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서 고생을 하냐고요?
학생들과 오사카 자유여행을 다녀오고, 그 과정을 기록하며, 글을 본 몇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받았다.
표현은 여러 가지였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대체로, 힘든 일을 자처해서 하는 것에 대한 감탄과 왜 그렇게까지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물론 모두 긍정적인 뉘앙스였고, 고맙게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나 스스로 나의 일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었다. '힘든 일'에 대한 기준은 다양하겠지만, 적게 받고 많이 일한다는 측면에서 나의 일은, 힘든 일이 맞다.
우리 학교는 늘 바쁘지만 2023학년도 1학기는 두 달간의 졸업여행 프로젝트가 추가되며 더욱 분주했다. 갑작스럽게 없던 업무가 생겨난다고 해서 있던 업무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물론 일을 더 한다고 해서 수당이나 성과급을 받는 것도 아니다.
졸업여행 외에도 1학기 동안 우리는 신입생 OT, 입학식, 1-3학년 학부모 상담, 전체 MT, 취업자 홈커밍데이, 축제, 대학문화체험(2회), 여름캠프 등을 진행했다. 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들이었다.
일본 졸업여행 도전기 영상을 본 친구는 나에게 '영혼을 갈아 넣었다'라고 표현했다.
모든 과정을 오롯이 혼자 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리 과장되지 않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으로 도전하는 해외 자유여행을 보다 의미 있고 즐겁게, 무사히 잘 다녀오기 위해서 매주 두 시간씩의 프로젝트 수업은 물론 쉬는 시간 틈틈이도 개별적인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카드 발급, 계좌 인증, 이메일 인증, 서류 발급, 로밍 등을 지도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각종 블로그, 카페, 유튜브 등 자료검색과 어플 탐색, 기안, 공지사항, 정산, 거기에다 글 쓰기까지 하려니 퇴근 이후에도 늦도록 졸업여행에 매달리는 날이 많았다. 그 와중에도 기존 수업과 행사, 상담 등은 변함없이 진행되었고.
그냥 패키지여행으로 진행했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왜 고생을 사서 했을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오히려 내가 '사서 한' 고생이기 때문에 더 열과 성을 다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가 아이들과 프로젝트 수업을 하는 이유는,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여 계획, 실행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며 성취감을 느끼는 과정을 통해자기결정력, 문제해결력, 협동적 상호작용 능력 등을 기르고 자신감, 자존감, 주도성 등을 향상하기 위함이다. 스스로 선택하였을 때 아이들은 훨씬 동기가 부여되고, 의욕을 갖고 열심히 하며, 힘든 과정도 인내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결과에 대해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된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 인생을 단단하게 채울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길러가는 것이다.
나 역시 졸업여행을 준비하고 추진하며 매 순간이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하기 싫다고 생각한 순간도 있었고, 대충 넘기고 싶은 부분도 있었고, 개선이 필요한 점도 있었다.
글쓰기를 시작한 것도 마찬가지. 야심 차게 시작했으나 막상 바쁜 현실에 치이다 보니 귀찮아서 슬그머니 없던 일로 만들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돈을 받고 쓰는 것도 아니고, 구독자가 많은 것도 아니니 조용히 잠적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그러나 끝내 여기까지 온 것에는 주변 사람들의 긍정적인 피드백과 성과 등 다른 이유도 있지만, 스스로 선택하고 실행한 일이라는 이유가 크다. 내 의지로 시작했기 때문에 나는 의욕이 높았고, 더 잘 해내고 싶었고, 힘든 순간도 견뎌낼 수 있었고, 결과에 대해 누구보다 만족감을 느낀다.
반대로 스스로 결정하여 주도성을 가질 수 있는 일이 없어지면 사람은 자신감이 떨어지고 무기력해지며, 힘들 때 쉽게 포기하고,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 많은 우리 아이들이 그래서 더 어려움을 겪고, 아마 여러 직장인들도 그래서 일하기를 싫어하고 퇴사를 꿈꿀 것이다.
최근 수만 명의 교사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는 일반 학교의 이슈들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도를 넘는 민원과 불합리한 제도들이 결국은 교사들의 손발을 묶어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처지로 만든다는 점이다. 교사가 무기력해진 공교육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나는, 그리고 우리 학교 교사들은 늘 아이들에게 더 의미 있고 필요한 교육을 위해 고민한다.
아마 대부분의 교사가 그런 마음으로 교직생활을 시작할 것이다. 다만 우리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교육을 하는 일에 민원이나 제도 등의 문제가 걸림돌이 되지 않으며, 내 잘못이 아닌 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을 우려하지 않기 때문에 시작할 때의 마음을 비교적 닳지 않게 지킬 수 있다. 제도권에 속하지 않은 대안학교라 어려운 부분도 많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장점도 많다.
