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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극한직업 Jul 11. 2023

보고 먹고 사고 즐기는 오사카 시내 투어

크고 작은 조각들이 모여

여행 4일 차의 아침은 지난 이틀과 사뭇 다르게 8시가 넘도록 고요했다. 그럴 만도 했다.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꽉 찬 일정을 보내고, 숙소에 와서도 짐 정리며 가계부 정리로 쉴 틈 없는 시간을 보냈으니.

컨디션에 따라 일정을 조정할 수 있는 것도 자유여행의 장점이었기에 우리는 서두르지 않고 눈이 떠지는 대로 하나둘 일어나 새로운 하루를 준비했다.


숙소를 오고 가는 길에 보니 동네에 의외로 아침식사를 파는 가게가 많았다. 일본인들은 아침을 식당에서 사 먹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대관람차를 타러, 캡틴라인 페리를 타러, 지하철을 타러 숙소 근처를 여러 번 오가며 아침에 연 가게들을 보게 되었고, 메뉴와 가격을 보니 아침식사로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침 오사카 시내를 구경하기로 한, 급할 것 하나 없는 일정이었기에 편의점 대신 동네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다. 눈여겨봐 둔 서너 개의 식당 중 원하는 메뉴를 선택해 흩어졌다.


부리또, 카레 등으로 제각각 든든히 배를 채운 뒤 오사카코역에서 모였다.

모든 노선이 연결되어 환승이 쉬운 우리나라와 달리 오사카의 지하철 체계는 오사카 시에서 운영하는 시영 지하철인 오사카 메트로, 민간 기업에서 운영하는 사철(난카이, 한신, 한큐 등), JR이라는 회사에서 운영하는 JR 노선으로 나누어져 각 교통패스마다 이용할 수 있는 노선이 다르다. 환승도 시영은 시영끼리, JR은 JR끼리만 가능하고, 사철은 환승이 불가능하단다. 솔직히 설명만으로는 어떻게 하라는 건지 다 파악하기도 어려울 만큼 복잡했다.

그나마 우리가 구매한 이코카 카드로 시내의 주요 관광지는 대부분 이동이 가능했다.

도톤보리나 난바로 가려면 혼마치역에서 환승을 한 번 해야 했지만 우리는 거리를 구경할 겸 환승 없이 혼마치역에서 내려 걸어가기로 했다.


여행 4일 차 오전 11시, 오사카 시내


구로몬 시장, 포켓몬 센터, 돈키호테 등 아이들마다 관심사가 달랐기 때문에 조별로 흩어져 구경과 쇼핑, 식사를 하고 저녁에 다 함께 톤보리 리버크루즈 앞에서 모이기로 했다. 리버크루즈는 여러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희망한 시내의 유일한 관광지였다.

일반적으로 공중 정원이나 하루카스 전망대, 햅파이브 관람차 등이 주요 관광코스였지만 아이들은 전망대가 남산타워보다 낮다는 이유로, 관람차는 덴포잔에서 탔다는 이유로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충분히 그럴싸한 이유였기 때문에 우리는 바쁘게 이곳저곳 찾아다니기보다는 여유 있게 돌아다니며 유명한 간식도 맛보고 소소한 쇼핑도 즐기기로 했다.

지붕이 있어 비가 오는 날 좋을 것 같은 시내의 상점가

마침 날씨도 적당히 선선하고 지극히 화창했다. 바로 그 다음주부터 태풍과 호우 뉴스가 뜨기 시작했으니 촉박하게 준비해 5월 말에 떠나온 보람이 있었다.

역에서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 각종 가게들이 늘어선 신사이바시 상점가가 나타났다.

오사카 쇼핑 목록을 미리 찾아보고 온 덕분인지 아이들은 제법 아는 척을 했다.


“이거 유명해요, 곤약젤리!”

“엄마가 동전파스 사 오라고 했어요.”


한 아이는 부모님과 상의해 오라고 한 과제를 충실하게 이행해 왔다. 엄마 선물, 아빠 선물, 할머니 할아버지 선물, 친구 선물 등 일일이 사진과 함께 목록을 작성해 보내준 세심한 어머니의 메시지를 살피며 쇼핑할 물건을 찾았다.

너무 많은 상품 속에서 원하는 물건 찾기를 어려워하는 아이에게 팁을 주었다. 점원에게 가서 사진을 보여주라고.


어렵거나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는 함묵하고 멈추는 특성이 있는 아이였다. 1학년 초반 프로젝트 활동에서는 낯선 곳에 가면 혼자서 물 한 병 사기를 거부해 좀처럼 지갑을 여는 일이 드물었다.

그러나 3년 간 조금씩 성장한 아이는 쭈뼛거리면서도 멈춤 없이 점원에게 다가가 휴대폰을 내밀었다. 사진을 본 직원은 친절하게 물건이 있는 위치를 안내해 주었다.


비슷해 보이는 여러 개의 상품을 아이는 신중하게 사진과 비교했다. 숫자가 다르다고 이건 아니라며 고개를 내젓고 내려놓기를 몇 번 반복한 끝에 원하는 물건을 찾았는지 환하게 웃었다.

그림과 글자를 비교하며 신중하게 쇼핑한 샤론파스


“이걸로 할게요!“


한 번 성공적인 쇼핑을 하고 나자 자신감이 샘솟은 아이는 그 다음 물건부터는 교사의 도움을 구하지 않고 먼저 말했다.


“물어보고 올게요!”


그리고는 혼자서 씩씩하게 점원에게 다가갔다. 편의점에서 물 한 병 사기도 어려워하던 아이가 해외에서 쇼핑이라니… 놀라운 발전이었다.

아이들의 변화는 더딘 것 같아도 어느 날 돌아보면 분명하게 차이가 느껴진다.


