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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피트, LVMH의 아르노 회장이 선택한 한국화가

전통과 현대의 융합된 시선 - 배준성 개인전

by 민경우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부터 명품 제국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까지, 세계적인 안목을 지닌 이들이 선택한 한국 작가가 누구일지 짐작이 가시나요? 바로 한국 현대미술에서도 손꼽히는 배준성 작가님입니다. 작가님은 2000년에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하며 미술계에 이름을 알렸어요. 세계적인 컬렉터들을 제외하고도 파리 퐁피두센터와 루이뷔통 미술관 등 세계 유수 미술 기관에 작가님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을 정도로, 국제적인 무대에서도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배준성 작가님은 어릴 적 만화영화 '플란다스의 개'의 주인공 네로를 보며 깊은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외롭고 고독했지만, 그림을 향한 열정을 품었던 네로에게서 작가님의 모습과 닮았다는 것을 발견했고 화가의 꿈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고 전합니다. 어쩌면 사회적 관계나 외부의 인정이 아닌, 내면의 순수한 열정만으로 예술을 추구하려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2025년 신작에서는 작가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릴만한 회화작품들을 그렸는데요. 갤러리 508에서 배준성 작가 개인전 <The Costume of Painter - On the Stage>에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개인전 제목에서부터 이미 느낌이 올 테지만, 갤러리 508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The Costume of Painter' 시리즈와 신작 'On the Stage' 시리즈를 한 번에 모두 볼 수 있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우선, 'The Costume of Painter' 시리즈는 비닐필름을 이용한 다중적 평면화 작업시리즈입니다. 입체감의 표현효과가 가능한 렌티큘러(Lenticular) 작업으로서 입체감의 표현효과뿐만 아니라 시각적 공간 확장성도 보여줍니다. 그리고 현대미술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가변성(Variability)이 잘 나타나죠. 이 시리즈를 통해서 작가님은 세계적으로 한층 더 주목받고 인정받은 작가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변성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작품이 고정된 하나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고 움직임, 외부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특성입니다. 마치 작품이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줍니다. 배준성 작가님의 렌티큘러 작품은 볼록렌즈에 의해 보는 각도에 따라 그림 속 이미지가 달라지는 것이 바로 가변성의 대표적인 예시죠.


At the studio - doodling, window 3, 227.3cm X 181.8cm, Lenticular and Oil on Canvas, 2021


이번 전시에 출품된 'On the Stage' 시리즈는 회화입니다. 평면의 캔버스 공간을 현실과 상상이 공존하는 무대라는 설정하에 붓과 물감으로 연출한 작업입니다. 이 시리즈는 작가가님이 다양한 작업을 경험하면서 회화의 본질과 가치에 대한 자신만의 양식을 구축해 나가는 작업적 일관성을 보여주는 작업이라고 전합니다. 작가님은 이번 신작 시리즈에 대해 "서양화 전공자로서 렌티큘러 작업이 주가 되다 보니 회화 실력 부족으로 오해하는 시선도 있었다. 언젠가는 순수 회화로도 승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언급했습니다. 이러한 작가님의 진솔한 고백에서 미술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어요.




1. The Costume of Painter 시리즈



<The Costume of Painter - On the Stage> 전시를 연 전시전경. 출처 갤러리 508


이번 전시회에서 제일 먼저 소개할 작품은 'The Costume of Painter' 시리즈 <At the studio - doodling, window 3>입니다. 앞서 동영상으로 보여드렸던 작품인데요. 장소는 긴 방 아니면 복도처럼 보이는 장소를 바라보는 듯한 원근감이 있습니다. 시점은 아래에서 위로 향하고 천장과 바닥의 반사되는 빛 표현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해줍니다. 공간을 깊고 넓게 느끼게 해주는 효과를 줘서 공간감을 극대화합니다. 이 작품의 큰 특징은 중앙의 벽면에 렌티큘러 기법으로 그려진 하얀색 낙서 같은 드로잉인데요. 움직임의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가변성의 성격이 있습니다.