더 나은 교육을 위해 고민하다 보면 매년 원래 예정된 일에, 계획에 없던 일들이 더해지며 그렇지 않아도 많은 업무가 더 많아진다.
우리 학교에는 '사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때로는 너무 숨 가빴던 학기에 다음 해에는 행사의 종류와 스케일을 좀 줄여보자는 자체평가가 나오기도 하지만 결국 '그래도 아이들이 참 좋아한다'는 한 마디면 다시 원상복구가 되곤 한다.
실적이나 결과를 객관적인 지표로 평가하기 어려운 우리의 일에서 성과란 아이들의 행복, 즐거움, 웃음, 성장, 변화 등일 것이다.
실제로 졸업여행을 다녀온 뒤 아이들은 크고 작은 변화를 보였다. 특히 한 아이는 눈에 띄게 웃음이 많아지고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외로워 친구를 사귀고자 뒤늦게 학교에 입학을 한 경우인데, 자립을 해서 스스로 생활을 꾸릴 만큼 능력이 우수함에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많은 기회를 박탈당하고 자유를 제한당한 것에 억울한 마음이 많았다고 했다. 그래서 해외 자유여행이 단순히 여행의 즐거움을 넘어서, 자신을 믿어주고 기회를 주었다는 것에 대한 행복으로 다가온 듯했다. 앞으로는 제 힘으로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누리고 살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생긴 것 같았다.
그 아이 덕분에 나도 힘든 자유여행을 추진한 것에 대한 보람이 한층 더 밀려왔다.
우리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를 참 좋아한다. 함께 어울리고 대화할 수 있는 친구들과 교수님, 자신들에게 필요하고 눈높이에 맞는 수업, 새롭고 다양한 활동 등 20여 년 간 누리지 못한 기회와 경험 속에서 아이들은 순수하게 기뻐하고 행복해하며 느리지만 조금씩 성장한다.
학교를 좋아하는 아이들, 열심히 준비한 행사에서 신나게 즐기는 아이들, 과거의 상처를 딛고 변화하는 아이들, 취업을 하고 번듯한 직장생활을 하는 아이들, 학교를 잊지 않고 계속 찾아오는 아이들… 그 모습을 보는 건 그 무엇보다 큰 성취감을 준다. 그리고 내가 고민하고 실행한 것들이 그 성과의 한몫을 차지할 수 있다는 건 참 보람되고 복된 일이다.
당연하게도, 직장생활이 온전히 일의 재미와 보람만으로 가득한 것은 아니다. 사실 나는 누구보다 빠른 퇴근을 원하고, 달력에서 빨간 날을 애타게 헤아리며, 금요일 오후부터 월요일 아침이 오는 것을 슬퍼하는 흔한 직장인이다.
일은 재미있지만 놀면 더 재미있고, 아이들은 좋지만 안 보면 더 좋다고 나는 종종 말하곤 한다. 아이들과 함께 한 졸업여행은 즐거웠지만, 방학 때 친구와 가는 여행은 더더욱 신나고 즐겁다.
때로는 나보다 적게 일하고 많이 받는 지인들을 보면서 현타가 오기도 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경력과 보장되지 않는 미래를 떠올리며 이직을 고민하기도 한다.
글을 쓰며 우리 학교의 장점을 열심히 늘어놓았지만 솔직히 요즘 사회의 기준에서 나의 일은, 좋은 직업은 아니다.
MZ 직장인들이 꼽은 좋은 직장의 기준은 △일과 삶의 균형, 워라밸 △연봉, 성과급 등 금전적인 보상 △우수한 복지제도 △적당한 업무량 등이라고 한다. 우리 학교는 워라밸이 자주 무시되고, 밝히기도 속상한 급여는 잘 오르지도 않으며, 방학이 유일한 복지라 말하고, 업무량은 차고 넘친다.
타인의 기준을 나의 기준으로 삼았다면, 진작에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았어야 할 직장이다.
그러나 나의 행복은 타인의 마음에 있지 않고, 내가 바라는 것은 타인의 부러움에 있지 않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 나를 진짜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 남들이 부러워하지 않아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 나의 마음을 잘 살피는 일은 타인의 시선에 반응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이곳에서 오래도록 일할 수 있는 건,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실제로 펼칠 수 있는 업무환경, 내가 노력하고 애쓴 것보다 더 큰 피드백을 돌려주는 아이들,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마음을 모으고 발을 맞추어 나아갈 수 있는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은 사회의 기준에 흔들리기도 하고, 몸과 마음이 지쳐 처음의 다짐이 흐려지기도 한다.
글쓰기는 그럴 때에 또 다른 힘이 된다. 다시금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를 되새기고, 마음을 다잡고, 계속 걸을 수 있게 하는 힘.
언젠가 나의 마음이 변하고 상황이 변한다면 다른 길을 찾을지도 모르는 일이나 지금의 나는, 이곳에서 대체로 행복하다. 그거면 된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