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학생들과 캠핑 프로젝트4
우중캠핑. 감성캠핑의 끝판왕이다.
텐트 안에서 토도독 지붕으로 모여드는 빗소리를 들으며 따뜻한 커피 한 잔. 거기에 은은한 모닥불을 바라보며 멍까지 때리면 금상첨화.
하지만 드라마 속 낭만 넘치는 화면과 달리 현실의 캠핑은 비가 내리는 순간 고생이 서너 배로 늘어난다. 감성과 고생은 정비례하는 법이다.
그래서 ‘갬성캠핑’이라고 하는 걸까… 하는 쓸데없는 의문을 가져보는 이유는, 그렇다. 비가 왔다, 우리의 캠핑날. 그것도 아주 많이.
고대하던 캠핑날 아침,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날씨가 좋아질 거라는 한 줄기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바로 전날까지도 비 예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일기예보는 자주 바뀐다.
그래서 캠핑일을 정한 이후 수시로 날씨를 확인했다. 아이들과 시사 수업을 하면서도 찾아보고, 생각나면 또 봤다. 나는 기상청을 그리 신뢰하지 않는 흔한 한국인이다.
그렇지만 2주 내내 확인한 예보에 캠핑일 비는 흔적도 비추지 않았기에 나는 얕은 빗방울이 흩날리는 출근길에도 잠시 지나가는 비일 거라는 기대를 걸었다.
다행히 아이들의 등교 전, 하늘이 살짝 갰다.
캠핑장으로 출발하기 전 오전에는 마트에서 장을 봤다. 장보기 역시 아이들의 몫. 조별로 캠핑장 대여료와 공동구매 비용 등을 제외한 장보기 예산을 나누어 주었고, 아이들은 작성한 목록을 보며 직접 물건을 구매했다.
고기를 구워 먹겠다고 계획한 조만 먼저 정육점에 내렸다. 각 조의 인원수에 따라 구매할 양을 계산해 갔는데, 주문하는 만큼만 썰어주면 좋으련만 정육점에서는 미리 포장해 놓은 고기 중에서 골라 구매하라고 한다.
당황해하는 아이들에게 두 팩 정도면 비슷할 거라고 힌트를 주었다. 대충 두 팩을 골라 가는 아이도 있고, 야무지게 휴대폰을 꺼내 두 팩의 무게를 더해보는 아이도 있었다.
양이 달라져 예상금액과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크진 않았기에 그대로 결제를 하고 영수증을 챙기도록 했다.
계획과 실제는 항상 다르다. 발달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에겐 교실 안 공부보다 경험과 상황 속에서 배우는 삶의 교육이 필요하다.
대형마트 홈페이지를 검색해 예산안을 짰지만 실제 금액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설명했다. 예상금액보다 더 싸거나 약간 넘는 건 괜찮지만 너무 비싸면 안 된다고.
아이들은 카트와 장보기 목록을 들고 분주하게 마트를 돌아다녔다.
계획한 상품을 구매하고 남은 돈은 각 조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원하면 간식 등을 더 구매해도 된다고 했으나 잠시 고민하던 아이들은 입을 모아 다시 저축을 하겠다고 말했다. 의외였다. 당장 과자를 사러 갈 줄 알았더니.
늘 용돈을 있는 대로 탕진하기 바쁘던 아이도 친구들의 의견을 따라 저축을 택했다. 아직 2학기는 한참 남았고, 캠핑 이후에도 기차여행 등 나머지 버킷리스트를 실행하려면 저축은 계속 필요했다. 아이들은 서서히, 불필요한 소비를 줄여야 더 즐거운 것들을 할 수 있음을 깨달아가는 듯했다.
예산이 초과된 조는 급하게 계획을 수정하기도 했다. 프렌치토스트를 먹겠다며 연유에 버터, 딸기잼, 슬라이스햄, 체다치즈, 계란, 우유 등을 빠짐없이 골라 담은 덕분이었다. 동네마트는 대형마트와 달리 종류나 용량이 다양하지 않았다. 개중 제일 작고 저렴한 걸 골랐는데도 예산을 초과해 별 수 없이 내용물 일부를 포기해야 했다.
“돈이 모자라서 다 살 수 없어. 우선순위를 정해서 이 중에 너희가 꼭 먹고 싶은 건 남기고, 없어도 되는 걸 몇 개 빼.”
그렇게 화려했던 계획보다 다소 소박해진 장보기가 완료되었다.
마지막으로 식재료를 포함한 조별 준비물을 최종 확인한 뒤 전부 트럭에 실었다. 1톤 트럭을 가득 채우고서야 짐 챙기기가 끝이 났다.
오전 내내 준비물을 챙기고, 학교에서 점심식사를 한 뒤 캠핑장으로 출발했다.
자라섬 오토캠핑장에 도착을 하고 나니 하늘이 어두컴컴했다. 한 줄기 희망마저 가린 먹구름이 머리 위에 드리워져 있었다.
어느샌가 슬그머니 바뀐 일기예보에도 비 그림이 점점 늘어나 비, 비, 계속 비, 내일까지 쭉 비를 나타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비가 올 것이 확실했다. 헛된 기대보다 빠른 대안을 마련해야 할 때였다.
“……우선 타프를 전부 다 칩시다.“
조금이라도 수고를 덜어보고자 두 조당 타프 하나를 사용하는 걸로 머리를 굴렸건만, 물거품이 되었다. 우중캠핑에 타프는 필수다. 텐트만으로는 비를 피하기 어렵고, 습기를 감당할 수도 없다.
