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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탈출: 마카오 편

11호 태풍 야기가 홍콩으로 이동 중입니다

by 극한직업 Mar 23. 2025

우리는 홍콩여행 중 하루를 마카오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계획했다.

마카오 여행은 준비부터 난항이었다.


홍콩에서 마카오를 가는 방법은 페리를 타고 다녀오는 방법이 제일 빠르고 편하다. 그런데 홍콩에서 마카오를 가는 페리는 셩완 터미널과 차이나 페리 터미널 두 군데가 있고, 마카오에서 홍콩으로 오는 페리도 타이파 터미널과 외항 터미널 두 군데가 있다. 게다가 페리 회사도 터보젯과 코타이젯 두 군데가 있다 보니 처음 정보를 접했을 때는 어떻게 가야 하는지 선택하기가 다소 혼란스러웠다.

처음에는 우리 숙소가 있는 침사추이의 차이나 페리 터미널을 이용하면 되겠다 했는데, 알아보니 차이나 페리 터미널에서 마카오로 가는 페리는 월목토일만 운항을 한단다. 우리가 갈 수 있는 날은 목요일 뿐이어서 마카오에 맞춰 전체 일정을 계획했다. 그리고 마카오에서 차이나 페리 터미널로 돌아오는 페리는 마지막 페리가 17:30이라 돌아올 때는 셩완 터미널로 와서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오기로 했다.  


그런데 차이나 페리 터미널의 예매창이 열리길 계속 기다려도 도통 열리질 않았다. 날짜가 가까워져도 여전히 열리질 않아서 문의를 해보니 차이나 페리 터미널에서 운항하는 페리가 중단되었다는 답을 받았다.

어쩔 수 없이 셩완에서 외항으로 들어갔다가 마카오를 구경하고 타이파에서 셩완으로 이동하는 걸로 계획을 변경했다.

대신 그 와중에 좋은 점은 홍콩에서 마카오로 가는 편도 페리 티켓을 무료로 제공하는 프로모션을 찾았다는 것이다. 마카오 관광청에서 하는 행사였는데, 1인당 6장씩 예매가 가능하여 티켓값을 절약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일정 계획과 티켓 예매부터 골치가 아팠던 마카오 여행 날.

전날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와 함께 심상치 않은 예보가 들어왔다. 필리핀 동쪽 해상에서 발생한 11호 태풍 야기가 홍콩을 향해 진행 중이라는 뉴스였다. 숙소의 직원 분도 지금 태풍이 오고 있고, 태풍이 오면 상점, 식당, 교통 등이 셧다운 되니 참고하라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다행히 당일 아침 비바람은 심하지 않았고, 당장 운항이 취소되었다는 공지는 없어서 일단 예정대로 셩완 터미널에 가보기로 했다.


마카오로 가려면 챙겨야 할 준비물이 많았다. 국경을 넘어가기에 여권은 기본, 무료 티켓 수령을 위한 홍콩행 비행기 티켓도 필요했다. 그리고 마카오 입국에 입국신고서는 별도로 작성하지 않는 대신에 홍콩에 입국할 때 작성했던 신고서를 보관했다가 가져가야 했다.

비행기 티켓과 입국신고서는 홍콩에 입국하던 순간부터 신경 써 챙긴 덕분에 문제없이 모두 챙겨갈 수 있었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셩완 터미널에 도착했다. 태풍 예보 때문인지 관광객이 거의 없어 한적했으나 창구는 열려 있고 페리도 운항을 하고 있었다.

일단 운항을 하는 걸 보니 괜찮겠지 싶어 티켓을 교환하는데 창구 직원이 물었다. 지금 태풍이 오고 있어서 3시 전에 나와야 하는데 그래도 마카오로 가겠느냐고.

어차피 이제와 계획을 변경한다 해도 다른 곳을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고, 대략 시간을 계산해 보니 그래도 마카오에 가면 한두 군데는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신 그룹별로 이동하기로 했던 계획은 철회하고, 단체로 인솔하여 최대한 빠르게 관광을 하기로 했다.    

