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새벽의 노크 소리 2 - 정박 변태
방으로 돌아와 팬티만 입은 채 콜라의 명가 코카콜라를 홀짝이던 새벽이었다. 새벽 망상만큼 달콤한 것도 없다. 주변이 논, 밭, 산으로 둘러싸인 기숙학원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망상에도 한계란 있는 법. 탄산 축제를 성황리에 마친 나는 아쉬움 하나 없이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눌렀다.
영상 편집을 하려고 가져온 데스크 탑으로 주구장창 유튜브만 보던 때였다. 그만큼 고단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웃음은 만병통치약이라 하지 않았는가. 현대 사회에선 정신과 의사보다 유튜브느님의 치료가 더 효과적이지 않은가. 현대인인 나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나는 지친 영혼을 달래려 무한도전 레전드 클립을 클릭했다. 모니터에선 개그맨 박명수의 뒤통수 딱따구리 장면이 나왔다. 예전에 보던 영상이 이어져 재생된 것이다. 나는 콜라를 뿜어 버렸다. 박명수의 초점 잃은 눈동자가 그렇게 웃길 수가 없다. 나는 뿜은 콜라를 닦지도 않고 계속 모니터를 바라봤다.
그날은 유독 힘든 날이었다. 학부모님께서 아이의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며 한 시간 이상 걱정을 쏟아 낸 터였다. 아들이 아버지를 닮아 말을 죽도록 듣지 않는다는 하소연이 1시간 중 90퍼센트를 차지했다. 남의 가정사를 몰래 엿듣지 않고, 당당하게 들을 수 있는 직업이 기숙학원 선생님이기도 했다. 험담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직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나는 그렇지 않은 인간이었다. 그래서 오늘의 고통은 두 배가 됐다. 어머님께 하소연 하고 싶은 건 되려나였다.
기진맥진한 나는 샤워도 미룬 채 무한도전 핫 클립을 연거푸 클릭했다. 온몸에 엔돌핀이 돌았다. 역시 무한도전은 그 어떤 명의보다 낫다.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웃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이 행운일 따름이었다. 명작 예능의 방영이 끝난 것에 잠시 애도를 표했다. 그렇게 기분 좋게 두세 개 정도의 영상을 더 시청했을 즈음이었다. 어둠의 그림자가 나의 작은 행복을 깨뜨리려 방문 앞을 서성이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른 채, 나는 옆방 선생님께 혹여나 피해가 갈까, 웃음소리를 꾹꾹 참아가며 큭큭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야심한 밤, 갑자기 숙소 문을 두드리는 소리. 깜짝 놀란 나는 고개를 돌려 문을 쳐다보았다. ‘이런...’ 문에는 잠금장치가 되어있지 않았다. 가을이 시작될 무렵의 시원한 계절이었음에도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밖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새벽 1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나는 잘 못 들었거니 찝찝한 기분을 뒤로하고 애써 영상의 볼륨을 키웠다.
“똑. 똑. 똑.”
‘뭐야?’ 잘 못 들은 게 아니었다. 아주 정갈하게 같은 힘과 같은 박자로 누군가 내 방문을 친절하게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분명한 것은,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야심한 새벽에 노크 대신 문자나 카톡을 먼저 보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새벽 1시에 방문을 두드리는 걸까? 갑자기 수년 전 남자 기숙학원에서 근무했을 무렵이 떠올랐다. 기숙사 빈방에 수상쩍은 사람들이 몰래 들어와 살던 사건이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을 쇠몽둥이를 들고 쫓아냈다. - 쇠몽둥이는 조립식 바벨의 원통형 쇳덩이였다. - 이렇듯 기숙학원에는 가끔 침입자들이 들어온다. 당시 나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혼자서 두 명의 괴한을 상대해야 했음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용감해서 무식했던 건지 무식해서 용감했던 건지. 소극적인 부족 원이 용맹한 기사였을 때가 있었다. 내 용맹함의 원천은 사실 손에 들고 있던 쇠몽둥이였다. 손에 든 무기가 나의 두려움을 전부 흡수한 것이리라.
“똑. 똑. 똑.”
지금 나의 손에는 손가락 모양으로 살짝 찌그러진 콜라 캔이 덩그러니 들려 있다. 나를 지켜줄 갑옷 따윈 없었다. 손이 덜덜덜 떨리고 있었고, 나는 팬티 바람이었다. 그야말로 무방비 of 무방비.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똑. 똑. 똑.”
놈은 변태가 분명했다. 놈이 하는 친절한 노크는 정확한 음을 타며 정박으로 박자를 탔다. 놀라운 점은 네 번의 노크가 전부 같은 힘으로 가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낮고 청명한 노크 소리가 이어폰을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황급히 이어폰을 빼고 문 가까이 다가갔다. 여전히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귀신인가?’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사람인지, 혹은 사람이 아닌 것이 서 있을지도 모르는 문을 향해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입을 뗀 그 직후 바로 후회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말을 더듬고 만 것이다. “누, 누구세요?”라니. 새벽 1시. 문밖에 있는 녀석은 분명 나를 김빠진 콜라처럼 우습게 생각할 것이다. 나의 떨리는 목소리가 놈의 공격 성향을 끌어 올렸을지도 모른다. ‘아차!’ 너무 긴장해서 문을 잠그는 것도 깜빡하고 있었다. 그때 정말 변태처럼 방문이 슬그머니 열리고 있었다. 슬며시 돌아가고 있는 문손잡이가 내 눈에서 슬로우비디오처럼 지나갔다.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말랐던 땀샘에서 분수처럼 다시 땀이 솟아올랐다. 이대로라면 나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 하고 “정박 노크” 변태에게 당하고 말 것이다. 문은 이미 사람의 얼굴이 들어 올 정도로 빼꼼 열려 있다. 사람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의 평화로운 온실 속으로 침입하는 노크 변태를 막아야 한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문을 쾅 하고 닫으며 소리쳤다.
저리 꺼져 이 변태 새끼야!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