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을 피할 것인가, 대처할 것인가?
인간사에 갈등은 무조건 발생한다. 갈등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갈등보다 커지는 것이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조직의 양적 규모뿐만 아니라 질적 규모가 커지면 기존의 갈등은 더 이상 갈등이 아니다. 이 말은 인간과 조직의 연계 안에서 갈등은 무조건 발생하며 갈등의 속성은 인간 또는 조직의 크기와 비례한다는 의미다. 조직이 크면 갈등도 크게, 조직이 작으면 갈등도 작게. 단, 갈등에 초점 맞추지 말고 인간 또는 조직을 키우는 것에 초점 맞추면 갈등이 사라진다.
다른 시각으로, 사업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면 사업의 속성에 갈등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유기체는 자체적으로 정화능력이 있지만 시간과 문화를 함유한 사업에서 자체적으로 해결되기만을 기다리는 경우는 드물다. 즉, 인간이 주체적으로 갈등에 대처하거나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10개국에서 사업을 펼쳐 본 나로서는 각 나라의 문화나 습관을 배제하면 갈등을 풀어낼 수 없다는 숱한 경험을 했다. 전편에 이어, 갈등과 무모한 도전에 집중하여 각 나라의 독특한 해결 방식을 나열해보려 한다.
오늘은 그리스 사례로, 갈등과 무모한 도전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한다.
2015년 봄, 아테네에서는 매일 정부 정책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사태는 다소 폭력적인 수준으로 과격해졌다. 그 사연은 이러했다. 2009년까지 그리스 정부는 과하다 할 수준의 포퓰리즘 정책을 펴왔다. 연금 금액, 연금 수령 대상 등 복지제도의 과도한 확대, 공무원 수 확대 등의 공공 부문 비대화 등을 추진하였다.
나라의 재정이 고갈되는 가운데, 2009년 10월에 중도 좌파 성향의 범 그리스 사회주의 정권으로 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이전 정부의 재정 적자 은폐가 드러났고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치자 2010년 재정 위기로 국가는 부도 직전에 몰렸다.
2010년 4월 23일에 그리스가 금융 지원을 요청했다. 이후 3차례의 구제 금융지원을 IMF와 EU의 안정화 기금 (ESM)을 통해 받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강도 높은 긴축 정책과 구조조정을 진행했던 것이다.
무분별하게 올랐던 연금은 10차례 이상 삭감되었고 공무원 축소 등 공공부문 규모도 과감히 줄여갔다. 실지로 월 연금수령액은 3,500유로(약 450만 원) 수령자는 44%를 깎이게 되었다. 2009년 90만 명에 달하던 공무원이 2016년 67만 명 수준이 됐다. 2010년 이후 2018년까지 연금 및 기타 복지 급여는 무려 70% 삭감, 공무원 수 및 공공부문 규모는 26% 축소되었다.
이렇게 정부의 주었다 뺏는 정책, 긴축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그리스 국민은 격렬히 반발, 시위를 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국민들의 성향이다. 나라가 망하든 말든, 자신들의 혜택만 많으면 된다는 의식과 자신들이 받던 혜택이 줄어드는 것에는 한 치의 양보도 못한다는 의식이 팽배했던 것이다. 한국의 IMF 시절에 전 국민이 나서서 나라 살리기에 앞장서는 상황, 의식과는 결이 달랐다.
그리고 그 당시 2011년, 그리스 정부가 들고 나왔던 한 가지 중요한 조건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일명, 그리스 헤어컷(Greece Haircut)이다. 시장가격이 매우 낮을 때 장부가격을 하향조정함으로써 채무자의 빚을 머리카락을 자르듯 깎아 주는 것이다. 당시 그리스 정부는 부채 3,500억 유로 중에서 1,000억 유로 탕감을 요청했고 글로벌 민간 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그리스 국채 2,060억 유로를 50% 탕감해 달라고 요청했다. 물론 성사는 되지 않았는데 이때부터 Haircut이라는 경제 용어가 급 부상 하였다.