셩완 터미널에서 마카오로 가는 페리를 탔다셩완 터미널에서 마카오로 가는 페리를 탔다


"마카오 외항 터미널에 내리면 호텔 리스보아&그랜드 리스보아 또는 MGM 마카오셔틀을 타고 세나도 광장으로 이동하겠습니다. 구경 후 베네시안 리조트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고, 베네시안만 구경한 후에 3시 전에 타이파 터미널로 가요. 점심은 중간에 에그타르트나 간식으로 가볍게 해결하고, 식사는 셩완 터미널 복귀 후 터미널 식당가에서 하겠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상황을 설명했다. 이미 태풍 이야기가 오고 갈 때부터 심각성을 인지한 아이들은 축소된 관광 일정에도 불평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마카오로 향하는 페리 안에서 돌아오는 페리의 시간을 변경하기 위해 정보를 찾아보았다.

조금 더 효율적인 이동 경로를 찾기 위해 터보젯과 코타이젯 공식 홈페이지를 모두 들어가 보고, 타이파 페리 터미널과 외항 터미널 양측에서 이동하는 방법을 모두 찾아보았다.

여러 사이트를 살펴보아야 하는 복잡한 과정이었으나 처음 티켓을 예약할 때 여러 번 헤맨 덕분에 오히려 비상상황에서 정보를 찾는 건 훨씬 수월했다. 허비했다고 생각한 시간들은 귀중한 경험이 되어 내 안에 쌓여 있었다.  


찾아본 결과 기존에 우리가 예약한 타이파 페리 터미널에서는 2시가 마지막 페리라 시간이 너무 빠듯했다. 티켓변경을 요청하고 결과를 기다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라 기존 티켓은 취소를 하고 새 티켓을 구매하기로 했다. 환불불가 티켓이었지만 자연재해니 감안해주지 않을까 싶었다.

베네시안 리조트에서는 타이파 페리 터미널이 가깝지만 외항까지 다시 오는 것도 차이가 크진 않았고, 외항에서는 4시 30분까지 페리가 운행한다고 하여 외항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일정을 또 수정했다.


문제는, 마카오 내에서 이동하는 시간이 예상보다 지체되었다는 것이다.

마카오는 호텔 간 무료 셔틀이 촘촘하게 잘 되어 있어서 많은 자유여행객들이 호텔셔틀을 이용해 이동을 한다. 노선이 조금 어려울 수 있지만 주요 관광지로 가는 호텔 셔틀만 파악을 하고, 정류장만 잘 찾으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래서 우리도 호텔 셔틀을 이용하기로 했는데, 버스의 배차 간격과 정류장 간 이동시간은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게 문제였다. 단체인지라 택시를 이용하기도 여의치 않았고 어쨌든 셔틀을 이용하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대신 관광지 구경 시간이 예상보다 매우매우 짧아졌다.


"조별로 구경하고 사진 찍고 15분 후에 이 자리에서 다시 모여요."


세나도 광장에 도착하자마자 급하게 일정을 통보했다. 15분 관광은 10일 간 7개국 정도를 돌아보는 유럽 패키지여행보다 빡센 일정이었다.

세나도 광장은 마카오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포르투갈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어 마치 유럽에 온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데, 내가 본 것은 광장 입구밖에 없었다. 그룹별로 흩어진 인원들이 이탈 없이 제시간에 모이도록 자리를 지켜야 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그 와중에 야무지게 에그타르트까지 사 들고 돌아왔다.

'빨리빨리'를 외치며 세나도 광장을 찍고 곧바로 베네시안 리조트로 이동을 했다. 정류장에서 시간이 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는 버스가 어찌나 야속하던지... 초조한 마음을 감추며 계속 이동시간과 페리 홈페이지의 공지사항을 확인했다.

버스 안에서 스치듯 구경한 마카오 타워버스 안에서 스치듯 구경한 마카오 타워


버스는 다리를 건너 타이파 지역으로 넘어갔다.

마카오는 크게 세나도 광장, 성도미니코 성당, 세인트폴 성당, 육포거리, 몬테요새 등이 있는 마카오 반도와 5성급 호텔들이 밀집해 있는 타이파 지역으로 나뉜다. 타이파 지역의 호텔들은 유럽의 랜드마크를 본떠 만든 화려한 외관과 쇼핑몰, 엔터테인먼트 시설들로 꾸며져 있어 투숙을 하지 않아도 관광을 할 만한 곳이다.

원래는 윈팰리스 호텔의 분수쇼와 야경까지 알차게 구경하고 밤늦게 돌아올 예정이었으나 전부 포기하고 베네시안 리조트만 보기로 했다.

