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방 안의 형광등이 지직하더니 불이 꺼졌다. 전구가 나간 듯했다. 이 신호를 놓칠 수 없지! 이참에 불을 켜지 않고 지내보기로 했다. 또 실험 정신이 발동한 것이다. 처음에는 며칠만 버텨 볼 셈이었다. 그렇게 1주, 2주가 지나고 어느덧 한 달이 되어 간다. 놀라운 건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다는 사실!
그렇다면 방에서 형광등을 켜지 않고 어떻게 지내느냐? 저녁을 먹을 땐 휴대폰 플래시를 켜 놓고 먹는다. 식사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 씻고 와서 머리를 말릴 때도 마찬가지. 청소할 때는 한 손엔 폰을, 한 손엔 밀대 걸레를 들고 슥슥 닦는다. 그래도 바닥이 깨끗해지는 걸 보며 '역시 내 청소도구는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구나' 뿌듯해하면서. 밤에 환하게 불을 켜지 않고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저녁을 보내고 있다. 아마 크게 불편하게 느끼지 않는 이유는 평소에도 책을 볼 때 말고는 불을 잘 켜지 않는 습관 때문인 듯하다.
물론 불편한 점도 있다. 바로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다. 보통 저녁에 책을 읽었는데 아침으로 그 시간을 옮겼다. 그런데 일과를 마치고 쉬면서 하는 독서와 바쁜 하루 앞에 가장 먼저 하는 독서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나에게 독서란 여유롭게 즐기는 휴식이었다. 특히 책과 함께하는 밤을 포기하기는 싫었다. 그래서 불을 켜지 않고 책을 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떠오른 게 전자책이다. 종이책을 선호해서 전자책은 손이 잘 가지 않았는데 이참에 다시 한번 시도해 보았다. 역시나 전자책은 잘 읽히지 않아서, 아침과 오전에 잠시 짬을 내어 책을 보고 있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어느덧 이 생활에 익숙해졌다. 꺼져 버린 형광등의 불을 다시는 밝히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전구를 교체하는 일이 귀찮았지만 지금은 꼭 필요한지 의문이 든다. 정말 불편했다면 당장 갈아 끼웠을 테니 말이다.
형광등 없이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니, 불이 들어오지 않는 방을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다. 스위치만 누르면 들어오는 불. 어두우면 무조건 불부터 켜고 봤다. 그게 습관이었고 당연한 일이었다.
자발적으로 불을 켜지 않았다. 캄캄한 방에서 어떻게 지내나 싶었다. 그런데 별 탈이 없었다. '아, 이 환한 불빛도 당연하지 않구나. 사실은 어두운 게 자연스러운 거였지'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창 밖에서 들어오는 도시의 빛이 밝아서, 저녁에도 밤에도 어둠이 짙게 드리우질 않는다. 불을 끄지 않았다면 몰랐을 사실들, 찰나를 참지 못하고 전구를 바꿨다면 몰랐을 소중함이다.
일상의 사소한 불편은 새로운 가능성의 발견이 될 수 있다. 그걸 알고 난 이후로 이런 기회가 반갑기만 하다. 그냥 이 작은 실험이 재밌다. 언제 이런 걸 해보겠나? 막상 없이 지내보면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다는 뜻밖의 수확을 얻기도 한다. 그러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것만으로도 실험의 가치는 충분하다.
없이 살기 10. 형광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