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의 이야기] 사표를 내고 대표가 되었다(2)

<길 위의 스튜디오>를 시작하다

by 길위의스튜디오

13년을 가장 가까운 파트너로 지낸 Y와 나는 이미 수많은 도전을 함께 겪어온 사이이다.


발달장애인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즐거움 뒤에 따라오는 책임을 몸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프로젝트 수업을 만들었을 당시에도 우리는 함께였다. 캠핑을 하고, 자전거 여행을 떠나고, 유튜브 영상을 제작했다.

이듬해에는 도전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대학생이 되어 해보고 싶은 활동 리스트를 만들고 하나씩 도전하고 성취하며 교우관계와 자신감을 키워가는 과정이었다.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의 피드백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학생들은 즐겁게 배우면서 성장했고, 경험과 추억을 공유하며 진짜 친구가 되어갔다.


그에 힘입어 몇 년 동안 프로젝트 수업을 강화하고, 2년 전부터는 졸업여행을 해외 자유여행으로 직접 기획하여 다녀오기도 했다. 그 과정은 학생들만큼이나 교사였던 나에게도 큰 보람이 되었다.

도전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 반드시 우리는 변화하고 흘러야 함을 깨닫고 알게 했다.

오랜 직장을 퇴사하고 새로운 도전을 할 용기를 얻은 것도 그 깨달음 덕분이었다.

창업지원으로 얻은 작은 사무실에서, 이듬해 2월 체험수업료로 번 4만 원이 예림사회적협동조합의 첫 수익이었다. 4명의 직원이 회식도 못 할 금액이지만, 우리의 작고 소중한 시작이었다.

그리고 Y와 내가 학기를 마치고 퇴사를 한 3월, 본격적으로 조합에 합류하며 <길 위의 스튜디오>가 시작되었다.


<길 위의 스튜디오>는 여행을 매개로 발달장애인에게 언어, 디지털활용, 생활경제, 사회성 교육 등을 융합한 평생교육을 제공하는 체험형 아카데미이다.

오랫동안 발달장애인을 가르치며 나는 무엇이 그들에게 꼭 필요하고 행복한 일일까를 늘 고민해 왔다. 학교를 벗어나 우리가 새롭게 제공할 수 있는 교육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올린 대상은 취업한 발달장애인 청년들이다. 근로를 하며 급여를 받고 어엿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의 옛 제자들.


하지만 그들의 삶은 건조하다. 직장과 집이 전부이고, 운동, 악기 등 집 주변 기관에 오픈된 문화프로그램을 수강하는 정도였다. 대부분 비슷비슷한 프로그램이고, 그마저도 참여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학창 시절에는 그나마 유지되던 관계도 점차 축소되어 또래와의 교류가 아예 없거나 피상적인 만남에 그친다. 밥 먹고, 카페에 가고, 영화를 보거나 노래방에 가는 정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자 핸드폰을 보다 시간이 지나 돌아오는 경우도 허다했다. 공통의 관심사도 없고, 대화거리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어딘가 소속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교우관계가 유지되던 학창 시절과 달리 직장생활을 시작한 성인의 교우관계는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넘어간다. 부모님들의 주도로 교류가 지속되기도 하지만 한계가 있다.


성인기의 삶은 길다. 그런데 정말 그대로 괜찮은 걸까?

누군가에겐 꿈인 취업을 했으니, 만족해야 하는 걸까? 직장에서 시키는 일만 할 수 있으면 그걸로 끝인 걸까?

발달장애 청년들의 삶은 이 정도로 충분한 걸까? 그걸로 행복할까?

그 의문에 답이 되고자 ‘여행’을 선택했다.


내가 가르친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백이면 백, ‘친구들과 여행을 간 추억‘이 학창 시절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40대 후반의 나에게도 여행은 삶의 즐거움이다. 일상을 벗어나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오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힘이 생긴다.

문제에 빠져 대안을 찾지 못할 때도 일상에서 약간 벗어나 바람을 쐬고 오면 문제의 깊이가 달라지는 걸 종종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소소한 기쁨을 발달장애 청년들은 얼마나 느끼고 있을까?


대부분 단체 여행에 참여하거나 가족들과의 여행이 전부다. 자신의 욕구보다는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것에 따라야 한다.

비장애청년들처럼 친구들끼리 여행을 떠나는 건 어렵다. 일단 같이 갈 수 있는 친구가 많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늘 하는 활동을 지역만 바꿔 반복하는 형태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때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도 보호자들의 걱정으로 제한되기도 한다. 행여 문제가 생길까, 사고가 날까 보호라는 이름 하에 새로운 도전을 하고 능력을 키울 기회를 박탈당한다.


그러니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은 그들에겐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라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은 뿌듯함이고, ‘내가 해냈다’는 성취감이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그리고 그 순간을 함께 공유한 친구들과 ‘진짜 우정’이 쌓인다.


그렇게 행복하고 만족스럽기 때문에 ‘여행’을 목표로 하는 공부는, 공부하면 지긋지긋한 K-청년들, 그것도 누적된 실패로 무기력이 학습된 발달장애 청년들마저 춤추게 한다.

비장애인도 평생교육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발달장애인에게 평생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과정이다. 단지 학습을 위한 책상머리 공부가 아니라 자립능력을 향상시키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진짜 ‘평생교육’이 필요하다.


그래서 <길 위의 스튜디오> 홍보물을 만들고, SNS 게시로 소심한 홍보를 시작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여러 졸업생들과 부모님들에게 연락이 왔다.

사실 사업을 시작하고 대표가 되었지만 여전히 사업마인드가 하나도 없는 나는 자신 있게 홍보에 뛰어들지 못했다. 홍보를 위해 갑자기 연락을 하는 것도 너무 뻔뻔한 것 같고, 내 자랑을 해야 하는 것도 낯부끄럽고, 비용 안내로 마무리해야 하는 것도 괜히 민망하고, 아무튼 모든 게 익숙하지 않았다.

좋은 프로그램인데 왜 자신이 없냐며 마인드를 바꾸라는 주변의 조언도 듣고, 월급도 못 받는 일에 믿음으로 함께 해준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마음을 다잡았지만 타고난 성격상 쉽지 않았다.


이런 나를 도운 건 소식을 듣고 먼저 연락을 해 준 제자들이었다. 여행의 즐거움을 이미 맛본 친구들과 그런 후배들을 부럽게 바라보던 선배들은 다짜고짜 참가신청을 하겠다며 폭풍 같은 연락을 해왔다.

그리고 자녀에게 이야기를 들은 부모님들이 또 좋은 건 같이 해야 한다며 주변에 공유해 주신 덕분에 예상보다 빠르게 참가자들이 모집되었다. 자신감을 얻은 나도 더 적극적으로 홍보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여행을 매개로 한 평생교육을 조심스럽게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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