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미니멀리즘
'전자기기를 많이 사용하면 멍청해지는 것 같다.' 이 생각이 스마트폰, 컴퓨터 없이 살기 실험의 발단이었다. 기분 탓으로 여기기엔 글쓰기를 하면서 스마트폰과 PC 이용량이 부쩍 늘어난 터였다. 하루나 3일은 너무 짧아서 이왕 하는 김에 일주일은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적절한 시기를 엿보고 있다가 12월 7일 밤 스마트폰의 전원을 껐다. 8일부터 14일까지 스마트폰, 컴퓨터 없이 일주일을 보냈다.
스마트폰 없는 일주일은 과연 어땠을까?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를 할 때, 가끔 배터리가 다 닳았을 때를 제외하고 휴대폰의 전원을 꺼본 적이 없다. 실험 하루 전, 브런치스토리에 스마트폰 없이 살기 실험을 시작한다는 글을 게시하고 나자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일주일은 너무 긴가? 3일만 할 걸 그랬나? 그냥 하루만 할 걸, 괜한 짓을 했구나.' 하지만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도 다음날 아침을 맞이하는 순간 왠지 모를 해방감을 느꼈다.
나는 곧 '해야 할 일'이 없는 일주일의 휴가에 설레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컴퓨터 없이 일주일을 지내는 것이 표면적인 목표지만 궁극적으로는 일상의 순간들에 보다 머무르고 싶었다. 책이 읽고 싶으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으면 글을 쓰고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첫날 설렘으로 들뜨던 기분도 찰나에 불과했을까? 밥을 먹고 나자 왠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이것도 금단 증상일까? 책을 읽고 그림도 그려 보고 글도 써 봤지만 무료한 듯했다. 역시 더 읽을 책이 필요하다 싶어 다음날 도서관에서 책을 더 빌려 왔다. 다행히 허전했던 마음은 금세 사라졌다. 이튿날부터는 지루함을 모르고 지냈다. 평소처럼 밥을 먹고, 빨래를 하고, 책을 읽고, 필사를 하고 나면, 어느새 하루가 다 지나가 있었다. 스마트폰 이용으로 분산되어 있던 집중력이 지금 이 순간 하는 일에 온전히 실린 덕분이다.
스마트폰 없이 불편하지 않았냐고? 오히려 편했다. 기대한 것처럼 책을 더 많이 읽었다거나(평소보다 2~3배로 더 읽긴 했다), 글을 더 많이 썼다거나, 명상을 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매일 글을 쓰는 루틴도 과감히 버렸다. 최대한 아무것도 하지 않기, 하고 싶은 것만 하기로 방향을 틀어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일주일간 스마트폰의 주요 기능을 이렇게 대체했다.
전화, 문자, 메신저 - 특별히 연락할 사람 없음
시계, 타이머 - 거실에 있는 시계 활용, 요리가 완성되는 동안 책을 읽거나 멍 때리기
날씨 - 실험 전날 주간 예보를 확인
사진, 기록, 메모 - 수기로 작성
SNS - 블로그는 예약 발행 기능을 이용, 브런치스토리는 일주일 휴식 공지
도서관 도서 검색 - 실험 전날 책의 청구기호를 메모
플래시 - 형광등 켜기(형광등 없이 살기 참고)
내가 감수해야 할 부분은 글쓰기의 일환인 SNS 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기록 매체를 전자기기에서 모두 수기로 대신하는 것이었다. 일기부터 사진, 메모, 독서 노트, 글쓰기 등 모든 기록을 스마트폰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기능이었다. 그런데 막상 상황이 닥치니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손으로 글씨를 써야 하니 생각을 정리한 다음 필요한 것들만 쓰게 됐다. 그동안 하나라도 놓치기 아쉬운 마음에 너무 많은 기록을 너무 쉽게 하고 있었던 게 아닌지 돌아보았다.
사진도 찍지 못하고 웹툰도 유튜브도 보지 못하지만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불편한 점은 있었다. 책을 읽다가 모르는 용어나 이론, 인물 등 정보를 바로 검색할 수가 없고 실시간 날씨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날씨는 주간 예보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일주일간 비가 많이 왔다. 만약 날씨 예보를 모른다면 불편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뜻밖의 좋은 점
잡생각이 사라진다
시간 개념이 없다
폰을 소독하지 않아도 된다
스마트폰을 치우면 그 시간에 생각을 더 많이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반대였다. 시시각각 머릿속에 떠다니던 생각들이 사라졌다. 머릿속이 깨끗해졌다. 덕분에 내가 떠올리는 생각들이 중심이 되었다. '생각하는 생각'만이 남았다. 스마트폰을 쓰면 호기심을 유발하는 제목의 게시글을 클릭하게 된다. 유튜브도 한번 보게 되면 알고리즘의 기가 막힌 추천으로 영상을 더 보게 된다. 쏟아지는 정보로 인해 우리도 모르게 주의력이 빼앗긴다. 생각의 흐름에 시시각각 끼어드는 방해물이 없어지자, 생각이 여기저기로 튀지 않고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했다.
