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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덩이 Apr 09. 2023

퇴사를 위한 준비

퇴근 후의 노력

퇴사에도 준비가 필요하다. 


무작정 그만두는 것은 안 그래도 불안한 인생에 불안함을 더하는 일이다. 퇴사를 마음먹은 순간 지르기보다는 무엇을 위해 퇴사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해야 한다. 가령 이 일 말고 어떤 일을 할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지금부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파고들어 가야 한다. 그렇게 답을 하나씩 찾다 보면 미래가 보이고 그 속에 내가 보인다. 지금 이 현실이 싫다고 사표부터 내고 보면 낭떠러지 피하려다 웅덩이에 빠지는 꼴이 된다.


안타깝지만 미래를 그리는데 자본이 필요하다. 예컨대 세계여행을 가려해도, 창업을 하려 해도,  공부를 하려 해도 돈이 있어야 한다. 몇 년을, 최소 몇 달을 버틸 수 있는 목돈 말이다. 남이 책임져주지 않는 한 번뿐인 내 인생이기에 퇴사계획과 그에 따른 자본계획을 철저히 세워야 한다. 개천에서 용 나고 무일푼에서 자수성가하는 케이스는 매우 드물기에 그 몇 안 되는 확률에 걸기에는 내 인생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나는 은행을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자마자 내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처음에는 이직을 생각했다. 금융권을 떠나 마케팅 및 인사 직종으로 옮기고 싶었다. 그러나 자격증은 만료됐고 경력직으로 지원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취업 공고가 올라오는 시기도 아니었기에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라는 마인드로 언어 자격증부터 취득하기로 했다. 


영어의 경우에는 해외살이 경험이 있기에 학원 없이 바로 그 주말에 OPIC, TOEIC, TEPS 일정을 일주일 간격으로 잡았다. 그래서 그 달 매주말마다 영어 시험을 봐서 자격증을 땄다. 중국어의 경우에는 2년 정도 지나니 감이 많이 떨어졌다. 그렇기에 퇴근 후 월수금 충무로에서 을지로까지 걸어가서 두 달 동안 학원을 다녔다. 월수금에는 학원을 위해 정시 퇴근을 해야 해서 화목마다 야근을 했다. 목표가 생기니 학원을 다니는 일이 힘들지는 않았다. 그렇게 HSK 5급도 곧 취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취업 시즌이 시작되자마자 퇴근 후에 근처 카페로 가서 자소서를 썼다. 가끔은 야근하고 집에 가서 잠을 줄여가며 공고에 지원했다. 간절함이 피곤함을 이기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자소서 시즌이 끝나면 귀한 토요일을 인적성 보는데 할애했다.


그렇다고 일을 또 소홀히 했던 건 아니다. 수가 틀리면 계속 일을 해야 하고 내 주변 동료들에게 누가 되고 싶지 않았다. 사실 내 일을 잘 책임지고 마쳐야지 떠나는 순간에도 악감정 없이 "수고했다"라는 말을 들으며 떠날 수 있다 생각했다. 사람 관계라는 게 무 자르듯이 끊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 가서 어떻게 또 만날지 모르는 게 인연이기에 잘 이별하는 것도 꽤나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사실 내 일이 아니어도 도맡아 하고 내 일도 실수 없이 완벽히 하려 최선을 다했다. 혼자 남아 야근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안타깝게도 이직은 성공하지 않았다. 반년 내내 바쁘게 살았으나 줄줄이 떨어지기 일쑤였다. 그제야 나는 나를 바로 볼 수 있었다.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것을 했는데도 성공하지 않았으니, 그다음으로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인가를 보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취직만을 생각하고 그 외의 것을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던 거다. 과연 내가 잘하는 게 뭐고 좋아하는 게 뭔가? 마케팅과 인사?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게 맞는 건가? 답은 NO였다.


한참 고민하던 때 지금은 헤어진 남자친구가 "연구는 어때?"하고 물었다. 대학원! 저 멀리 밀어둔 선택지였다. 순간 가슴이 뛰었던 것 같다.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했다. 한국어든 영어든 상관없이. 그냥 내 생각을 글로 푸는 것이 좋았다. 대학 때 미디어를 전공으로 영화와 드라마를 분석해 레포트를 작성하는 게 특히나 재밌었던 기억이 났다. 학교 영자신문사에서 2년 넘게 활동하며 계속해왔던 것도 읽고 쓰는 거였다. 정답을 찾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지체 없이 대학원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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