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먹여 살려야 할 고양이가 있다
새 직장에는 이미 반년 전부터 일을 하고 있는 직원이 둘이나 있었다.
그들이 쿠팡과 웨딩홀 알바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미처 몰랐다.
“당분간은 월급을 주기 어렵지만… 처음에 못 준 것 더 넘치게 채워드릴 것을 반드시 약속합니다.”
그 말을 한 게 K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사기꾼이라고 생각하고 손절했을 것이다.
새 사무실‘도’ 생겼다고 했지 새 사무실‘만’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새 직장’이라고 말하기에는, ‘직장’이라는 단어가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직업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한 어폐가 있다.
아무튼 새 사무실에는 꿈과 열정이 가득한 중년 둘과 청년 하나가 있었고, 나는 청년의 끝자락에 서 있는 나이였다. 단칼에 거절하기에는 함께 한 13년이 조금 길었다. 그래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백세시대라지만 꿈을 좇아 빈손으로 시작하기엔 평균 연령이 좀 높지 않나 하는 시답잖은 생각도 들고, 월급 없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계산도 해보았다.
사실 나도 그리 여유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퇴사 후 세계여행을 하며 놀고먹겠다는 낭만적 꿈을 그리던 때와 달리 퇴사 직전의 나에겐 먹여 살려야 할 고양이가 있었다.
지난 가을 갑작스럽게 내 삶에 끼어든 고양이는 그렇지 않아도 전환점을 맞이한 인생에 격변을 불러왔다.
나는 한평생 털 달린 동물과 한 지붕 아래 살 거란 상상을 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태풍 전야 어느 날 비를 뚫고 학교로 들어온 작은 생명은 고양이답지 않은 친화력으로 새 시작을 앞두고 어수선하던 나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어쩌다 보니 인생 첫 독립과 퇴사, 반려묘 입양을 동시에 하게 된 나였고, 그 상황에서 세계여행은 무슨, 생계유지를 위한 돈벌이가 시급했다.
거절해야 할 이유가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그러지 못한 것은, 새로운 도전을 상상하며 원대하게 그린 미래가 아쉬웠기 때문이다.
여행을 업으로 삼는 건 어린 날의 꿈이었다. 영어 공부가 싫어 포기할 정도로 얄팍한 마음이었고, 특수교사라는 직업도 꽤 적성에 맞았지만 여행에 대한 로망은 언제나 나의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다.
직장생활을 막 시작했을 무렵에는 언젠가 유럽 자유여행을 떠나겠다는 목표로 알뜰살뜰 저축을 했다. 여행을 취미라고 할 수 있게 된 것은 서른이 훌쩍 넘어서였다.
그런데 여행과 특수교육을 결합한 직업이라니… 나중에 자서전을 써도 꽤나 멋진 인생이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나에겐 ‘연봉 2억’이라는 원대한 꿈도 있다. 연봉 2억을 받으면 자서전을 안 써도 멋진 인생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있다.
그렇지만 2억 정도 받을 게 아니라면 푼돈(?)을 벌겠다고 재미없는 일을 하는 것보다는,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냥 그런 직장인으로 살아가기엔 이번 생은 이미 늦었다.
우리는 이미 2년 동안 20여 명의 발달장애인과 해외 자유여행을 해냈다. 스스로 선택하고 준비하여 떠나는 여행에서 참가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반짝거렸고, 눈부시게 성장했다.
그리고 그런 참가자들을 보는 나 또한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했는지.
단순히 여행을 즐기고 신나게 노는 것에서 오는 행복과는 다르다. 편하게 즐기려면 오히려 패키지여행이 낫다.
자유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실행하는 과정은 사실 머리 아픈 학습의 연속이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동기가 부여된 참가자들은 누구보다 열의 가득한 학습자가 된다.
여행을 떠나서도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때로는 ‘사서 고생’이라는 생각이 나올 정도로 고되다. 그러나 그 고생을 마치고 나면 찾아오는 성취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귀하다.
여행이 얼마나 사람을 성장시키고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지 직접 겪었기 때문에, <길 위의 스튜디오>는 나에게도 꿈이요, 도전이 되었다.
나는 우리가 하는 일이 의미 있는 ‘진짜 교육’이라 믿는다.
여행은, 삶에 필요한 거의 모든 기술을 배우고 연습할 수 있는 매개이다. 특히 실제적인 학습과 수많은 경험이 필요한 발달장애인에게는 그 어떤 교육보다 효과적이다.
그래서 나는 <길 위의 스튜디오>를 시작하기로 했다. 스스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며 즐겁게 감당할 수 있는 일을 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이다.
월급이 없다는 아주 사소한 문제가 있지만, 어쨌든, 아무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