작품 하단에는 어린아이가 나오는데요. 렌티큘러 작업의 낙서를 바라보는 저의 시선과 같아 저와 함께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작가님이 '플란다스의 개' 만화영화를 보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죠. 그래서 작품 속 어린아이는 작가님의 순수한 예술적인 내면을 상징하는 걸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을 감상하면서 내 안의 잠재된 창의성이나 동심이 자극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잘 정돈되고 차가운 공간 속에서 원초적인 날 것의 드로잉과 아이의 순수한 아이디어로 창작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 자신을 돌아봤는데요. 과연 나는 정말 순수하게 영감을 받은 전시를 보고 리뷰를 쓰고 있는지, 아님 인기 많고 조회수가 잘 나올만한 전시를 골라서 글을 썼는지에 대해 한번 생각해 봤던 작품이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이성적인 현실과 본능적인 창작활동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이 생겨 제게 의미 있었습니다.


At the studio - doodling, window 3, 227.3cm X 181.8cm, Lenticular & Oil on Canvas, 2021, 출처. 갤러리 508


다음으로 소개할 'The Costume of Painter' 시리즈의 작품들은 <Romeo & Dongsook 2>, <F.Hayez kiss 3D>입니다.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큰 특징은 전통회화에 현대적 재료를 사용해서 운동성과 공간감을 부여했다는 점인데요. 딱딱하고 고정된 개념의 평면회화를 복합적인 시각경험의 현대미술로 바꾸어 놓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작가님의 작품은 초기에는 비닐필름으로 작업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비닐 필름이 훼손될 수 있다는 문제점이 발견되어 이를 해결하고자 렌티큘러를 도입했다고 전합니다. 그래서 작가님의 렌티큘러 작품들은 모두 비닐필름으로 먼저 출품되었던 작품들을 다시 재해석되었다고 볼 수 있죠. 이 연작들의 핵심은 비닐 필름이나 렌티큘러라는 매체를 통해 서양 고전 회화 속 여성 누드를 현대 여성의 이미지나 동양적인 요소를 중첩시키는 방식에 있습니다.


번외로 사실 이 두 작품들 또한 영상으로 담아 업로드를 하려고 했으나 혹시나 '누드'에 대한 불편함이 있는 구독자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미지로만 대처한 점 참고 부탁드릴게요.



본론으로 넘어와서 'The Costume of Painter' 시리즈를 감상하면서 '일상적인 것들이 과연 어디까지 예술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냥 막연히 생각하면 이것들을 어디다 쓰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관심을 두지 않는 일상적인 재료이지만, 비닐 필름 위에 스케치를 하고 볼록렌즈를 나열하면 아름다운 예술이 됩니다. 실제로 '일상의 모든 것이 예술이다. 혹은 일상의 모든 게 예술의 주제가 되고 재료가 된다.'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 안에서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을 포착하고 메시지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리고 그러한 것은 천재적인 재능이기보다는 일상에 얼마나 관심을 두고 얼마나 호기심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이 듭니다. 비록 제가 예술가는 아니지만, 작품들을 보면서 일상적인 것들이 다양하게 쓰이는 것을 보니 현대미술에 대한 영감을 얻어가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Romeo & Dongsook 2(좌), <F.Hayez kiss 3D(우)




2. On the Stage 시리즈


<The Costume of Painter - On the Stage> 전시를 연 전시전경. 출처 갤러리 508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님의 신작 회화작품인 'On the Stage' 연작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신작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작품은 바로 <Tree story 5>입니다. 작가님은 예전부터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살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고 했는데요. 그러한 꿈을 이번 회화에 실현시켰습니다. 나무 위의 집을 중심으로 빛이 가운데에서 퍼지는데요. 연작 이름이 On the Stage라는 영향이 있어서 저에게는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연극 무대처럼, 나무의 특정 부분이나 집 주변에 강렬하고 비현실적인 빛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작품 속 공간에 묘한 깊이감과 함께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법한 환상이 보이죠. 작품 속 요소들의 배치와 배열을 보면 나무 위에 올려진 집, 그네 타는 아이들 그리고 빨래 너는 풍경은 미묘하게 이질적인 느낌을 줍니다. 무언가 진짜 같으면서도 꿈처럼 묘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어요. 덕분에 관람객들이 더욱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도록 해주는 효과도 있어 보였습니다.


