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크림이야말로 없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었다. 화장품을 넘어선 생활필수품. 코로나가 터지면서 손의 위생과 함께 보습 관리는 더욱 중요해졌다. 거칠어진 손을 어떻게든 무마해야 했다.
항상 외출할 때면 핸드크림을 꼭 들고 다녔다. 사무실 책상에도 내 방 책상에도 핸드크림이 있었다. 손을 씻자마자 핸드크림을 바르는 게 오랜 습관이었다. 핸드크림 취향은 무향. 향이 강한 화장품을 좋아하지 않는 터. 특히 핸드크림은 무조건 향이 없어야 했다. 사용감은 끈적이지 않고 잘 흡수되는 타입을 선호했다. 비싼 핸드크림을 선물 받아도 향이 너무 강해서 쓰질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주로 쓰던 핸드크림은 저렴하고 부담 없는 순한 제품이었다.
핸드크림에 대한 애착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건 손 피부가 민감한 데다 알레르기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피부 알레르기였다. 수년 전 생긴 이 손 알레르기는 봄에 시작하여 여름에 주로 나타났다. 피부과를 전전했지만 습진이나 홍반성 알레르기로 추측할 뿐 정확한 병명과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 정체불명의 알레르기 때문에 손 피부 관리에 더욱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손을 자주 씻는 편이라 늘 건조했다. 두 손을 맞대고 비비면 마른 소리가 났다. 손톱 주변에 부스럼도 잘 생겼다. 그런 사람이 손 관리를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니, 그것도 자발적으로! 무슨 심경의 변화일까? 어느 날 손을 씻고 건조하지 않아서 한 번 핸드크림을 바르지 않아 보았다. 그저 습관처럼 하던 일을 중단했을 뿐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고 몇 달이 되었다.
손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기 시작한 건 올봄부터. 처음엔 샤워 후 하루에 딱 한 번 로션을 발랐다. 그러다 하루, 이틀 빼먹기 시작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가끔 채소를 손질하며 오랫동안 물에 손을 담그고 있거나, 유독 손을 자주 씻는 날이면 부쩍 건조한 느낌이 들곤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피부가 자체적으로 유수분을 찾아가는 느낌이다. 부스럼도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한겨울이 아니어서 괜찮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 겨울이 기다려진다. 과연 겨울에도 내 손은 무사할 수 있을 것인가. 몹시 궁금하다. ‘그때가 되면 더욱 건강한 손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계절을 나고 있다.
핸드크림에 대한 애착은 아마 예쁜 손에 대한 애착이 아니었을까. 어려서부터 손이 예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잃고 싶지 않은 나의 아름다움 중 하나였다. 지금은 로션도 핸드크림도 아무것도 바르지 않는데도 손이 못나 보이지 않는다. 콩깍지라도 씐 것일까? 아니다. 내 손은 핸드크림을 바르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다.
습관처럼 애지중지 다뤘던 손을 그대로 두었더니 내 손은 원래 가지고 있던 힘을 발휘했다. 그동안 핸드크림으로 내 손이 가지고 있던 힘마저 빼앗고 있던 게 아닐까. 그리고 그걸 이제야 알아버린 게 아닐까. 뒤늦게 발견한 내 몸의 자생력을 한 번 믿어 보기로 했다.
없이 살기 22. 핸드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