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연애부터 롱디, 유학 중 이별까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진다 했던가
H와의 연애가 딱 그렇다. 사실 5년인데도 익숙해지지 않으면 그것이 더 이상하다. 그래도 우리는 점차 익숙해져 갔고, 서로가 가족 같아졌고, 새로움을 잃고 다정함을 잊고, 당연해졌다. 그런 과정이었다.
H와는 시작부터 많이 싸웠던 것 같다. 나는 상냥한 듯 하지만 고집이 셌고, H는 속은 깊으나 이해심이 얕았다. 생각해 보면 항상 나는 왜 내가 서운한지 그가 이해할 때까지 설명했고 그는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참 오래 걸렸다. 가끔은 언성이 높아지고 눈물이 터졌으며 어떤 때는 외면과 자존심 싸움으로 이어졌다. 정말 피 터지게 싸웠지만 그만큼 열렬하게 사랑했던 것 같다. 차이가 있다면 두 번째 연인이었던 J만큼 그를 1순위로 세우지는 않았다. 항상 내가 1순위였으며 연애에 있어서 나의 행복을 많이 돌아봤다. 이제는 나를 갈아 넣는 연애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정말 열과 성의를 다해 그를 사랑했고, 그만큼 믿었다. 정말 이 정도까지 싸우는데도 나와 붙어있는 상대가 있다면 그에게는 그만큼의 믿음을 주게 된다.
믿음이라는 씨앗은 비를 맞으며 싹을 틔우고
나도 모르는 저 깊숙이까지 뿌리를 내린다
이전의 연애 모두가 짧기는 했지만 H만큼 믿었던 사람이 없었다. 나를 사랑한단 믿음, 무슨 일이 있어도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는 믿음. 그것만큼 나를 단단히 하는 것은 없다. 이것까지 얘기해도 될까 하는 것들을 나는 숨김없이 보여줬다. 부모에게도 이런 말들까지는 하지 못했다. 나의 속 좁은 과거, 치부, 망신과 불명예. 그런 것들 모두 열어뒀다. 믿음이라는 게 그렇게 무섭다.
그리고 그는 6개월이 지나 네덜란드로 떠났고 나는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우리 둘에게 분명 인생 가장 힘들었던 시간 중 하나였다. 서로가 떨어져 있어서도 있지만 나는 혹독한 신입사원 신고식을 치렀고 그는 외로운 유학생활을 보냈다. 한쪽만 힘들었으면 성공하기 힘들었던 장거리 연애였다. 둘 다 힘들고 스스로를 돌보기 바빴기에 우리는 일 년 가까이를 무사히 넘겼다. 사실 무사히라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많이 보고 싶었고 그만큼 미울 때도 많았다. 서로 아픈 말을 뱉어내고 상처도 받았다. 그리고 H도 외로움에 눈이 멀어 치명적인 실수도 했다. 이 사건으로 헤어질 위기에 놓일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일은 여기서 논하지는 않겠다. 다른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듣더니 왜 이때 헤어지지 않았냐고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그래도 이때 내가 이해하고 넘어갔기에 내가 그를 더 알아갈 수 있었고 행복했던 기억도 쌓을 수 있었으니 더 이상의 비난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일 년이 지나 한국에 돌아왔다. 대학생활을 한국에서 이어갔고 나는 직장을 계속 다녔다. 그는 학생임에도 과소비를 하고 나는 직장인임에도 자린고비로 살았기에 알맞은 연애를 할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착각하는 걸 수도 있다. 상대가 나에게 맞춰준 부분도 상당히 많기 때문에 그게 어떤 관계든 내가 알맞다고 추측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래도 그렇게 3년 반을 더 사랑했다.
H는 거칠지만 다정했다. 툴툴거리고 큰 소리 낼 때도 많았지만 그 속은 부드러웠다. 좋은 곳에 가면 나를 제일 먼저 떠올려줬고 맛있는 음식집에 마지막 숟갈을 꼭 나에게 줬다. 차에 타면 의자 온도부터 체크해 주고 내가 어디 가든 데리러 와줬다. 내가 눈물을 흘릴 때 휴지가 없으면 본인의 소매를 내어줬고 신발 때문에 발이 아프면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서 업어줬다. 나는 그렇게 가벼운 편도 아닌데. 내 실없는 농담에 웃어주고 가고 싶은 곳이 있다 하면 군소리 없이 따라가 줬다. 먹물파스타를 먹고 입가가 까매질 때면 웃기다고 사진을 찍어두고 그걸 사랑스럽게 바라봐줬다. 가끔은 내 상사 얘기 듣기 싫었을 텐데도 운전하는 내내 들어주고 같이 욕해줬다. 내가 가고 싶어 하는 길을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고 잘할 거라 믿어줬다. 우리 부모님도 반대하는 걸 그 친구가 격려해 줬다. 유학을 가면 내가 자기와 멀어질 걸 알면서도 하고 싶으면 하라 그러던 H였다. 그런 소중했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애인이었다.