베네시안 리조트는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모티브로 만든 아시아 최대 규모의 리조트형 복합시설로 인공운하와 곤돌라까지 재현해 한 군데만 본다면 가장 나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한 장면을 위해 베네시안 리조트에 갔다이 한 장면을 위해 베네시안 리조트에 갔다

물론 인공운하를 보며 감탄하고 사진을 찍기 무섭게 다시 터미널로 가는 셔틀버스를 찾아야 했다.


그런데 베네시안 리조트에서 셔틀버스 정류장을 찾아가는 길도 무척 복잡했다.

안내 표시를 따라가니 카지노가 나왔고, 카지노 직원은 처음에는 길을 알려줄 것처럼 굴더니 우리 인원을 보자 곤란해하며 이렇게 많이는 통과할 수 없다고 했다. 다른 직원에게 다시 길을 물어보았지만 이번에는 태풍 때문에 페리가 운항하지 않는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어설픈 영어로 소통을 시도하느니 두 발로 정류장을 찾는 게 빠를 것 같았다.


째깍째깍,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도시에서 방탈출 실사판 게임을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태풍이 몰아치기 전에 도시를 탈출하세요. 낙오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일행을 빠짐없이 챙겨 시간 내로 페리에 탑승해야 합니다.'


줄어드는 시간 바가 빨갛게 반짝이는 것 같았다.

이쪽저쪽 흩어져 길을 탐색한 끝에 겨우 셔틀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태풍 소식 때문인지 터미널로 가는 버스 정류장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버스도 금방 오지 않았다.

비바람은 없었다. 이런데 페리가 뜨지 않는다니... 괜히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드디어 버스가 도착하고 외항 터미널을 향해 가는 내내 지도의 예상도착 시간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우리가 외항 터미널에 도착한 건 3시 56분. 아이들 인솔은 다른 교사들에게 맡기고 우선 새 티켓팅을 위해 달렸다.

아슬아슬하게 티켓팅을 하고, 터미널에서 한숨 돌리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셧다운이라니..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셧다운이라니..

페리는 무사히 출항했고 그제야 허기가 밀려왔다. 점심을 거르고 계속 걸어 다녔으니 지칠 수밖에.

그래도 기특하게 아이들은 꽤 힘든 상황에서도 누구 하나 성을 내거나 투덜거리지 않았다. 다음에 다시 마카오에 오고 싶다든지, 마카오 음식을 먹지 못했다며 아쉬워하는 게 전부였다.

마카오에서 쓰기 위해 트래블월렛에서 마카오 돈을 환전하는 연습도 했지만 거의 쓰지도 못했다. 다시 쉽게 원화로 환전할 수 있는 게 다행이었다.


하지만 페리를 타도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마카오에 입국할 때는 홍콩 입국신고서로 충분했지만 다시 홍콩으로 입국할 때는 입국신고서를 다시 써야 했다. 다른 개인정보는 홍콩 입국신고서와 똑같았지만 출발지와 편명을 다르게 써야 했다.

아이들이 헷갈리지 않고 제대로 쓸 수 있을지 우려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비행기에서 썼던 입국신고서를 그래도 베껴 쓴 아이들이 속속 등장했다.

지친 와중에 멀미 나는 배 안에서 입국신고서를 일일이 확인하고 수정하는 일은.... 할 말이 많지만 더는 하지 않겠다.


셩완 터미널로 돌아와 홍콩 입국심사까지 통과했을 때는 거의 저녁식사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래도 터미널에 문을 연 식당들이 몇 개 있어서 적당히 골라 식사를 했다.


"자, 이제 점심 먹었으니까 이제 숙소 가서 저녁 먹자."


누군가의 농담에 모두가 유쾌하게 웃었다. 그 와중에 먹지 못한 마카오 음식을 계속 되뇌던 L만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건 너무 빠르니까 조금 더 쉬었다가 먹어요."

"......네가 최고다."


디즈니랜드 놀이기구도 몽땅 섭렵하고, 홍콩의 유명 음식과 간식도 빼놓지 않고 사 먹으며, 여행을 이백프로 즐기고 있는 L다웠다.


그렇게 우리의 마카오 탈출기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취소한 페리 티켓도 나중에 전액 환불받았다.

하지만 더 어려운 미션이 남아 있었다.


바로 저녁부터 알림이 오기 시작하는 다음날 귀국편의 지연 문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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