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의 이야기] MZ들의 홋카이도 여행1

by 길위의스튜디오

대전 여행을 다녀온 첫 번째 그룹은 곧장 홋카이도 여행을 준비했다.

보호자들은 국내 여행을 한 번 정도 더 다녀온 후에 해외여행을 갔으면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당사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해외여행을 가기를 원했다.


해외여행의 경험 자체가 드문 참가자도 있고, 해외여행 경험이 있어도 친구와 떠날 기회, 그것도 내가 선택하고 계획한 대로 떠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기 때문에 참가자들의 기대는 하늘을 찔렀다.


그리하여 9월 초, 석 달을 꽉 채워 준비한 끝에 3박 4일의 홋카이도 여행을 떠났다.

이른 아침 공항에 모였을 때 한 참가자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자랑했다.


“전 통장에 90만 원 있어요.”

“그걸 다 쓰면 안 돼. 미리 계획했잖아.”

“저 이제 직장인이에요. 월급 받아서 돈 많아요.”


매일 8시간씩 풀근무를 하며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자주 토로하던 참가자는, 그간 고생한 보람을 오늘 제대로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누나 화장품도 사고 엄마 파스도 사야 한다며, 쇼핑목록을 하나하나 헤아리는 모습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출발 전 마지막 점검을 하고 체크인을 했다.

해외여행은 준비할 것도 많지만 여행 중에도 배워야 할 것이 많다.

우선 셀프체크인부터 셀프백드롭. 비대면 서비스가 주류가 된 사회는 디지털 취약계층에게 너무 많은 난관을 선사하지만 배우지 않는다면 격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익숙하지 않은 기계에 참가자들은 다소 긴장하기도 했지만 한 단계씩 차근차근, 스스로 해내고 나자 어깨가 으쓱 올라왔다.


모바일 탑승권도 누군가에겐 편리하다고 하지만 누군가에겐 더 불편하다. 미리 다운받아 휴대폰에 저장해 놓았지만 그 경로를 찾아 들어가는 과정이 쉽지 않다. 게다가 탑승권뿐 아니라 입국신고서도 QR코드로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걸 어떤 순간에 꺼내야 하는지도 헷갈린다.


이럴 때 중요한 건 눈치다. 재빨리 앞사람을 살펴 무얼 준비해야 하는지 확인하고 미리 대비해야 한다. 사전에 모든 상황을 가르칠 수 없기 때문에 여행 중에도 배움은 계속된다.


여러 번의 검사를 거치고 또 거쳐 무사히 출국심사를 끝내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런데 출발을 한다며 활주로까지 나갔던 비행기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 항공기에 결함이 있어서 출발이 지연된다고 안내방송이 나왔다. 탑승 전에 지연되는 경우는 종종 겪어보았지만 이륙 직전에 점검을 하는 경우는 처음이라 불안감이 엄습했다.


심각한 결함인 걸까. 이대로 결항되면 어쩌지. 그래도 이륙 전에 문제가 발견된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비싸도 국적기를 탈 걸 그랬나.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참가자들이 동요할까 차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다행히 점검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고, 1시간 가량의 기다림 끝에 비행기는 출발했다. 물론 착륙 직전까지 조마조마한 마음을 놓지는 못했다.


해외 자유여행은 항상 첫날이 가장 어렵다.

신치토세 공항에는 무사히 도착했지만 해야 할 미션이 아직 산더미였다.


입국신고와 세관신고는 미리 온라인으로 작성하고 저장해 온 QR코드로 가볍게 통과.

손으로 입국신고서를 쓰는 건 옛날 사람이다……는 농담이고, 사실 우리에겐 직접 작성하는 것보다 온라인이 더 편하다.

알파벳을 잘 모르는 경우도 있고, 작은 칸에 맞춰 쓰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손으로 써야 한다면 대신 작성해 주는 방법 밖에 없지만 온라인은 여권 스캔, 선택지 고르기 등 더 다양한 방식이 있어서 접근성이 높다.

게다가 사전에 작성할 수 있어 느린 학습자에게도 충분한 시간을 줄 수 있다.


신고서 제출도 외국인 심사관과 마주할 필요 없이 기계에 스캔하는 걸로 간단히 처리할 수 있다.

비대면 서비스는 더 어려울 때도 있지만 이럴 때는 아주 유용하다. 한국어로 바꾸면 커다란 언어의 장벽을 쉽게 넘을 수 있으니.

비록 일본인데 한국어를 눌러서 잘못한 거 아니냐고 염려하는 참가자도 있었지만……. 참신한 사고방식이 매력적인 이들이다.


수하물을 찾고, 태그의 이름까지 꼼꼼히 확인한 후에 입국심사를 마쳤다.

그다음으로 찾은 것은 ATM기. 우리는 사전에 트래블카드를 만들어 왔다.


은행에서 외화 한 무더기 바꿔서 들고 여행 가는 건 옛날 사람…… 이건 진심이다.

