 해야 하는 일반인들이라면 거리를 두어야 할 고열량 간식들이었지만 식욕부진한 엄마에게는 새로운 돌파구였다. 몇 가지 추천 간식들은 잠깐 반짝 좋아하셨지만 이내 시들해졌고, 수제어묵만큼은 지금까지 엄마의 좋은 간식이 되고 있다.
한 번은 백화점 식품 매장을 들렀는데, 엄마가 입맛을 들인 수제어묵과 다른 브랜드의 수제어묵을 파는 매장이 있었다. 마침 폐점을 앞두고 타임 세일을 하고 있어서 종류별로 몇 가지를 담아왔다. 먼저 맛 들인 브랜드와는 또 다른 맛으로 역시 입에 잘 맞는 간식이 되었다. 우연히 타임 세일을 이용한 다음부터는 일부터 시간대를 맞춰서 백화점을 찾는다.
병원에 갈 때나 백화점 타임 세일 때 조금 여유 있게 구입해서 전자레인지에 데워드리면 식사 중간 단백질 섭취에 유용했다. 무엇보다 평소 잘 드시지 않는 생선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어 좋았다. 프리미엄 수제어묵이라 그런지 밀가루 없이 생선살로만 만들었다고 하더니 소화도 잘 된다고 하셨다. 좋은 간식을 소개해 주신 그분은 여전히 먹방을 즐기고 계실지. 부디 잘 이겨내고 계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퇴원하고 다시 시작된 항암치료는 매 차수, 매 주차가 살얼음판 같았다. 퇴원 즈음에는 상태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지만 혹시나 또다시 부작용이 생기지 않을지 조마조마했다. 투약 용량과 농도를 조절해서 시행한다고는 했지만, 한번 세차게 꺾인 기운을 회복하기가 쉽지 않았다. 2차, 3차 횟수에 반비례해 체중은 계속 줄었다. 더구나 그전에 없던 당뇨까지 생겼다. 원래 췌장암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2차적인 문제 중에 하나가 당뇨였는데 그동안은 다행히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당뇨 수치가 올라가고 나니 평소 드시는 식사양도 적은데 간식으로 빵이나 떡 같은 탄수화물을 양껏 권해 드리기가 조심스러웠다. 워낙 체중도 줄고, 체력이 달려서 뭐든 입에 당기는 것은 드시게 해서 체중을 유지해야 하지만 조리방법을 다양하게 하더라도 육류 섭취는 생각만큼 수월하지 않았다. 굽든, 조리든, 국을 끓이든 기껏해야 한두 점 드시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백화점 식품매장을 돌던 중에 육포가 눈에 띄었다. 종종 지나치던 매장이었지만 그전까지는 별로 의식하지 못했는데 그날따라 작게 개별포장된 육포를 보는 순간 이거다, 싶었다. 보관도 먹기도 편하게 소포장되어 있으니 언제든 어디서든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가격이 저렴하지는 않았지만 세일 중인 상품을 하나 사 보기로 했다. 엄마는 채식주의자도 아니시면서, 편찮으시기 전에는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셨던 터라 혹시나 입맛에 맞지 않으실까 봐 작은 것부터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웬걸, 혹시나 하는 걱정이 무색할 만큼 엄마는 생각보다 잘 드셨다. 처음 샀던 육포는 돼지고기에 치즈가 얹힌 것이었는데, 아주 만족해하셨다. 담당의가 매번 단백질 섭취를 강조할 때마다 난감했는데, 이렇게 쉽게 틈틈이 보충할 수 있었다니! 그때부터 육포도 좋은 간식으로 자리 잡았다. 여전히 부진한 식욕과 점점 줄어드는 체중을 극복하기에는 수제어묵도 육포도 한계가 있지만, 그마저도 알지 못했다면 더욱 애가 탔을 것이다.
평소 엄마가 장을 볼 때 사 오셨던 어묵은 흔하디 흔한 반찬용 사각어묵이 대부분이었다. 한 봉지에 여러 장이 들어 있어 가성비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재료. 가끔 내가 어묵탕용으로 포장된 종합어묵만 사들고 와도 맛보다 먼저 가격을 비교하곤 하셨던 분이다. 프리미엄 수제어묵은 한 개 값이면 반찬용 사각어묵 두 봉지를 사고도 남는 가격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가격을 묻지 않으신다. 그동안 엄마가 아끼고 절약해서 가꾸어 놓은 살림은 프리미엄 수제어묵을 매일 드셔도 아쉽지 않을 만큼 넉넉해졌다. 하지만 넉넉해진 살림에도 마음껏 먹고 맛을 즐길 수 없는 상태가 돼버린 현실이, 너무 아프다.
췌장암 환자들은 항암치료의 독성이나 암의 무자비함 때문이 아니라 영양실조로 생사를 달리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이 실감 날 때가 많다. 병마가 찾아오기 전까지의 엄마는 특별히 가리는 음식 없이 대체로 잘 드시는 분이었고, 비싼 고기반찬이 아닌 싱싱한 채소 만으로도 맛있는 한 끼를 즐기실 줄 아는 분이셨다. 하지만 전이 이후 눈에 띄게 수척해지는 모습은 옆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안쓰럽고 애처롭다. 식사량이 형편없이 줄어든 데다가 음식이 조금만 입에 맞지 않으면 바로 구토로 이어지고, 기력이 없어 활동량이 줄어드니 근육과 살이 빠지는 악순환이다.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지는 않지만 가끔 입에 맞는 간식을 찾아 조금이라도 순환의 속도를 늦출 수 있다면, 그것만이라도 감사하다. 최근에는 엄마를 위해 좋다고 사 들고 오는 음식 중에 대부분이 결국 내 몫이 될 때가 많다. 남은 음식을 꾸역꾸역 밀어 넣으며 가끔은 복잡한 감정이 들 때도 있다. 엄마는 좋은 음식을 마음껏 드시지 못하는데 나는 이렇게 아무렇지 않다니... 부질없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한 끼도 마음껏 배부르게 못 드시는 엄마가 애처롭고 안타깝다. 맛이 없는 것도 아니고 영양가가 없는 것도 아니어서 맛있는 음식을 잘 먹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내 모습이 미울 때가 있다. 그래도 어쩌랴. 보호자가 잘 먹어야 잘 보살필 테니 아깝게 버리지 않고 나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배출하고... 어쩌면 당연한 일들이 당연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무탈하게 오늘 하루 먹고, 자고, 배출했으면 그걸로 됐다, 싶다. 환자에게 에너지가 될 수 있는 맛 좋은 먹거리만큼 힘이 되는 것은 보호자들이 주는 지지와 응원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다. 그렇게 지치지 않고 지지와 응원을 보내려면 내가 잘 먹고, 잘 자고, 잘 배출해야겠지.
엄마를 생각하며 쓰기 시작한 글이 결국 또 이렇게 나를 위로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