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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Dec 29. 2023

물로만 머리 감기 한 달

노푸 후기


물로만 머리 감기, 솔직히 가능할지 몰랐다. 노푸를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건 그들의 이야기지 내 이야기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변화가 찾아온 건 올해 샴푸를 비누로 바꾸면서부터다. 노푸를 한 번쯤은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다. 가벼운 호기심이었다.


비누 하나로 씻는 게 얼마나 간편한 일인지 실감하고 나자 더 간소화할 수 있는 방법에 절로 흥미가 생겼다. 머리가 짧고 기름을 먹지 않는 터라 비교적 쉽게 적응할 것 같았다. 만약 육식을 하거나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었다면 선뜻 용기가 안 났을지도 모르겠다. 두피와 모발은 건강한 편이라 특별히 건강 상의 목적은 아니다.


나는 이렇게 했다.


노푸 방법

머리를 감기 전 가볍게 빗질을 한다.

뜨겁지 않은 온수로 감는다.

초반에는 세면대에 물을 받아서 꼼꼼히 감다가 이후로는 샤워기로 대충 감았다.

헤어드라이어로 두피는 찬 바람, 모발은 뜨거운 바람과 찬 바람을 바꿔가며 머리를 말렸다. 마무리는 찬 바람.

머리는 대부분 묶고 지냈다.


일주일이 되었을 무렵 기름기 때문에 이틀만 식초를 탄 물에 감았고, 나머지는 소금물이나 그냥 물로만 감았다. 식초나 소금을 사용하는 거나 물로만 감는 거나 큰 차이는 없었다. 조금 더 산뜻하고 기름기가 빠진 듯하나 대체로 비슷했다.


물로만 감는 게 힘들면 식초나 소금을 사용해 보자. 부드러운 머릿결을 원하면 식초를, 식초 냄새가 부담스럽다면 소금을 추천한다. 세정력은 큰 차이가 없다. 세면대에 물을 2/3 받은 기준으로 식초나 소금을 일반 수저로 한 스푼 정도 넣으면 된다.



노푸 실험 한 달

1주 : 물로만 감았다. 많이 기름지다. 한 번씩 조금 간지러웠다. 두피에 뾰루지가 하나 생겼다.

2주 : 소금물로 감기 시작했다. 가렵지 않았다. 두피 뾰루지는 2~3일 만에 사라졌다.

3주 : 소금물로 감기도 하고 물로만 감기도 했다.

4주 : 하루만 소금물로 감고 나머지는 물로만 감았다. 큰 차이가 없다. 기름기는 여전하다.

5주 : 물로만 감았다. 여전히 기름지다.


공통점 : 냄새와 비듬이 없다. 기름지다(두피가 기름지다기보다 모발이 기름진 상태). 머리를 말리고 나면 손에 유분이나 때가 묻어난다. 머리카락은 왁스나 헤어 에센스를 바른 것처럼 보인다.




한 달이면 충분히 해볼 만큼 해본 것 같다. 속단하기 어렵지만 이 정도면 할만하다는 평이다. 사실 생각보다 머리가 많이 기름져서 지금까지 잘 버틴 내가 스스로 대견한 면도 있다. 노푸를 하기 전 나름대로 적응을 돕기 위해 이틀에 한 번 머리를 감기 시작한 것을 제외하고 평소에는 머리를 매일 감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름진 음식을 먹지 않는 식습관 덕분에 유분이 적게 배출되는 몸이라 큰 무리 없이 적응한 듯하다.


지성 두피는 아니지만 머리는 매일 감는 게 습관이었다. 머리를 안 감으면 찝찝했다. 아니, 찝찝하기도 전에 머리를 감았다는 말이 더 맞다. 항상 청결이 유지되는 상태.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더럽다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놀랍게도 물로만 감는데 머리에서 냄새가 나거나 비듬이 생기지도 않았다(체질, 식습관의 영향인 듯하다). 헤어라인이나 머리카락이 닿는 얼굴, 목 부분에 피부 트러블이 나지도 않았다. 그래서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으면서 한 달 실험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머리를 묶고 지내서 별로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물론 머리를 감았는데 감지 않은 머리처럼 보여서 초반 적응기에는 외모 자신감이 조금 하락할 수도 있다.


일단 한 달, 딱 한 달까지만 해보자는 심산이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앞으로도 노푸를 계속할지는 모르겠다. 특별히 나빠지는 게 없으면 계속할 의향이 있다. 한 달 정도면 기름기가 줄어들어서 완벽히 적응할 거라 예상했는데 아무래도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한 달 더 해보고 경과를 지켜보거나 노푸를 기본으로 하되 간헐적으로 비누로 감을 생각이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선택하려고 한다.


물로만 머리를 감을 수 있다는 것을 직접 확인했다는 게 큰 성과다. 몸소 실험해 보지 않았다면 실제로 가능한 일이라는 걸 몰랐을 테니까. 세제를 쓰지 않은 모발과 두피가 어떤 상태인지도 알 수 없었을 터다. 샴푸나 비누가 없어도 물만 있으면 머리를 감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든든한 뒷배가 생긴 것 마냥 몸이 가볍다. 여행을 갈 때 챙길 짐을 또 하나 덜었다. 자꾸만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 늘어간다. 신기하면서도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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