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스보다는 주로 헤어 팩이나 트리트먼트를 쓰는 쪽이었다. 샴푸를 하고 트리트먼트를 하고 거기다 린스까지 하는 건 과한 데다가 트리트먼트 하나만 해도 충분했으니까. 린스, 트리트먼트, 헤어 팩 중 한 가지만 썼으니 이번 편에서 함께 얘기해 보겠다.
린스(컨디셔너)는 바로 헹굴 수 있긴 하지만 트리트먼트, 헤어 팩과 마찬가지로 물로 많이 헹궈내야 한다. 린스를 바르면 머리카락이 부드러워졌으나 잘 헹궈지지 않아서 모발에 남은 잔여물이 몹시 찝찝했다. 린스의 기능은 샴푸의 알칼리 성분을 중화시키고 모발을 코팅하여 정전기를 방지하고 머릿결을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다. 상한 머릿결을 관리하려면 모발에 영양을 줄 수 있는 트리트먼트를 써야만 했다.
트리트먼트나 헤어 팩은 모발에 영양이 흡수되려면 머리카락에 도포한 후 최소 5~10분은 있어야 한다. 트리트먼트를 한 지 오래되어서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보통 20분 이상을 방치했다. 욕실에서 마냥 기다릴 수는 없어서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나와 있다가 시간이 되면 다시 들어가서 헹구곤 했다. 번거롭지만 그게 평범한 일상이었다.
머릿결에 그렇게 공을 들였다. 지금 생각하니 참으로 대단하다. 그만한 정성이 없다. 머리를 감을 때마다 매번 그 루틴을 반복했다. 머릿결이 그렇게 소중했다면 왜 매일 고데기를 하며 머리를 못살게 굴었을까 싶지만. 한창 예뻐 보이고 싶은 욕구가 강했을 때의 일이다. 그걸 이제 와서 따져 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데기도 머릿결도 포기를 못했던 때가 있었다.
린스며 트리트먼트며 헤어 팩이며 더 이상 쓰지도 않고 앞으로도 쓸 생각이 없다. 제품의 유해 성분을 우려하거나, 물을 오염시키는 문제를 걱정하거나, 플라스틱 쓰레기를 배출하는 것도 탐탁지 않지만, 가장 먼저 귀찮기 때문이다. 지금은 머릿결을 관리하기 위해 시간을 들이는 모든 과정이 번거롭기만 하다. 오랜 습관도 더 이상 가치가 없다면 불필요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내가 머리카락을 위해 하는 일은 그저 머리를 잘 감고 잘 말리는 것이다. 깨끗이 씻으며 청결만 유지할 뿐, 예전만큼 머리카락에 그만한 애정을 들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애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머릿결 관리를 위해 어떤 제품을 쓸지부터 고민하고 시간과 비용을 소모하는 일에 흥미가 없을 뿐. 그것들이 나의 건강만큼 더는 소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건강한 음식을 먹으며 몸을 돌본다.
최근 샴푸를 비누로 바꾼 것 말고는 다른 변화는 없다. 앞으로 새로운 변화가 생긴다면 그 비누마저 안 쓰게 되는 게 아닐까? 그렇게 하나둘 비워가는 중이다. 비우면 비울수록 부족함을 느끼기보단 충분함을 느낀다. 그리고 보다 가볍기만 하다.
머리를 감는 일이 이렇게 쉬울 줄이야!
없이 살기 13. 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