작년에 텐트와 타프 열두 개를 치고 밤새 몸살로 앓았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벌써 삭신이 쑤시는 기분이었지만 눈물을 머금고 조별 자리마다 타프를 하나씩 설치했다.
그래도 텐트 설치에 선택과 집중을 한 성과가 없지는 않아 교사들이 타프를 치는 사이에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텐트를 완성했다. 캠핑의자와 테이블도 척척. 간헐적 개입이 필요했으나 그 정도면 충분히 훌륭한 결과물이었다.
부족한 타프는 학교에 남아있는 동료들에게 SOS를 보냈다. 수업 및 각자의 업무가 끝나는 대로, 하나둘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캠핑장에 모였다.
프로젝트 수업에는 담당교사가 정해져 있지만 때로는 활동내용에 따라 또 다른 인력을 필요로 할 때가 있다. 특히 이런 캠핑 같은 경우는 담당교사들이 각 조별 아이들을 챙기다 보면, 정작 우리의 식사나 잠자리는 챙기기가 버거워서 지원인력이 간절했다.
의무가 아님에도 내 일처럼 나서주는 동료들이 있어 얼마나 고맙고 든든한지.
어쩌다 보니 글을 쓰고 방송에도 출연을 하게 되었지만 사실 내가 이야기하는 것들이 오롯이 나 혼자 해낸 일들은 아니다. 아마 혼자였더라면 결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남들만큼 보상받지 못해도, 각자의 사명감으로 제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
비단 우리 학교 교사들 뿐만 아니라 아마 내가 모르는 사회 어딘가에서 그렇게 책임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회를 지탱하는 건 대단하고 특별한 누구 한 사람이 아니라 묵묵히 제 몫을 해내는 수많은 사람들이다.
그런 믿음으로 나 역시 오늘도 나의 일을 한다.
여러 도움의 손길에 힘입어 모든 타프와 텐트를 설치하고 저녁식사를 준비할 무렵, 타이밍도 좋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튀어오르는 빗방울을 피해 텐트 옆 나무데크 위 작은 공간에 옹기종기 모였다.
요리에 필요한 레시피도 사전에 공부를 했다. 어설픈 솜씨여도 제 손으로 만든 요리를 아이들은 맛있다고 연신 감탄하며 싹싹 비웠다.
비 때문에 꿉꿉하고, 감기라도 들까 걱정되고, 젖은 장비들을 정리할 생각에 한숨이 나는 건 나뿐인 듯했다. 활동을 제한하는 비가 아쉬울 만도 하련만 아이들은 빗속에서도 아랑곳없이 신이 났다.
때때로 감사보다 불평불만이 커질 때 아이들은 오히려 나의 스승이 된다. 그래, 비가 오면 어떠랴. 부정적인 생각은 밀어내고 우중캠핑을 즐겨보기로 했다.
때마침 비가 잦아든 틈을 타 화로에 장작을 넣고 캠프파이어를 했다. 어느새 캠핑장에는 새카만 어둠이 내렸다.
모닥불에 오로라를 태우고, 마시멜로와 밤도 구웠다. 바닥에 고인 물 위로 일렁이는 불이 캠프파이어를 한층 더 운치 있게 했다.
이런 게 우중캠핑의 매력이구나…. 라고 아주, 매우, 몹시 잠깐 생각했다. 이윽고 다시 비가 쏟아졌고, 캠프파이어는 급하게 마무리되었다.
비는 밤새도록 내렸다. 아침이 되어 철수할 시간이 될 때까지도 그칠 기미가 없었다.
타프를 남겨놓은 채 텐트를 정리하고 아침식사를 했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다.
빗속에서 후다닥 타프를 접어 대충 쑤셔 넣고, 비에 젖은 장비들도 일단 때려넣었다. 정리니 물품체크니 무언가를 하기엔 아이들이 비를 막을 준비가 거의 되어 있지 않았다. 최대한 빠르게 짐을 챙겨 학교로 돌아가는 게 최우선 목표가 되었다.
우리는 피난민처럼 남루한 몰골로 학교에 복귀했다. 학교에 와서도 우리의 캠핑은 아직 끝이 아니었다.
점심을 먹고, 아이들 나름대로 설거지를 한 식기와 조리도구들을 몽땅 꺼냈다. 취사장에 일일이 따라갈 수 없어서 설거지 상태를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설거지를 한 사람에 따라 뽀득뽀득 깨끗한 조도 있지만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조도 있었다. 이번엔 교사들의 지도 하에 다시 설거지를 하고 물기를 제거해 처음 상태로 정리를 했다.
이삿짐만큼 쌓였던 짐도 다시 풀어 제자리에 정리했다.
캠핑장에서 깨끗이 씻지 못한 아이들은 기숙사에서 샤워도 다시 했다.
젖은 타프와 텐트는 햇볕에 말려야 하지만 며칠간 연휴에 비 예보가 계속되었다. 하는 수 없이 그냥 두었다가 해가 쨍한 날 꺼내 잔디밭에 말렸다.
젖은 채 시간이 지난 타프에선 생선 비린내가 났다…
물기를 닦고 소독제를 뿌리고 햇볕에 널어 바짝 말렸다. 이너텐트와 플라이, 타프까지 십여 개를 펼쳐서 널고,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고정시키고, 다시 걷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캠핑은 장비관리에도 상당한 수고가 필요하다. 정말이지 취미로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은 리스펙해야 한다.
첫 우중캠핑을 마치며 나는 다짐했다. 비 오는 날은 집에 있자,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