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 이 글은 발달장애 당사자와 교사들이 함께 쓰는 이야기입니다. 당사자가 직접 쓴 여행 후기와 실제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하며, 가독성 및 사생활 보호를 위하여 일부 내용은 편집, 각색하였습니다.
나의 대학생활은 코로나와 함께였다. 내가 입학을 앞두고 잔뜩 설레 있을 때 코로나19가 터졌다.
애타게 기다린 등교는 계속 미뤄지고 온라인으로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야 했다.
코가 뚫리는 것 같은 코로나 검사를 하고, 마스크를 껴서 서로 눈 밖에 안 보였지만 대면수업을 했을 때는 무척 행복했다.
하지만 등교를 했어도 코로나는 끝나지 않았다. 그토록 기대했던 MT도 못 가고 캠프도 못 가고… 여행 프로젝트 수업으로 1년 간 준비한 제주도 여행도 끝내 취소되었다.
무얼 하고 놀 것인지 친구들과 다 조사하여 계획하고, 여행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농사를 짓고 판매도 하고, 저축도 열심히 해서 40만 원이나 모아놨는데…….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기만을 간절히 기다렸지만 결국 나아지지 않았고 제주도 여행은 취소되었다. 정말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다 싶을 만큼 아쉬웠다.
그래도 천만 다행히 3학년 가을,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었다.
나는 벌써 졸업학번이었고, 졸업여행으로 1학년 때 못 갔던 제주도 여행을 가기로 했다. 드디어……! 정말 기다리고 기다렸던 여행을 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이니 전교생이 같이 갔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고, 그렇게 진행되었다. 우리가 준비한 제주도 여행 계획이 있었지만 백여 명의 단체여행이 되다 보니 그대로는 할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도 들었으나 그래도 선후배가 다 함께 하는 여행이라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그렇게 행복하게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그런데 그다음 해, 바로 한 학년 아래 후배들이 오사카로 졸업여행을 간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자유여행으로 말이다……!
그때 나는 취업을 미루고 인턴쉽 과정으로 학교에 남아 있었다. 후배들은 매주 도서관에 모여 여행을 준비했고, 나는 쉬는 시간마다 문밖에서 지켜봤다. 내 수업보다 후배들은 무슨 공부를 하는지가 더 궁금하고 신경 쓰였다.
어디를 가고 무얼 먹고 무슨 선물을 사고…… 그런 회의를 하는 후배들을 보면 너무너무 부러웠다. 부러워서 화가 날 정도였다. 속도 모르고 자랑하는 후배들도 얄미웠고, 지난 졸업여행은 다 같이 갔으면서 이번 졸업여행은 3학년만 데려간다는 선생님도 원망스러웠다.
“엄마가 학교에 얘기해 주면 안 돼? 제주도는 다 같이 갔잖아. 나도 오사카 자유여행 가고 싶어.”
부모님을 통해 학교에 건의도 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처음 도전하는 해외 자유여행이라 많은 인원을 데려갈 수 없다고 했다. 나 말고도 따라가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아주 많았다.
이해는 됐지만 속상했다. 내가 가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나는 일본에 살았던 적도 있고, 수업 내용도 무얼 배웠는지 후배들보다 내가 더 잘 대답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후배들이 졸업여행을 다녀오고 TV에도 나오고, 자기들은 자유여행을 다녀왔다며 큰소리치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해야 했다. 내가 1년만 학교에 늦게 들어갔어도…… 나도 저렇게 여행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다음 해에 나는 드디어 취업을 했다. 멋진 직장인이 된 것이다.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고 나도 여행을 가야지 꿈을 꾸었다.
학교 후배들은 그 해에도 졸업여행을 갔다. 이번에는 홍콩 자유여행이라고 했다.
홍콩은 나도 가본 적 없는데…… 꼭 가고 싶었는데……. 게다가 이번에는 인원도 늘려서, 학교에 남아 있는 인턴 학생들도 같이 갔다.
나는 이미 취업을 해서 갈 수 없었다. 매우 억울했다. 당장 일을 그만두고 학교에 다시 가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직장 일이 엄청 힘들어도 꾹 참고 성실하게 일을 했는데…… 나는 왜 하필 코로나 때 대학을 가고, 해외 자유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졸업을 한 걸까. 나에게는 기회가 없는 걸까……?
나는 여행 가는 걸 무척 좋아한다. 특히 친구들하고 같이 가는 걸 정말 좋아한다. 가고 싶은 여행지도 아주 많다. 열심히 일을 하고 저축도 꽤 많이 하고 있다. 언젠가 여행 갈 날을 꿈꾸며.
그러던 어느 날! 25년 3월 따스한 봄날이 찾아왔을 때. 선생님들이 새로운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얼마나 기다려왔던 소식인지 모른다. 나는 곧바로 친구들과 함께 신청을 했다.
처음 창동 사무실에 프로그램 설명을 들으러 왔을 때는 왈칵 눈물이 나올 뻔했다. 몇 년 동안 서러웠던 기억들이 불쑥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잘 참고 기다렸더니 마침내 나에게도 여행의 기회가 생긴 것이다!
우리 집인 수원에서 도봉구 창동까지 주말마다 먼 거리를 왔다 갔다 해야 하지만 그 정도쯤이야. 여행의 즐거움을 생각하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어디를 가면 좋을까 하는 고민만 매일매일 했다. 국내도 가고 싶은 곳이 많고, 해외도 꼭 가고 싶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싶고, 나의 단짝친구들과 사진도 많이 남기고 싶다.
선생님들은 여행을 가려면 공부해야 할 게 많다고 했지만 나는 자신이 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내 의견도 많이 발표하고 친구들의 의견도 물어보며, 누구보다 멋진 여행을 만들고 싶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무척 설레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