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결 Jun 05. 2023

화장품 없이 살기


조금은 파격적인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스스로도 믿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화장품을 하나도 쓰지 않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 얼굴과 몸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는다는 얘기다.


발단은 지난겨울이었다. 수분 크림이 바닥을 보인 순간. 얄궂게 조금씩 바르다가 끝내 한 통을 비웠다. 그리고 세안 후에 토너만 가볍게 발랐다. 토너 하나만 바르는 것도 제법 나쁘지 않았다. 얼굴이 땅기는 듯했으나 눈에 띌 정도로 심한 각질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확실히 건조했지만 '버틸 만한' 수준이었다. 그러다 봄을 맞이했다.


2월부터는 얼굴에 토너조차 바르지 않았다. 그동안 기초 화장품으로 사용했던 건 토너와 수분크림 두 가지였다. 화장을 할 땐 둘 다 사용했고 귀찮을 땐 수분크림 하나만 발랐다. 화장솜에 토너를 묻혀서 얼굴을 닦아낸 터라 매번 피부에 자극이 갔다. 화장을 하면 2차 세안은 기본이었다. 화장 - 강한 클렌징 - 수분 공급 - 다시 화장... 반복되는 이 고리를 과감히 끊기로 했다.


얼굴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기 시작한 시기는 환절기였다. 그 때문인지 적응의 과정이었는지 처음에는 얼굴에 각질이 조금 일어났다. 지금은 눈에 띄는 각질이 없다. 적응기를 거치고 피부 자체의 유수분을 찾았다. 물 세안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비누나 폼 클렌저로 세수를 했다면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얼굴도 물로만 씻으니 별문제가 없었다. 매일 미온수로 세안을 하는 게 전부. 세안 후에 물을 톡톡 두드려서 흡수시키지도 않는다. 곧바로 물기를 닦는다.


몸도 마찬가지로 바디로션도 핸드크림도 쓰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 하루에 한 번 손에만 로션을 바르곤 했는데 이젠 어떤 것도 바르지 않는다. 사용하는 화장품이 아예 없다. 지금은 봄이라서 괜찮은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겨울에는 어떨지 몹시 궁금하다. 얼굴은 크게 걱정이 없는데 몸이 조금 걱정된다. 유분이 배출되는 얼굴에 비해 몸 피부는 상당히 건조한 편이다. 일단 해보는 수밖에 없다. 지금은 이 생활에 만족하고 있지만, 화장품이 필요해진다면 언제든 다시 사용할 수도 있다. 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려고 한다.


기초화장품은 생활필수품이었다. 세안 후 토너로 얼굴을 꼭 닦아야 하고, 수분크림은 꼭 발라야 하고, 건조한 몸에도 바디 로션을 꼭 발라야만 했다. 그런데 얼굴에도 몸에도 아무것도 바르지 않는다니. 내 생애 꿈도 못 꾼, 아니 꿈도 꾸지 않은 일이다. 화장품을 바르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적어도 로션 하나는 발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드시 화장품으로 피부에 수분을 공급해줘야 하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하나둘 비워 보니 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화장품을 쓰지 않는 이 생활이 가볍고 편하기만 하다. 이 가벼움을 왜 이제 알았을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화장품이 필요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습관을 멈추었더니 그 습관 없이도 잘 살아지더라는 것. 익숙함이란 그렇다. 습관에 따르는 것이 그저 편리했을 뿐, 사용하는 물건 자체가 편리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렇게 무심코 하던 습관, 당연한 일상의 일들이 내게 꼭 필요한 일인지를 돌아봄으로써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고 있다. 일상의 재발견이란 이런 것이다.





없이 살기 24. 화장품
이전 13화 핸드크림 없이 살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