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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Jun 06. 2023

에어컨 없이 살기


나는 지금 굉장히 두근거린다. 이제 막 계절의 문턱이 여름에 당도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토록 여름을 기다리고 있는 이유는 바로 '에어컨 없이 살기'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에어컨 없이 살 수 있을까?



없이 살기 실험의 최전선 '에어컨'.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에어컨에 대한 의존도는 낮은 편이었다. 그런데 2년 전 이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에어컨을 끼고 살게 되었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방은 복층에 있다. 복층은 여름이면 찜통이 된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식을라 치면 어느새 해가 떠올라 다시 열을 달군다. 좀처럼 식을 줄 모르는 찜통 속에서 에어컨 없이 살기란 도무지 불가능해 보였다.


이사를 오면서 가장 먼저 벽걸이 에어컨을 설치했다. 더위와 싸워 이길 자신이 없었다. 몸의 열기가 오르면 두드러기가 생기는 피부 질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위를 참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었다. 선풍기 하나로는 버틸 수 없었고 나는 백기를 들고 말았다. 선풍기의 더운 바람보다 에어컨의 찬 바람으로 실내 온도를 빠르게 낮추는 게 효과적이었다. 더위에 취약해진 나는 생존을 위해 '에어컨 풀가동'이라는 무장을 선택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이런 것인가. 이렇게 쉽게 굴복하다니 씁쓸한 패배감이 몰려왔다.


물론 에어컨 덕분에 쾌적한 여름을 보냈다. 문명의 편리함을 마음껏 누렸다. 내 방에 에어컨이 생긴 것은 난생처음 있는 일이었다. 조금만 더워지려고 하면 버튼 하나로 에어컨을 자유자재로 틀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마음은 불편했다. 비싼 전기 요금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에어컨 가동으로 발생시키는 에너지 소모와 이산화탄소 배출이 신경 쓰였다. 지구 온난화와 기후 위기라는 현실의 문제를 망각하고 있었다. 몸과 머리가 따로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내 의지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 그 사실이 나를 불쾌하게 했다. 상쾌하지 못한 에어컨 바람보다 푹푹 찌는 여름철 날씨보다 불쾌지수를 높인 건 다름 아닌 그 불편한 마음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무슨 선택을 할 것인가. 새로운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정면돌파를 할 것이냐 묘책을 세울 것이냐. 올여름을 앞두고 여름 나기 방법을 궁리하고 있다. 한동안 코로나 바이러스가 극성이어서 더위를 피해 집이 아닌 곳을 찾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금은 비교적 외출이 자유로워졌으니 시원한 공간을 찾아 나서 보려고 한다. 먼저, 한낮에는 시원한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기! 우선 집에서는 에어컨을 틀지 않고 며칠 지내 볼 생각이다. 정 힘들다면 저녁에만 잠깐 에어컨을 사용하는 것으로 타협을 볼 수도 있다.


사실 에어컨 바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에어컨 바람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에어컨 특유의 냄새가 싫었다. 에어컨이 있는 실내에 들어서면 가장 먼 자리에 앉았다. 차를 타면 제일 먼저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입구를 다른 쪽으로 돌리곤 했다. 하지만 환경이 바뀌자 에어컨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편리한 만큼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선풍기만으로 충분히 여름을 날 수 있다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이번 여름은 다르다. 여름을 기다리는 마음가짐부터 달라졌다. 나름의 묘책도 있다. 바로 몸의 열을 내려줄 시원한 음식! 아이스크림, 팥빙수 같은 찬 음식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이처럼 수분감이 많은 채소와 수박, 참외 같은 시원한 여름 과일이다. 식사도 익힌 음식보다는 생채식의 비중을 늘려 몸의 온도를 낮춰 보려고 한다. 이렇게 여름 나기를 준비하고 있다. 각오는 다졌다. 사실 각오만 있다면, 만반의 준비는 끝난 것이 아닌가! 이제 남은 건 맞닥뜨림! 일단 부딪혀 보는 것이다. 누가 아는가? 정말 에어컨도 필요가 없어질지 모를 일이다.





<자발적 없이 살기 1. 물건 편>을 마치며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꼭 필요한 생존력이 아닐까?



우리는 너무 많은 물건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필수가전, 생필품도 상황에 따라 때로는 당연하지 않은 존재가 될 수 있다. 이제 물건의 '필요'는 내가 결정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꼭 필요하다고 해서 거기에 맞춰 살아갈 이유는 없다. 익숙함에서 한 발짝 벗어나,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인지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통해 또 다른 생활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끊임없이 나를 자극한다. 오늘은 또 어떤 새로운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지난 경험을 통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그것만으로 삶은 한결 가벼워졌다. 그래서 이 실험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자발적 없이 살기는 계속된다.





없이 살기 25. 에어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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