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간 근무한 첫 직장을 그만두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근무를 했던 대안학교는, 요즘 시대의 기준으로 좋은 직장은 아니었다. 워라밸도, 연봉도, 복지제도도 형편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3년을 근무한 건 내가 하는 일이 보람 있고, 의미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가치 있는 일에 열정을 쏟을 수 있다는 기쁨은 팍팍한 현실과 불안한 미래를 뒷전으로 밀려나게 했다. 젊음의 패기를 빌어 ‘한 해만 더’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퇴사를 선언했을 때, 나는 어느새 마흔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사실 처음 퇴사를 결심했을 때는, 세계 여행을 떠나겠다는 낭만 가득한 계획이 있었다. 월급이 쥐꼬리라 퇴직금도 쥐꼬리였지만 13년의 세월이 있으니 1년 정도는 놀고먹어도 문제는 없으리라는 계산이었다. 일찌감치 친구들에게도 계획을 흘리며 함께 가자는 밑작업도 시도하고 있었다.
십여 년간 저녁이 없는 삶을 살던 나에게 방학 중 떠나는 여행은 거의 유일한 취미생활이었다. 직원복지는커녕 근로자의 기본 권리도 60년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구시대적인 조직에서 방학은 무지개 반사 같은 치트키였다. 월차도 없고 연차도 없고, 4박 5일씩 초과근무를 해도 수당 한 푼 주지 않는 학교는 ‘대신 방학이 있지 않느냐’는 답변만 챗봇처럼 반복했다.
돌이켜보면 더 빨리 퇴사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가끔 들긴 하지만, 어쨌든 그 시간들을 견디는 데에는 여행이 크나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전체출근과 당직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일정은 길지 않았고, 즐길 수 있는 계절이 고정되어 있다는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에 퇴사를 하고 자유롭게 떠나는 세계여행은 인생에서 꼭 한 번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였다. 캐나다의 단풍과 아이슬란드의 오로라가 나의 로망이었다.
곧 실직자가 된다는 불안보다는 인생의 첫 쉼을 누린다는 기대가 더 클 무렵, 옆자리의 ‘K’ (구 과장님, 현 이사장님)가 제안을 했다. 같이 새로운 일을 해보지 않겠냐고.
당시 나는 학교에서 발달장애 학생들과 자유여행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 여행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운영해 보자는 제안이었다.
귀가 솔깃했다.
솔직히 생각해보지 않은 바는 아니었다. 2년 간 졸업여행을 해외 자유여행으로 운영하며 언젠가 재학생뿐만 아니라 졸업생, 취업을 해서 일을 하고 있는 발달장애인들과 여가를 활용한 여행을 계획하면 의미 있지 않을까 하는 비전을 나눈 적도 있었다.
나에게도 여행이 일상을 살아내고 직장생활을 견디는데 큰 힘이 되어준 것처럼 발달장애인들에게도 여행이 취업을 유지해야 할 이유가 되고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될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당시 학교에서는 학생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 직원복지라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펼치며 졸업여행조차 내가 연달아 담당하는 것에 대해 불편해했기 때문에 새로운 여행 프로그램을 추진할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 때에 학교 바깥에서 새롭게 시작을 해보자는 K의 제안에는 마음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K는 나와 개인적인 성향은 많이 다르지만 업무에 대한 방향이나 가치관은 매우 잘 맞는 파트너였다. 13년 동안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K의 역할이 아주 컸다. K와 함께라면 분명 멋진 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리 길게 고민하지 않고 제안을 수락했다.
새 직장이 가진 거라곤 딸랑 사무실 한 칸뿐이라는 걸 모른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