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공무원 시험이나 각종 고시 준비가 광풍이 불었다고 할 정도로 인기였다. 내 주위에도 몇 년씩 공무원 준비를 하던 지인들이 여럿 있었다. 그중에는 어릴 적부터 공무원이 꿈이었던 친구도 있었다. 그 꿈을 이룬 친구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두 그렇지는 못했다. 졸업 후 무엇을 할지 고민하다가 시작한 시험인 듯했다. 합격은 못했지만 이미 준비했던 시험이라 몇 년 동안 계속 전업 고시생으로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힘들어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다 보면 꼭 이런 방식밖에 없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무원을 뽑는 방식이 꼭 암기가 많이 필요하고,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해왔다고 하는 사람들도 몇 년 걸리는 것이 태반인 시험이어야 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은 외국의 공공기관에 대해 알고 나서 강해졌다. 연구원으로 일할 때 해외 제도를 조사하다가 영국, 미국 등 외국의 공무원은 우리나라처럼 고시 스타일의 시험으로 선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연구가 공무원에 대한 연구는 아니었고 모든 제도를 알기는 어렵다. 공공 제도에 대해 찾다 보니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에 대해 알게 된 것이었다.
아무튼 우연히 알게 된 내용들이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외국에서는 암기식의 시험보다는 관련 분야의 경력과 학위 등 실질적인 경험과 훈련 과정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대학과 대학원 교육 과정도 한국보다 실무 경력을 더 직접적으로 쌓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미국 대학원을 다닐 당시 지도교수님이 나와 대화 중 한국 공무원 시험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 놀라신 적도 있다. 교수님은 내가 졸업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정부 기관에 취직해 일을 할 수도 있지 않냐고 물어보셨다. 미국의 보건 분야 공공기관에서 일한 경험이 있으셨기에 궁금증도 있고 나의 장래를 같이 고민해 주는 겸 질문한 것이었다.
나는 한국 공무원은 보통 2-3년씩 시험 준비를 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시험을 보지 않는 경력직도 뽑지만 계약직이 많고 자리도 많지 않다는 것도 말한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뭔가 시간을 들여 시험을 준비하기보다 실무를 더 쌓고 연구 분야로 가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무리 정부기관 일이라 해도 시험 준비에 2년 이상 걸리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말이 믿을 수 없다며 진심으로 놀라는 표정을 지으셨다. 그리고 한국의 제도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어보셨다.
최근에는 공무원 준비에 대한 인기가 한풀 꺾였다는 기사를 많이 접하게 된다. 적은 연봉과 수직적 인간관계, 낮은 연차에서 역량을 펼치기 어려운 환경 등이 MZ세대에게 맞지 않다고 지적된다. 어렵게 시험에 합격했다가 퇴사하고 다른 길을 찾기도 하는 시대이다.
개인적으로 어떤 일을 경험했든 나쁜 짓을 한 것이 아닌 이상 살면서 인생에 어떻게든 교훈을 주고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따라서 공무원 준비나 고시 준비에 성공하지 않았어도 그 시간에서 얻는 것이 없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여러 장래희망을 생각해 보고 결정하기보다 이 길이 괜찮은 길이라고 들었고, 주위에서도 많이 준비하기에, 또 가족들과 지인들 보기에도 번듯한 직업이기에, 그래서 일종의 압박감에 휘말리듯 시험으로 뛰어든 청년들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구하는 것을 강조하기 이전에 자기가 진정 원하는 길을 찾아가도록 격려해 주는 분위기였다면 어땠을까. 비록 원론적이고 이상적으로 들리더라도 안정적인 것 하나만 보고 붙잡고 가기에는 오히려 다년간의 시험 준비나 공무원 이후의 삶이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나도 직업 경로가 몇 번이나 바뀌었고 여러 시험 중 하나를 진지하게 고려했던 사람으로서 돌아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현재의 젊은 세대가 어른 세대가 되었을 때는 많은 것들이 달라졌으면 좋겠다. 나도 한 살 한 살 먹어감을 느끼며 생각하건대, 만약 누군가 고민하며 물어본다면 꼭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라고 응원해 주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