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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Dec 25. 2023

고구마 뒤집기로 시작하는 아침

고구마 말랭이


올 겨울 고구마 말랭이를 처음 만들어 봤다. 겨울이 오면 무말랭이나 한번 만들어 보자 싶었는데 갑자기 호기심이 동해서 고구마를 쪄서 말리기 시작했다. 건조기도 없이. 자연 건조로 가능할까 싶었는데 결과는 대성공이다. 평소 가공식품을 안 먹는 내게는 모처럼만의 특급 간식. 지금까지 먹은 고구마만 해도 100kg은 될 텐데, 고구마를 거의 매일 같이 먹으면서도 한 번도 말려 볼 생각은 못 하다니! 그동안 왠지 손해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필요한 건 고구마, 칼, 채반. 넓은 채반만 있으면 실내에서 자연 건조로 고구마 말랭이를 만들 수 있다. 시간이 조금 걸릴 뿐. 건조한 겨울에는 바람이 잘 드는 곳에 두면 그늘에서도 잘 마른다. 하루에 한 번만 뒤집어 주면 끝. 모두 시간에 맡긴다. 햇볕이 드는 곳에서 말리면 건조 시간을 더 단축할 수 있다. 3~4일만 기다리면 완성된다. 3일 후엔 조금 말랑한 정도, 4일이면 좀 더 쫀득한 식감이 된다. 내 입맛에는 4~5일 말린 게 좋았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절반을 동그랗고 굵게 썰었다가 잘 마르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반으로 잘라서 말렸다. 흔한 고구마 말랭이가 길고 가는 모양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한 달 내내 고구마 말랭이를 자체 생산하면서 고구마의 두께와 건조 기간에 대한 감을 잡았다. 자연 건조하려면 되도록 얇게 써는 것이 좋다. 얼른 맛보고 싶다면 더더욱. 두꺼울수록 마르는 데 오래 걸린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 번만 뒤집어 준 게 전부인데 이렇게 맛있어도 되나. 들인 공에 비해서 호화스러운 맛이다. 앞으로 고구마 말랭이를 돈 주고 사 먹을 일은 없겠다. 집에서 만들어 먹으면 쓰레기도 나오지 않고 자연 건조하니 전기도 낭비되지 않는다. 이렇게 쉬운 걸 왜 이제야 만들었을까. 달달한 맛과 쫀득한 식감이 훌륭하다. 늘 고구마를 쪄 먹기만 하다가 이렇게 먹으니 색다르다.


아쉬운 건 다시 맛보려면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 큰 고구마 세 개를 널어 말려도 양이 얼마 되지 않는다. 하나씩 집어 먹다 보면 따로 보관할 것도 없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채반이 많으면 매일 먹을 수 있게 대량 생산하고 싶다. 하지만 참기로 하자. 기다렸다가 먹으면 더 맛있으니까. 슬로 푸드는 이런 맛이 아니겠는가. 나흘은 꼬박 기다려야 되는 맛. 기다릴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맛. 일주일에 한 번 맛보는 별미. 새로운 겨울 간식이 또 하나 생겼다.


먹기 좋게 잘 마른 고구마 말랭이를 걷어서 한차례 먹고 나면 다시 고구마를 냄비에 쪄 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고구마를 한 김 식힌 다음 하나씩 잘라서 채반에 착착 가지런히 올린다. 며칠 후 맛볼 말랭이를 생각하면서. 조금은 느린 수제 공장을 가동하는 재미가 쏠쏠한 겨울이다.








고구마 말랭이


[재료] 고구마

[준비물] 칼, 채반


1. 고구마를 찐다

2. 한 김 식힌 고구마를 잘라서 채반에 올린다

3. 하루에 한 번 뒤집는다

4. 3일 경과 후 맛을 보고 더 건조할지 결정한다


- 바람이 잘 드는 베란다나 창가에 보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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