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결 May 18. 2023

샴푸 없이 살기


비누로 머리를 감은 지 3개월. 샴푸를 비누로 바꾸게 된 계기는 플라스틱 쓰레기 때문이었다. 최근까지 리필을 해서 사용해 왔지만 어쨌든 그것도 쓰레기가 나온다는 사실. 오랫동안 같은 브랜드 제품을 이용하면서 샴푸를 고르는 고민을 할 일이 없어 편했지만, 계속해서 배출되는 쓰레기를 보며 마음 한구석은 불편했다. 마침 샴푸와 폼 클렌저가 비슷한 시기에 떨어진 상황. 그래서 이참에 씻는 일도 더 간소화할 겸 올인원 비누로 바꾸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 확실히 편해졌다. 고작 샴푸를 비누 하나로 바꿨을 뿐인데 더 가벼운 생활을 하고 있다. 샴푸통도 필요 없고, 샴푸가 떨어지면 다시 채우지 않아도 되고, 통에 남아 있는 샴푸까지 쓰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고, 플라스틱 통을 씻어서 재활용으로 배출해야 하는 수고로움까지 모두 덜었다. 게다가 샴푸보다 더 빠르게 헹굴 수 있다. 물도 훨씬 절약된다.


하지만 비누로 머리 감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처음에 썼던 비누는 머리가 심하게 떡져서 매번 식초 헹굼을 해야 했다. (비누 잔여물이 머리카락에 하얗게 묻어난다) 씻는 일을 줄이고 싶어서 비누로 바꾼 건데 식초를 쓰며 단계를 하나 더 추가하게 된 셈이다. 한 달은 부지런히 욕실에 식초를 들고 들어 가다가 그 비누를 다 쓰는 시점으로 관뒀다. 식초를 자주 사용하는 것도 두피와 모발에 좋지 않다고 해서 다른 비누를 써 보기로 했다. 지금 쓰는 비누는 모발에 하얀 비누 때가 끼지 않아서 식초 헹굼을 생략하고 있다.


사실 비누로 머리를 감게 되면, 특히나 긴 머리라면, 머릿결은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한다. 샴푸를 썼을 때처럼 찰랑한 상태를 유지하긴 힘들다. 머릿결도 포기할 수 없다면, 비누가 아닌 샴푸바를 사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샴푸바는 샴푸를 고체화한 것이다. 일반 비누를 사용하는 경우 식초 헹굼을 하면 되는데, 번거롭지만 식초가 확실히 효과가 있다. 식초의 양은 한 대야에 대략 한두 스푼. 식초 물에 머리를 담가 보면 알게 된다. 뻣뻣하던 머리가 순식간에 부드러워지는 것을. 식초 냄새는 머리를 말리면 날아가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비누를 고르는 조건이 까다로운 편이다. 그래서 아직 정착할 만한 비누를 찾지 못했다. 지금 사용하는 비누는 머리가 떡지진 않지만 머리카락이 심하게 엉키는 문제가 있다. 당분간은 비누 유목민으로 살아갈 듯하다. 비누에 대한 이야기는 '폼 클렌저 없이 살기' 편에서 이어진다.


사실 이번에 샴푸를 비누로 바꾸면서 ‘노푸(물로만 머리 감기)’를 해볼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당장 도전하기에는 용기가 필요한 일. 노푸를 시작하기에 좋은 계절인 겨울에 하려고 미루어 두고만 있다. 아니라면 여름이 오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 한 달만 꾹 참으면 금방 적응할 테지만 기름진 머리를 하루라도 참기가 어려울 것 같아 망설이게 된다. 비교적 노푸를 하기 쉬운 조건(식생활)을 갖고 있는데도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여기서 한 단계를 더 비운다면 바로 노푸를 하게 되는 것이다.




샴푸를 비우면서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죄책감도 함께 비웠다. 그렇게 물건과 함께 불필요한 마음도 하나씩 비워 가는 중이다. 그리고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용기를 함께 키워 가고 있다.





없이 살기 9. 샴푸
이전 08화 티슈 없이 살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