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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한 Aug 29. 2023

무덤, 죽은자의 신분

무거운 일상, 소소한 역사 한 잔

유적지를 탐방하다 보면 고대의 많은 무덤들을 볼 수 있는데 어떤 무덤은 ‘OO릉(陵)’이라 적혀있고 또 어떤 무덤은 ‘OO묘(墓)’라고 쓰여 있다. 분명 똑같은 무덤인데 왜 불리는 이름이 다 다른 것일까?      


일단 무덤은 크게 능(陵), 원(園), 묘(墓), 총(塚), 분(墳)으로 구별되는데 피장자의 신분에 따라 무덤의 이름이 구별된다. 보통 왕과 왕비의 무덤에는 능(陵)이 붙는다. 예를 들어 세종대왕과 그의 부인인 소헌왕후 심씨의 무덤을 ‘영릉(英陵)’이라 부르며, 정조와 효의선왕후 김씨가 합장된 무덤은 ‘건릉(健陵)’이라 한다.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무덤 '영릉'

반면 원(園)은 왕세자와 왕세자비 그리고 왕의 친척 무덤이다. 독살로 의심되는 죽음으로 안타깝게 왕의 자리에 앉지 못한 소현세자나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의문사한 고종의 손자 이진의 무덤은 각각 ‘소경원(昭慶園)’과 ‘숭인원(崇仁園)’으로 불린다. 한편 묘(墓)는 왕실의 인물은 아니나 그 무덤의 주인이 누군 인지 확인될 경우 붙게 되는 명칭이다. 대표적으로 김유신이나 이순신의 무덤에는 묘(墓)가 붙었다. 


묘와는 다르게 피장자가 누군 인지 불분명한 무덤을 총(塚)또는 분(墳)이라 하였는데, 좀 특징적인 유물이 출토되는 경우에 총으로 불리었다. 예컨대 금관이 맨 처음 나온 무덤을 ‘금관총(金冠塚)’, 천마도가 확인된 무덤을 ‘천마총(天馬冢)’이라 하였다. 또 서봉총(瑞鳳塚)이라는 이름은 스웨덴의 한자표현 서전(瑞典)의 '서' 와 봉황의 '봉' 자를 합친 것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을 방문한 스웨덴의 왕자가 봉황 장식의 금관을 발굴하였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한편 피장자가 누군 인지도 모르고 특징적인 유물 또한 출토되지 않았다면 그냥 분(墳)이라 불리게 된다. 


광해와 사도세자

그런데 조선시대 연산군이나 광해군처럼 원래는 왕이었는데 반정으로 인해 쫓겨난 인물들의 무덤은 어떻게 불릴까? 뒤에 ‘능(陵)’이 붙었을까? 안타깝게도 ‘아니오.’이다. 왕의 신분이 박탈되었기 때문에 단순히 ‘연산군 묘’, ‘광해군 묘’로 불린다. 반면 살아 생전 왕이 되지는 못했지만 죽은 뒤 추촌왕이 된 인물들의 무덤에는 능의 명칭을 부여 했다. 정조의 아버지로 알려진 사도세자는 죽은 뒤 추존 되어 ‘장조(莊祖)’라 칭해졌고 무덤의 이름도 ‘융릉(隆陵)’이라 하였다. 보통 아들 정조의 무덤인 건릉과 합쳐져 ‘융건릉(隆健陵)’이라 불린다. 한편 원래 피장자가 누구인지 몰라 그냥 분으로 불리다가 이후 묻힌 주인공이 누구인지 파악될 경우에는 그 명칭이 분에서 묘로 바뀐다고 하니 기억해 두도록 하자.


살아생전 왕좌에 앉아 보지도 못했지만 능이 붙여지고, 원래는 왕이었으나 쫓겨났기 때문에 묘라 부른다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죽은 뒤에도 마치 주홍글씨처럼 신분을 나누어 무덤의 이름을 달리 했다는 것에 과거의 신분제도가 얼마나 깊고 지독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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