요즘에는 해외 자유여행을 하려면 트래블카드가 필수다. 필요한 만큼 환전을 하기도 좋고 사용내역을 파악하고 돈을 관리하기도 좋다. 결제를 하기도 쉽고 잔돈도 없고 더치페이를 하기도 편하다.

카드 발급과 사용에 대한 사전준비가 필요하지만 한 번 준비하면 이후의 여행을 훨씬 수월하게 해 준다.

요즘은 카드나 페이로 모든 결제가 해결되는 나라가 많지만 일본은 여전히 현금만 되는 곳이 심심치 않게 있기 때문에 출금을 해야 했다.


경험상 ATM 출금의 가장 큰 문제는 항상 비밀번호다. 그렇게 당부를 하고 메모를 해도 도무지 왜 틀리는지 알 수 없는 비밀번호여…….


다행인 점은 트래블월렛 카드는 앱에서 간단하게 비밀번호 변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하나 트래블로그, 신한SOL트래블, KB트래블러스, 토스 트래블카드 등 다양한 트래블카드가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환율우대 등 혜택에 따라 여러 가지를 돌아가며 사용하지만 참가자들과 함께 할 때는 트래블월렛을 주 카드로 활용한다.

카드 발급, 비밀번호 변경 같은 부분뿐 아니라 충전, 송금 등의 기능도 직관적이고 간단하기 때문이다.

앱의 구조가 단순해서 그런지 인터넷 느린 나라에서도 상대적으로 잘 열린다. 은행권 트래블카드들은 자주 사용내역을 확인하고 송금 같은 기능을 사용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비추천이다. 실제로 무한로딩을 기다리다 복장이 터져서 포기하고 한국 와서 열어 본 경험이 있다.

트래블카드를 사용해 보고 싶은데 너무 다양하고 복잡해서 어렵다고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트래블월렛을 추천한다.


단점은 일본에서는 수수료 무료인 이온ATM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가는 경로에 따라 미리 ATM기 위치를 파악해두면 도움이 된다. 우리는 신치토세 공항과 삿포로 역에서 출금을 했다.


출금은 비밀번호의 산만 넘으면 한결 수월하다. 금융 용어는 생소하지만 우리가 사용할 메뉴만 정확히 숙지하면 된다.

일반화가 어려운 발달장애인들에게 디지털 금융거래 같은 기술을 교실 안에서 가르치는 건 한계가 있다. 생활 속에서, 진짜 필요에 의해 활용해야 의미 있는 학습이 된다.

여행은 그래서 좋다. 짧은 기간이지만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기술들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어차피 현금은 액수가 크면 소지도 부담스럽고 남으면 처리가 곤란하므로 조금 번거롭고 시간이 걸려도 소액씩 자주 충전하고 출금하기로 했고, 실제로 여행 기간 동안 여러 번 반복해 사용하자 나중에는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스스로, 혹은 약간의 도움만으로 출금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돈을 찾고, 공항에서 라멘으로 첫 식사를 했다.

음식에 진심인 참가자들은 국물이 깊고 진하다며 감탄을 했다. 무얼 먹어도 맛있게 잘 먹는 이 그룹은 참 좋은 여행메이트다.


든든하게 배를 채웠으니 이제 남은 미션은 숙소까지 찾아가는 일.

숙소까지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참가자들이 택한 방법은 JR열차를 타고 신삿포로역에서 지하철로 환승하는 경로였다. JR열차도 타보고 싶고 홋카이도 지하철도 타보고 싶다는 이유였다.

개인적으로는 공항버스를 선호하지만 참가자들의 철도사랑을 이겨낼 수 없었다.


교통카드 구매는 JR역에서 가능하다. 대면창구는 보이지 않아 무인기계로 교통카드를 구매하고 충전을 했다.

교통카드도 소액씩 여러 번 충전을 했는데, 하다 보니 한국어 지원이 되지 않는 기기로도 혼자서 충전에 성공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스스로 해냈다고 어찌나 기뻐하던지…… 낯선 해외에서는 길을 걷고, 대중교통을 타고, 식사를 하고, 물건을 사는 모든 순간들이 성취감이 된다.

작은 성취감들은 모여 자신에 대한 믿음이 되고, 앞으로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된다. 단체 패키지여행에서는 얻을 수 없는 귀한 선물이다.


숙소를 찾아가는 길은 복잡하지는 않았는데, 캐리어를 끌고 가려니 썩 쉽지 않았다. 오르내려야 하는 계단이 많았고, 엘리베이터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예상보다 길어지는 동선과 지체되는 시간에 참가자들이 살짝 지쳐가는 찰나 슬쩍 제안을 했다.


“마지막 날 공항으로 갈 땐 공항버스를 타는 게 어떨까?”


한결같이 열차를 부르짖던 참가자들이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저도 좋아요! 열차는 한 번 타봤으니까요!”


오기 전엔 그렇게 설득해도 안 통하더니……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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