나 홀로 오롯이 이루어낸 성과는 아니다. 아이 스스로의 노력과 가정, 학교 등 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쌓아온 시간들이 모여 이루어낸 변화일 것이다.

나의 역할은 아이의 긴 인생에 아주 작은 한 조각뿐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 크고 작은 조각들이 모여 의미 있는 한 페이지가 될 것이라 믿는다.




신사이바시는 도톤보리, 난바 등 주요 관광지와 쭉 이어져있다.

글리코상을 비롯한 큰 간판들로 유명한 도톤보리는 다양한 길거리 음식 등 먹거리가 많다. 여러 가지 먹거리를 맛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욕구에 따라 점심은 한 곳에서 거하게 하기보다는 이것저것 조금씩 맛보며 끼니를 해결하기로 했다.

야경을 볼 수 있도록 8시 15분 톤보리 리버크루즈를 티켓팅하고 거리를 구경하며 구로몬 시장으로 향했다.


구로몬 시장은 1902년에 개설된 재래시장으로, 각종 식재료와 음식을 판매하는 180여 개의 점포가 있다고 한다.

노점에서 구워주는 해산물 꼬치

오가면서 보이는 해산물 꼬치, 장어구이, 십엔빵 등 각자 먹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사 먹고, 초밥집에 들어갔다. 원하는 초밥을 바로 쥐어주는 가게여서, 메뉴판을 보며 제각각 입맛대로 주문을 했다.

계란, 새우, 장어, 오징어, 연어, 광어 등 메뉴판에 사진과 한글이 있어 아이들은 손가락과 한국어만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저는 이거 하나 주세요, 계란!“

“야, 한국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에그라고 해야지, 에그!“


짧은 영어를 뽐내며 아는 척을 하던 아이는 이어서 말했다.


“저는 참치 초밥 하나 주세요.”


어설프고 귀여운 소통이었지만 어쨌든 의미는 통했다.


사실 언어적 표현보다 의미를 잘 전달하는 건 비언어적 표현이다. 시선, 몸짓, 손짓, 표정, 자세 등을 적절하게 사용해야 소통이 원활하다.

유창한 말로 일어에 자신감을 보이던 한 아이는 열심히 ‘이쿠라데스카(얼마입니까)‘를 반복했지만 소통은 되지 않았다. 직원은 바코드를 찍느라 바빴고, 금액이 얼마인지는 아직 확인도 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일어 한 마디 못해도 직원과 눈을 맞추고, 상대가 준비가 되었을 때 메뉴판을 가리키는 것 하나만으로 소통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교육과정에서는 언어적 표현은 가르쳐도 비언어적 표현까지 일일이 가르치지는 않는다. 그건 대체로 경험적으로, 모방을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발달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게 어려울 뿐이고.

새삼 아이들을 가르칠 때 이런 부분에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히 요기를 하고 쇼핑을 하고 나니 여러 아이들이 현금이 부족했다. 예상보다 카드 결제가 안 되는 곳이 많은 탓이었다.

요즘은 일본도 카드 결제가 많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하는데, 현금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한국에 익숙한 나에게는 생각보다 현금 사용이 많다고 느껴졌다. 특히 면세까지 되는 큰 가게에서도 현금만 된다고 해 다소 당황스러웠다.

도쿄바나나 등을 파는 가게였는데 중국 관광객들이 바구니로 상품을 쓸어 담아 사는데도 오로지 현금 결제만 가능했다.


하지만 트래블월렛 카드는 현금이 없어도 바로 충전해 출금할 수 있다는 게 장점. 수수료가 무료인 이온 ATM 기기가 많지 않다는 후기가 있었지만 우리의 여정인 간사이 공항, USJ, 소라니와 온천에는 모두 기기가 있어 사용에 딱히 불편함이 없었다. (덴포잔 대관람차, 캡틴라인 페리 등 단체 티켓팅에 예상외로 현금이 필요해 나는 여러 번 출금을 했다)

구로몬시장에서 역시 구글지도에 aeon ATM을 검색해 보니 근처 난바역에 기기가 있었다.


지하철 역으로 들어가니 익숙한 분홍색 기기가 보였다. 공항에서 한 번 경험해 봤다고 아이들은 한결 능숙하게 버튼을 눌렀다.

물론 비밀번호를 또 틀린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괜찮다. 다시 하면 되니까.

한두 번에 어렵다면 여러 번 하면 된다. 실패의 경험도 차곡차곡 쌓이면 성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된다.

트래블월렛 카드로 출금하기

여행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3,000엔씩만 출금했다. 부족하면 또 ATM 기기를 연습할 기회가 생겼을 텐데, 다행히(?) 부족하거나 많이 남지 않고 적당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글리코상 포토스팟에서 사진도 찍고, 카페에서 지친 다리를 잠깐 쉬게 하고, 도톤보리 돈키호테에서 막바지 쇼핑을 했다.

USJ에서부터 ‘사고 싶은데 꾹 참았어요’를 반복하던 아이는 돈키호테의 유혹 속에서도 그 다짐을 잊지 않고 구매할 물건을 조절했다. 그리고 학교에 와서도 아직 종종 그 말을 한다. 부디 그 다짐이 오래오래 가주길 바랄 뿐이다.


저녁 식사까지 마치자 금세 리버크루즈를 탈 시간이었다. 하나둘 모여든 아이들이 서로 얼마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지 자랑을 했다. 쇼핑한 물건들을 보여주며 설명을 하기도 했다.

리버크루즈는 20여분 짧게 강을 따라 도톤보리 시내를 왕복했다.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화려한 네온사인 사이로 한가롭게 배를 타고 오가는 시간은, 오사카의 마지막 밤을 추억하기에 적당했다.

리버크루즈에서 본 도톤보리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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