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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탈출: 홍콩 편

우리 집에 돌아갈 수 있는 걸까

by 극한직업 Mar 27. 2025

마카오에서 무사히 숙소로 돌아오며 한숨을 돌렸지만 우리에겐 더 큰 위기가 남아있었다.

바로 다음날 오전 귀국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갈 때도 아시아나와 제주항공 두 편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각각 13:05와 13:35 출발예정이었다.

하지만 홍콩 전역에는 그날 오후 12:40까지 태풍 경보 8호가 발령되어 있었다. 태풍 경보 8호가 발령되면 대부분의 공공기관, 상점, 식당 등이 운영을 중단하며 대중교통도 운행을 제한한다. 지하철(MTR)은 지하구간만 운행하며 배차간격이 길어진다.


아시아나는 전날 오후에 일찌감치 항공편 지연 안내를 공지했다. 무려 5시간이 넘는 연착이었다.

제주항공은 당일 오전 뒤늦게 지연알림이 왔다. 약 2시간 30분의 지연이었다. 그래도 둘 다 결항되지 않고 운항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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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으로 인해 귀국 비행기가 지연되었다


비행기는 지연되었지만 우리는 원래 계획대로 공항에 가기로 했다. 공항에 가는 길도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홍콩 파크모텔에서 마지막 조식을 먹고 짐을 정리했다.

숙소 근처에 제니쿠키 등 몇 군데 문을 연 가게가 있어서 체크아웃까지 남은 시간 동안 알차게 마지막 쇼핑도 했다. 아직 사지 못한 기념품은 공항 면세점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미리 찾아보고 선택해 온 기념품 쇼핑리스트미리 찾아보고 선택해 온 기념품 쇼핑리스트


오전 11시, 구글 지도를 검색해 보니 우리가 타려는 A21 공항 리무진이 운행되고 있다고 떴다.

숙소의 사장님도 홍콩 정부의 공지를 확인해 보시고, 문제없이 다니고 있으며 정 안 될 경우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다고 알려주셨다. 그리고 12시 40분부터는 태풍 경보가 3호로 떨어지니 그 이후로는 더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오전 11시 30분, 모든 짐을 챙겨서 숙소를 나섰다.

우리가 숙소를 벗어나는 타이밍에 맞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류장으로 가는 짧은 사이에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분명 아침에 쇼핑하러 돌아다닐 때만 해도 잔잔한 날씨였는데... 순식간에 태풍이 몰려오는 것처럼 날씨가 급변했다.

설상가상 공항버스는 감감무소식. 구글지도에만 떴다가 사라지고 다음 버스가 나타나길 반복했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버스 정류장


몰아치는 비바람이 너무 심해서 우선 아이들을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피신시키고, 교사들은 짐을 지키며 버스를 기다렸다. 그러나 기다려도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A21 버스뿐 아니라 다른 버스도 운행하지 않는 듯했다.

비바람을 맞아가며 다른 이동경로를 검색했다. 근처에 더 여러 버스가 오가는 정류장이 있었다. 그곳에도 버스가 운행 중이라고 떴다. 하지만 가보면 버스가 오지 않는 것은 똑같았다. 옷이 쫄딱 젖어가고 있었다.


지하철은 운행 중이라고 나왔으나 온전히 믿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캐리어까지 끌고 29명이 단체로 이동했다가 운행을 하지 않으면 더 골치가 아팠다.

우선은 12시 40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버스를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태풍 경보가 내려간 후에도 버스가 오지 않으면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비행기가 지연된 게 천만다행이었다. 제시간에 떴으면 우리가 공항에 도착하지 못해서 못 탈 뻔 한 상황이었다.


12시 40분. A21 버스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하나둘 다른 버스들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희망의 조짐이었다.

점심도 못 먹고, 어디 앉지도 못하고, 비바람에 몸이며 짐이며 다 젖은 상태로 간절하게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멀리서 버스가 다가올 때마다 번호를 확인하며 A21이기를 기대했다 실망하길 여러 번.

12시 55분. 드디어 A21 버스가 코너를 돌아 모습을 드러냈다.


"와!! 버스 왔어요!!"


정류장에 박수와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그 순간의 환희와 기쁨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오후 2시가 다 되어 겨우 홍콩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하고 짐을 부치는 순간에도 위기의 연속이었다.


"여권이 젖어있는데... 찢어지면 비행기 탑승이 어려우니 주의하세요."


맙소사. 생각지도 못한 사태였다. 스스로 하는 걸 강조해 왔지만 이때만은 젖은 여권을 걷어서 대신 보관하기를 자처했다. 여기서 여권까지 찢어지는 상황은 절대 겪고 싶지 않았다.


출국심사를 통과하고 3시가 다 되어서 겨우 점심식사를 했다. 전날에 이어 이날도 매우 늦은 점심이었지만 심각한 상황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아이들은 불평은커녕 괜찮다며 씩씩하게 웃었다.

안전하게 귀가하길 바라며 대기하던 홍콩 국제공항안전하게 귀가하길 바라며 대기하던 홍콩 국제공항

다행히 비행기는 더 지연되지 않고 예정대로 출발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아이들 귀가를 확인하고, 집에 도착했을 때는 자정이 넘어있었다. 우리보다 늦게 출발한 아시아나 항공 팀은 인천공항에 11시가 넘어 도착해서 부모님들이 급하게 데리러 오시기도 했다.  

그래도 어쨌든, 모두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시작부터 파란만장했던 홍콩 여행은 그렇게 태풍과 함께 화려한 막을 내렸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돌발퀘스트 때문에 하루하루가 험난했으나 무탈하게 끝내고 나니 앞으로 무슨 일이 닥쳐도 해나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여행이 주는 성취감은 발달장애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홍콩 졸업여행은 준비과정에서도 어려움이 많았다. 후원을 해 준 트래블월렛이나 응원해 주시는 여러분들을 통해 힘을 얻기도 했지만 반대로 ‘돈 안 내고 해외여행 가는 직원복지’라는 식의 시선으로 업무 추진상 필요한 인력 구성이나 예산 집행 등에 갈등이 있어 힘든 시간이었다.

그래도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보며 홍콩 여행은 끝까지 마무리했으나 더 이상 이전처럼 이 일을 지속해 나갈 수 없다는 판단에 지난 2월을 마지막으로 13년 간 근속한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여행의 교육적 효과와 의미를 높게 평가해 주시는 분들과 함께 뜻을 모아 새로운 발달장애인 자유여행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오랫동안 몸 담은 곳을 벗어나 새롭게 도전하는 것이 불안하고 염려되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헤쳐 온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앞으로도 충분히 무언가를 해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오히려 학교라는 틀에서 벗어나 더 넓은 대상과 더 다양한 방식으로 보다 더 의미 있는 일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다. 비장애 직장인들이 그러하듯 취업한 발달장애인들과 월급을 모으고 휴가를 맞추어 떠나는 여행이라든지, 예술, 역사, 스포츠, 액티비티 등 주제를 갖고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들끼리 떠나는 테마여행이라든지, 그동안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또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 한다.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는 아직 모르겠다. 예상치 못한 난관에 맞닥뜨릴 수도 있고,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멋진 풍경을 마주할 수도 있다. 여행도 인생도 떠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건, 어떤 길이 펼쳐지든 우리는 그 길 위에서 충분히 배우고 즐기고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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