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의 이야기] MZ들의 홋카이도 여행2

by 길위의스튜디오

홋카이도의 숙소는 시내와 조금 떨어진 곳의 아파트형 숙소였다.

숙소를 선택하는 기준도 그룹마다 차이가 조금씩 있는데, 이 그룹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넓이다. 키도 크고 훤칠한 남자들이 많은 그룹이어서 그런지 무조건 넓고 쾌적한 숙소를 바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렇게 선택한 숙소는 거실이 넓고, 각각 화장실과 샤워실이 딸려있는 큼직한 방이 4개나 있어서 참가자들의 마음에 쏙 들었다. 일본에서 보기 드문 넓이라는 호스트의 소개가 있었는데, 과장이 아니었다.

숙소에서도 지도할 게 많은 나에게도 큰 테이블과 쾌적한 거실은 몹시 만족스러웠다.


단점은 역에서 10분 이상 걸어야 한다는 것. 숙소 설명에는 가장 가까운 역에서 도보 7분 거리라고 나와 있지만 실제로 가보니 지하도가 길어 지하철 역을 벗어나는 데만 5분이 넘게 걸렸다.

어쩐지 구글지도는 근처 2개의 역과 공항버스 정류장 모두 도보 12분이라고 나오더라니. 크지도 않은 역의 지하도가 그렇게 길 줄이야. 심지어 지하상가나 볼거리도 없이 그저 하염없이 걷기만 해야 하는 길이라 체감거리는 더 길었다.

그러나 먹고걷고에 최적화된 이 그룹에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위치였다. 원래도 잘 걷는데, 해외의 거리를 걷고 있다는 흥분은 참가자들의 걸음을 더 가볍게 만들었다. 너무 방방 뛰어서 다칠까 걱정에 자제시켜야 할 정도였다.


커다란 캐리어를 깃털처럼 가볍게 끌고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짧은 휴식을 취한 뒤 우리의 계획대로 삿포로 시내를 향했다.

원래는 오도리공원과 스스키노 시내를 모두 둘러볼 계획이었는데 비행기가 지연되며 예정보다 시간이 늦어서 시내는 간단히 둘러보고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고 삿포로 TV타워 앞에 도착했을 땐 어느새 도시에 어둠이 내리고 화려한 조명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여행 준비를 하며 찾아보았던 TV타워의 야경이 눈앞에 펼쳐지자 참가자들은 한껏 들떴다.

낯선 나라에서 아는 걸 만난다는 것, 그것도 공부해서 알게 된 것을 실제로 마주하는 기쁨은 겪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낯선 거리에서 내 힘으로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구글지도를 열고 씩씩하게 앞장서는 참가자들을 따라 시내를 가로질러 스스키노의 상징인 니카상도 만나고, 저녁식사 장소를 찾아갔다.


참가자들이 택한 저녁 메뉴는 홋카이도의 대표 요리인 징기스칸.

이 그룹의 진정한 맛잘알 면목은 이번 여행을 통해서 드러나는데, 이들은 홋카이도나 일본에서 유명한 음식이라면 가리지 않고 다 잘 먹었고, 이미 먹은 메뉴만 아니라면 무조건 콜이었다. 의사결정이 어찌나 시원시원하고 의견통일이 잘 되는지… 솔직히 세 그룹 중 함께 여행할 때 가장 마음이 편한 건 단연 이 그룹이다.


대신 몸은 가장 힘들다. 단짝투어의 세 그룹 모두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게 있으니 그건 바로 야경이다.

늦은 시각까지 자유롭게 여행을 하며 돌아다닐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아서 그런지,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야경을 좋아했고, 여행을 떠나면 하루도 빠짐없이 야경을 즐기고 밤늦게 복귀하기를 원한다. 해가 긴 나라로는 여행을 가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래도 다른 두 그룹은 체력적으로 따라가기에 아직은 버겁지 않은데, 이 그룹은 예외다.

든든한 식사는 추진력을 얻기 위함인 걸까. 밥심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목표로 한 식당이 꽤 거리가 있음에도 참가자들은 지치지도 않고 걸었다.

