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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RONY Jul 09. 2023

자존심 강한 두 명창의 성대대결

뮤지컬 <데스노트> 관람 후기

뮤지컬 <데스노트>는 이름을 적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데스노트'를 우연히 주운 주인공 '야가미 라이토'와 그를 좇는 천재 명탐정 'L'의 추리극이다. 동명의 일본 만화 「데스노트」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2022년 상연한 뮤지컬 <데스노트> 삼연이 유례없는 대흥행을 맞음에 따라 2023년 <데스노트> 앙코르 공연이 샤롯데씨어터에서 3월 28일부터 6월 18일까지 상연했다. 본인은 2023년 5월 20일 밤 공연을 관람했다.


※ 본 후기는 극의 줄거리와 주요 장면에 대한 가감 없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립니다.

또한 본 후기는 작가 본인의 개인적 감상이며, 다른 관객들의 모든 주관적 감상을 존중합니다.

뮤지컬 <데스노트>, 샤롯데씨어터

믿을 수가 없어 꿈을 꾸는 걸까


뮤지컬 <데스노트>의 가장 큰 차별화는 무대 연출에 있다. <데스노트>의 무대 연출은 9할 이상이 무대 세트가 아닌 미디어아트로 구성되어 있다. 무대 연출을 위한 그래픽 아트는 기존에도 여러 번 시도되었지만 극 전체를 완전히 LED 화면으로 채운 경우는 <데스노트>가 유일하다시피 하다. 이러한 연출 형태는 뮤지컬 특유의 시각적으로 화려한 무대와 현장감을 선호하는 많은 관객들에게 다소 호불호가 갈리긴 했으나, 본인은 매우 도전적이면서도 효과적이었다고 평가한다.


기존의 뮤지컬은 극의 배경과 극적인 효과 등을 위해 세트와 소품을 적극 활용한다. 거대한 건물 세트가 움직이기도 하고, 와이어 액션 등을 사용하는가 하면, 무대의 일부가 돌출되거나 반대로 푹 꺼지는 등, 요컨대 무대 위의 실체로서 구현된다. 그러나 <데스노트>는 그렇지 않다. 상하좌우 전면이 LED 화면으로 구성되어, 장면의 전환이 무대 세트나 소품의 전환이 아닌 화면의 전환으로 이루어진다.

 

이 덕에 <데스노트>는 장면과 장면의 연결이 매우 유기적이다. 일반적인 뮤지컬의 장면 전환은 암전, 기존 등장인물들과 세트 퇴장 및 다음 장면 등장인물들과 세트 입장, 이후 다시 명전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데스노트>도 큰 틀은 같으나, 배우와 세트의 입퇴장 시간을 벌어주는 암전 기간 동안 작중 시간적·공간적 배경 전환 이 미디어아트를 통해 시각적으로 상영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이러한 연출은 관객의 몰입도를 크게 높이고, 고차원적인 연출을 가능하게 한다.


일례로 극의 서막, 라이토의 학교에서 사신의 세계로 넘어가는 장면은 칠판에 그려져 있던 불가사의한 그림으로의 줌인을 통해 나타냈고, 류크가 떨어트린 노트는 사신계에서 인간계로 날아갔다는 것을 영상으로 직접 보여준다. 실제 류크 역 배우가 데스노트를 떨어트린 후 노트는 무대의 자리에 그대로 있었지만 관객은 이러한 연출 덕에 모두가 사신계에서 인간계로 떨어진 노트라는 걸 납득할 수 있다. <데스노트>의 판타직한 요소를 연출적으로 강화한 것이다.


판타지가 가미된 현대극인 <데스노트>에서 본인은 이러한 연출이 분명 특색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일각에서는 현장감의 부재 우려와 원가 절감 의혹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는 부분이다. 연출의 다각화를 위한 기술 발전의 적극 활용과 동시에 공연 예술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하는 적절한 타협점을 구해야 할 것이다.

<데스노트> 공연 사진 / 출처 : 오디컴퍼니

서로를 속이고 찾아서 끌어내 죽여야 사는 게임


본인이 「데스노트」 원작도 재미있게 봤던지라 원작과의 비교도 해볼까 한다. 만화 「데스노트」는 기존의 소년만화와 다르게 주인공이 명백한 악역이며, 추리 수사물의 성격을 띠지만 주인공이 미지의 범인을 쫓는 게 아닌 L을 포함한 작중 대다수의 공권력이 메인 빌런인 주인공을 쫓는다는 차별화된 형식으로 소년만화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원작 「데스노트」의 팬이 뮤지컬 <데스노트>를 본다면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무대 효과와 웅장한 넘버들의 향연, 배우들의 높은 역량과 싱크로율 등에서 크게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등장인물의 입체성과 극 구성에는 다소 실망할 수 있다. 원작 「데스노트」의 정체성은 키라를 잡으려는 경찰과 L,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으려는 키라 야가미 라이토의 끝없는 치밀한 머리싸움이었다.


뮤지컬 <데스노트> 역시 키라 야가미 라이토와 천재 명탐정 L의 두뇌 싸움을 표방하지만, 러닝 타임의 한계에 부딪쳐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두 사람의 추리극적 요소가 다수 삭제되었다. 이는 라이토와 L의 천재라는 캐릭터 설정에 불가피한 의문 부호를 낳았다. 또한 뮤지컬의 장르 특성상 두 인물의 심리전이 그 자체보다는 듀엣 넘버의 가창으로 나타난다. 초연부터 캐릭터를 구축해온 L 역의 김준수 배우 역시 이를 알고 원작의 음침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보다 극적인 경쟁 구도를 살리기 위한 호전적이고 집착적인 캐릭터로 L을 소화해냈다.


렘과 미사 역시 설득력이 부족한 캐릭터이다. 특히나 렘이 보통 사신들과 달리 미사를 사랑하고 미사에게 헌신하는 이유를 극에서 전혀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에, 렘과 미사의 유대가 절정에 이르는 극의 후반부가 지루해지는 결과를 낳았고 렘의 희생까지 염두에 둔 라이토의 치밀함도 설득력이 없어진 것이다.


결말도 원작에 비해 뜬금없다는 느낌이 강하다. 원작에서는 모든 진실이 밝혀지고 완전히 라이토가 몰락함에 따라 류크가 라이토의 이름을 노트에 적으나, 뮤지컬에서는 라이토와 L의 대결에 종지부를 찍고 라이토의 승리가 확정되었을 때 찬물을 끼얹으며 라이토를 죽이게 된다. 극이 절정에 치달았을 때 다소 허무한 끝맺음이지만, 신 앞에 무력한 인간의 덧없음에 더 집중한 결말이었기에 본인은 나름대로 여운이 있었다.

2023.05.20. <데스노트> 밤공 캐스팅보드

작년에 이어 올해의 <데스노트> 열풍은 전례 없을 정도의 매진 행렬을 이끌어냈다. 원작의 유명세에 힘입은 낮은 접근성, 박진감 넘치는 전개와 음악, 그리고 배우들의 역량까지 누구나 즐겁게 볼 수 있는 극이라고 생각한다. 서울 공연의 대흥행에 이어 현재 대구, 부산에서의 지방 공연도 예정되어 있으니 비수도권 시민들에게도 입문용으로 적절한 뮤지컬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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