Tree Story 5, 162.2cm X 130.3cm, Oil on Canvas, 2024, 출처. 갤러리 508.


다음으로 소개드릴 작품은 <Tarzan Story>입니다. 이 작품은 우리가 아는 타잔 이야기를 작가님만의 시선으로 새롭게 해석한 작품인데요.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배경을 채운 폭발적인 색채와 거친 물감 자국인 스플래터 기법입니다. 오두막 뒤편의 주황색과 노란색 빛은 숲 전체를 뜨겁게 달구는 듯한 에너지와 뜨거운 감정을 표현하는 듯했어요. 특히 거친 물감 자국은 정글 안에 야생을 표현하는 듯 보였습니다. 렌티큘러 작품들은 이미지의 변화로 관람객들에게 자극을 줬다면, 이 작품은 색채와 터치만으로 사람들에게 감각적인 경험을 극대화해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 작품 또한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했는데요. 외부의 야생과 강렬한 빛 속에서 존재하는 인물들은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에 집중하고 대사를 하는 것처럼 보였죠. 오두막 창문 너머로 보이는 인물은 관람자로 하여금 저 안에서 어떤 이야기가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증을 유발하며, 각자 자신의 내면 속 '타잔 스토리'를 상상하게 만들어줬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현대 도시생활을 하면서 답답한 제 마음을 뚫어줬습니다. 타잔이 숲에서 어떠한 제약도 없이 자유롭게 공간을 다니는 것을 보면, 저 또한 해방되는 시원한 바이브를 느낄 수 있었어요.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어서 인상이 깊었던 작품이었습니다.


Tarzan Story, 112.1cm X 145.5cm, Oil on Canvas, 2025, 출처. 갤러리 508.


마지막을 소개할 작품은 <Pinky Rainy Day 2>입니다. 제목처럼 작품 속에서는 분홍빛이 나는 비가 떨어지고 있어요. 보통 비 오는 날이라고 하면 날씨고 흐리고 우중충한 게 특징입니다. 하지만 작품 속에는 노란빛과 나무 곳곳에 스며든 분홍색, 보라색이 작품을 신비롭고 몽환적인 공간을 만들죠. 그래서 비가 와서 세상의 색이 더 선명해진 것처럼 보입니다. 만약 제 어릴 적에 '비가 저렇게 왔으면 저도 밖에서 신나게 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비 오는 날에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색채의 조화로 꿈같은 분위기를 표현 한 점이 저에게 크게 와닿았습니다.


글 초반부에 언급했었지만, 작가님은 '플란다스의 개'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네로는 외롭고 고독한 화가로서 작가님과 닮아 있었고, 화가가 되면 네로처럼 작가님과 비슷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셨죠. 영감을 받았던 그 어린 시절의 감정을 떠올리며 작품 속 아이들을 배치한 것이라고 전합니다. 아이들은 바로 그 기억과 감정을 시각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작가님께서 말씀하시길, "화가에 세 중요한 것은 종이 한 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반응하느냐"라고 말하며, 무대 위에 사건을 올리는 것이 화가의 역할임을 강조하셨습니다.


Pinky rainy day 2, 130.3cm X 162.2cm, Oil on Canvas, 2025, 출처. 갤러리 508.




여기까지 기억에 남았던 작품들을 소개했는데요. 이번 갤러리 508 전시에서 'The Costume of Painter' 연작이 'On the Stage'와 함께 전시되는 것은, 작가님이 그동안 탐구해 온 '현실과 가상이 만나는 세계'라는 모토와 '보는 행위'에 대한 질문이 캔버스 회화로 어떻게 이어지고 확장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했습니다. 렌티큘러를 통해 구현했던 '움직이는 이미지'의 실험이 이제는 붓과 캔버스 위에서 색채와 구성을 통해 어떻게 '무대'처럼 펼쳐지는지 비교하며 감상하는 것이 포인트였어요. 덕분에 이번 전시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캔버스라는 공간이 생각보다 훨씬 더 깊고 유연한 무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Bae Joon-Sung, Courtesy of Gallery 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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