개인적으로는 여행에서 음식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 편이라 이렇게 음식에 진심인 여행은 처음이었다.

내가 여행에서 음식을 대충 해결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기나긴 웨이팅이다.

여행객들에게 알려진 맛집은 제한적이고,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우리는 10명이나 되는 꽤 많은 인원이고, 일본식 맛집들은 대개 가게가 협소하다.


처음 목적지로 찾아간 징기스칸 맛집은 이미 만석이었다. 가게도 작은 데다 메뉴 특성상 주류를 곁들인 손님이 많아 쉽사리 자리가 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두 번째 후보지였던 수프카레 맛집을 다시 찾았다.

그런데 그곳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참가자들은 심각해졌다.


나였다면 그냥 대충 아무 데나 들어가 해결했을 테지만 이 그룹은 아니었다. 징기스칸이 아니라면 수프카레, 그것도 아니라면 초밥, 카이센동 등등 어쨌든 무조건 홋카이도의 대표 음식을 먹어야 했다.

식당을 찾아 헤매면 지칠 법도 하건만 체력들은 또 막강해서 포기를 몰랐다.

일단 구글지도에서 거리순으로 식당을 찾아 가까운 곳을 한 번 더 살펴보고, 이번에도 여의치 않으면 그룹을 나눠서 가는 걸로 의견을 모았다.


준비를 많이 한 만큼 계획한 대로 수월하게 진행되었다면 좋았겠지만 변수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게 여행이다. 그리고 문제해결능력이 약한 발달장애인에게는 다양한 상황을 경험하고 해결방법을 고민하고 헤쳐나가는 것 역시 삶에 꼭 필요한 공부다.


다행히 이번에 찾은 식당은 딱 우리 일행이 앉을만한 좌석이 남아 있었다.

약간 어두운 조명의 아늑한 공간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양고기를 구워 먹으니 딱 친구들과 배낭여행 온 청년들 같았다.

우연히 찾은 식당이지만 양고기는 살살 녹았고, 만족스럽게 식사를 했다.


식사 후 결제는 각자 결제가 어려워 대표 결제 후 트래블월렛의 친구간송금 기능을 활용했다. 트래블월렛은 이름과 전화번호만 알면 간단하게 외화로 송금을 할 수 있어서 일행과 더치페이를 하기 좋다. 혹은 n빵 결제 기능을 활용하면 따로 송금하지 않고도 더치페이를 할 수 있어서 좋다.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아침식사를 샀다. 이들은 편의점 음식도 매일 새로운 메뉴에 도전을 했다. 매일 요거트와 계란샌드위치 정도로 해결한 나와는 전혀 다른 인종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10명이 3일 내내 숙소에서 아침을 먹었음에도 배출된 음식물 쓰레기가 극도로 적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그룹이 횡성에서 하룻밤에 배출한 음식물 쓰레기가 훨씬 많다.

처음엔 이들이 밥을 아직 안 먹었나 의심했다. 물론 그럴 리는 없었다.


아무튼 숙소에 돌아와 일용할 양식을 야무지게 쟁여둔 뒤, 개인정비와 함께 하루의 일과와 가계부를 정리했다.

그때그때 기록하지 않으면 금세 잊어버리기 쉽다. 특히 돈은 여행 내내 계획한 대로 적절하게 사용하려면 자주 확인하고 점검해야 한다.


그래도 첫날은 다행히 전부 카드결제가 가능해서 내역을 확인하기가 쉬웠다. 현금으로 여행하던 시대였다면 자유여행은 감히 꿈꾸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디지털 취약계층에게 디지털 기술은 새로운 장벽이 되기도 하지만 배우고 활용할 수 있다면 한계를 극복하게 하는 유용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피곤할 법한 하루지만 참가자들은 마지막까지 해야 할 일들에 최선을 다했다. 오늘 하루 정말 행복했다며, 내일도 기대된다고 말하는 참가자들 덕분에 피로가 싹 날아가는 밤이었다.

금요일 연재
이전 16화[Y의 이야기] MZ들의 홋카이도 여행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