내게 스마트폰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시계였다. 그런데 타이머가 없어도 지금이 몇 신지 몰라도 불편하지 않았다. 반대로 '시간 개념'이 없는 일상이 자유로웠다. 일어났을 때, 자기 전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거실에서 보는 것과 요리를 하면서 타이머를 재는 것 말고는 특별히 시계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평소와 비슷한 시각에 자고 일어났다. 오랜만에 낮잠을 자기도 했다. 시간 개념이 없다는 건 시간을 지키며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는 단점인 요소임이 분명하다. 정말 그럴까? 우리는 휴식 시간마저 시간을 쪼개어 쉰다. 정말 휴식이 필요할 때는 시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밖에도 사소한 부분이지만 외출 후 스마트폰을 소독하는 습관을 생략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알코올 솜 쓰레기도 배출되지 않으니 짧은 외출에는 웬만하면 휴대폰은 집에 두고 다니기로 했다.
스마트폰이 없는 게 더 편했다는 건 기본적으로 평소 생활이 스마트폰으로부터 받는 제약이 적었다는 뜻이다. 꼭 연락을 주고받아야 하는 일이 없었고, 최근 들어서는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지도 않았고, SNS를 하긴 하지만 내 기록만 남기는 유형이고, 산책을 할 때는 휴대폰을 두고 다니는 터라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한동안 스마트폰은 던져두고 책만 읽던 때가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블로그와 글쓰기가 취미가 되기 전의 생활로 돌아간 것이다.
스스로 했다고 믿기 어려운 생각들
스마트폰에 있는 수천 장의 사진을 삭제해도 괜찮다
글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스마트폰을 켜고 싶지 않다
나는 왜 해방감을 느꼈을까? 온라인 세상에서 잠시 나를 빼내어 오고 나서야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SNS를 하면서 필요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필요 이상의 기록을 남기고 있고, 필요 이상의 시간을 다른 곳에 빼앗기고 있다는 걸. 스마트폰을 켜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것도 이미 내 일상이 충분함을 경험했기 때문일 터다. 사람들과 연결된 끈을 애써 쥐고 있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고 나니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방향도 결정되었다.
이처럼 손에 쥐고 있던 것들, 익숙한 일상의 단면에서 잠시 멀어지면 본질을 발견하게 된다. 일상과의 거리 두기는 내게 소중한 게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다.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은 필요 없는 생각이었다. 노력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마음이 시켜서 하는 일들이었다. 한쪽에 접어둔 것들을 애써 펼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이미 충분했다. 무언가를 더하지 않아도 나는 이미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있었다. 내 시간은 온전히 내게 있는 것이었다.
스마트폰 없이 살기는 '굳이' 불편을 자처하는 일, '굳이' 재밌는 일을 포기하는 일이다. 그리고 '굳이' 해보지 않고는 걱정보다 편하다는 것도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다는 것도 모를 일이다. 지난 일주일은 '평화로웠다' 한 마디로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렇지만 기록으로 남겨 본다. 평범해서 특별했다고. 나는 다시 보통의 나날로 돌아왔다. 하루는 책만 보면서 하루는 글만 쓰면서 하루는 창가에 앉아 하염없이 비가 내리는 걸 바라보면서 되찾은 느슨한 마음으로.
일주일 만에 스마트폰을 켰다. 손에 잡히는 딱딱한 물건이 어색했다. 낯선 감각도 잠시, 익숙한 감각을 되찾는 데는 한나절이면 충분했다. 저녁이 되면 형광등의 스위치를 켜던 손길도 멈췄다. 다시 스마트폰을 손에 들었다. 너무도 익숙하게 스마트폰과 컴퓨터의 화면을 마주하며 너무도 쉽게 피로해짐을 느낀다. 적정한 거리감을 찾고 이따금 일주일에 하루는 스마트폰을 잠시 꺼두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없이 살기 90. 스마트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