5년을 한 장에 담는 것이 가능할까. 오히려 길기에 더 가능할 수도 있겠다. 짧은 인연은 할 얘기가 짧지만 에피소드가 굵기 때문에 풀어쓸 수가 있다. 그러나 긴 인연은 모든 게 일상이 되고 기억이 되고 그것이 곧 내가 되기에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그 기억이 곧 나이기에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
결론은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반년 넘게 유학을 준비했고 그 시기에 그는 헤어짐을 준비했나 보다. 동상이몽이었다. 나는 우리가 몸이 멀어져도 믿음이 있으니 계속 갈 것이라 의심조차 않았다. 그동안, 내가 무심했던 동안, 그렇게 그는 정리를 했던 거다. 마지막 공항에서 봤을 때 그는 손수건을 선물로 줬다. 울지 말라는 뜻인 줄 알았는데 잘 가라는 의미였나 보다. 시차에 연락은 점점 뜸해지고 나는 유학생활에 지쳐 푸념만 하고 그는 취준으로 고달파지고 처음의 열정은 사라지고 믿음의 뿌리도 그렇게 썩어갔다.
서로가 배려하지 않고 자기 생각만 하던 어느 날 싸움이 시작됐고 그는 나에게 이별을 고했다.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 순간 내가 느꼈던 감정은 배신감. 슬픔이나 분노도 아닌 배신감이다. 네가 어떻게 이 5년에 끝을 내릴 수 있나. 그만큼 우리 시간이 가볍고 인연이 유약한 것이었나. 전 연애에서의 이별이 고통이라면 이번 이별은 어이가 없었다. 믿기지 않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심지어 나는 유학 중이었다. 그의 유학생활 동안 계속 함께해 왔고 나의 유학도 기다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네가 유학 중에 그렇게 힘들어했으면 나의 유학도 힘들 것이란 걸 알 텐데, 너는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을까.
그리고 두 번을 더 잡았다. 처음 잡았을 때는 내가 너를 다시 꼬실 수 있다고, 시간만 주고 기회만 준다면 네가 다시 날 좋아하게 할 자신이 있다 얘기했다. 그는 그때 한 번 결론이 난 책을 다시 시작하고 싶지 않다 했다. 두 번째 잡았을 때는 한국에 들어가겠다고, 그러면 날 다시 사랑해 줄 수 있냐 물었다. 그는 나를 아직 사랑하지만 친구로 사랑하는 거라 했다. 거기서 정리가 다 됐다. 순간 이해가 갔고 다음날부터 슬프지 않았다. 이전 연애도 그렇지만 나는 이해가 되면 감정이 정리가 되나 보다.
가끔 그가 생각나기는 하지만 미련은 아니다. 아쉬움이다. 우리 참 잘 지냈는데, 추억이 이렇게도 많은데 이걸 다시 못한다니 정말로 아쉬워. 다른 누군가와 비슷하게 어울릴 수 있을까? 내 치부, 감정, 부끄러움과 흉까지 모두 공개할 수 있는 사람이 다시 생길까? 자신은 없다. 그는 내가 아직도 자기를 미워한다 생각할 것이다. 그래도 이상하게 이해가 되는 순간 밉지 않았다. 고마움만 남았다. 미안함만 일렁였다. 아무래도 내가 더 많이 받아서 그런가 보다. 그는 나보다 더 많이 주는 사랑에 지쳤나 보다. 나는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아서 그에게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다.
헤어질 때 나는 말했다. 나보다 멍청하고 못생긴 여자 만나라고. 그런데 그 말은 다 취소다. 그 순간은 진심이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붙잡은 다음날부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네가 캠핑장을 차리고 싶다는 꿈을 이야기할 때 허황된 소리 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보다 뭘 하든 잘할 것 같다고 응원해 주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어. 네가 여행 가고 싶을 때 외박 안 된다고 자르는 사람보다 네가 가고 싶은 어디든 함께 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어. 맛있는 마지막 음식 한 입을 너 입에 넣어주고 혼내기보다 달래줄 줄 알고 네가 오는 시간에 너에게 가까이 갈 줄 아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어. 네가 주는 배려에 매 순간 감사하고 울기보다 웃는 그런 사람. 너 말에 귀 기울여주고 뭐든 방긋 웃어줄 줄 아는. 무엇보다 너를 떠나지 않고 가까이에서 사랑해 주는 그런 사람을 꼭 만났으면 좋겠어.
이게 내 진심이다. 너에게 닿기에는 조금 늦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