이러한 그리스의 경제상황, 정부정책, 그리고 국민 의식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동일 문제들이 기업활동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국가 경제 파탄은 민간 기업에도 영향을 미쳐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스 역내에서의 판매 활동과 대금 거래는 기본적으로 신뢰받지 못했고 보호받지도 못했다. (실제로 우리는 거래선에 제품을 판매 한 뒤, 대금 정산은 영국에 있는 은행의 계좌를 통해 진행했다.) 그리고 강력한 개혁 조치로 인한 가처분 소득 감소, 실업자 확대는 구매 지수를 급락시켜 기업의 매출도 급락했다. 자연스럽게 인력 감원과 임금 동결 혹은 축소를 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그리스 직원들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 직원 간, 직원과 회사 간의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이 되었다. 해고를 당하지 않기 위해 동료를 먼저 음해하는 투서들이 잦아졌다. 심지어는 사생활이 폭로되는 투서도 있었다. 투서의 진위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추가적인 사건들이 제보되었다. 물론 근거 없는 내용들이 다수였다. 또한 자신이 해고될 수 있다고 판단한 인력은 회사를 상대로 루머를 퍼트리기 시작했다. 본인들은 살기 위한 발버둥이 었겠지만 모자라고 질이 나쁜 행위들이었다.
거래선들은 정부의 행위를 그대로 따라 하여 제품 대금을 탕감해 달라고 압박을 해왔다. 즉, 제품 대금 Haircut을 요구하고 나섰다. 제품을 판매한 뒤에 대금은 통상 60일 이후에 회수하는 거래 조건이었는데 대금 결제 전에 일정 비율의 탕감을 요구하였고 탕감하지 않으면 대금을 못 갚는다고 뒤로 나자빠진 것이다.
직원들이 유발하는 갈등과 거래선의 무모한 요구는 서둘러 해결을 해야 했다. 질질 끌었다가는 사태를 더 키우거나 악화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갈등을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한다는 결정을 하였다.
이 사태는 회사 인력과 거래선의 옥석을 가리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항상 자기 것만을 먼저 챙기고 절대 양보와 타협이 되지 않았던 이기적인 인력들과 거래 관행이 깔끔하지 않아 대금 결제 지연 등으로 판매 지표를 왜곡시키는 거래선들을 과감히 정리하여 이번 기회에 갈등의 싹을 잘라낸다는 의사결정을 한 것이었다.
물론 이 의사결정에는 리스크도 있었다. 사회가 연일 어수선한데 글로벌 기업이 틈을 타서 직원을 해고한다는 내용이 언론에 투서가 되면, 기업 이미지가 급격히 하락하고 자칫하면 불매 운동도 가능한 분위기였다. 또한 거래선도 거래중단 통보에 대해 정부(경쟁국)와 법원에 경쟁법 위반으로 고소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그랴! 리스크 때문에 조직 분위기를 더 이상 해칠 수가 없었고 거래 관행이 안 좋은 거래선의 요구를 수용하여 대금을 탕감할 수도 없었다.
우선 직원들에 대해선 이렇게 진행했다. 투서자들, 피 투서자들, 평소 부서장들의 업무 평가표를 같이 비교하여 공통부분을 찾았다. 그리고 업무 역량과는 별개로 회사에 대한 불만과 승진 등 무리한 요구가 잦았던 인력들도 발췌하였다. 소위, 에너지 뱀파이어들이라 규정이 가능한 인력들이었다. 순차적으로 해고 통보를 완료한 후에 전체 인력을 모아서 회사의 결정사항을 항목별로 설명을 하였다. 어려운 환경에서 같이 할 사람들이니 당분간 인내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고, 내실을 더 다져, 가까운 미래에 선도 기업으로 위상을 공고히 할 것이고, 여러분이 주역이 될 것이라는 비전도 제시했다. 그리고 어려울 때 모두가 에너지 제너레이터(Energy Generator)가 되자고 했다.
대금 탕감을 요구했던 거래선들에게는 이렇게 진행했다. 공문으로 요구 수용은 불가함을 명확히 했고 언제까지 대금을 결제하지 않으면 거래를 중단하겠다는 통보를 했다.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고 이들이 단체 행동을 할 것에 대비하여 법적 대응 준비도 같이 했다. 아울러 중요한 대형 거래선들과는 이미 대금결제를 역외에서 하고 있었고 이들을 통해 시장 유통 구조를 바꿀 수 있겠다는 판단을 했기에 과감히 밀어 부친 것이다.
결론적으로 해고당한 일부 직원들의 소송들이 있었으나 법원 판단에 의해 회사의 결정에 이슈가 없음으로 정리가 되었고, 기회주의적 거래선들도 우리의 강경한 대응에 요구를 스스로 철회하였고 오히려 고의적 대금 결제 지연 등의 나쁜 습관을 뜯어고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기업활동에는 어려운 시기는 항상 있고 그때마다 새로운 도전이 나타난다. 숨어 있던, 곪아 있던 부위와 감춰져 있던 발톱이 드러나기도 한다. 믿었던 직원들로부터, 신뢰하던 거래선에게서 뒤통수를 맞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길게 보지 못해 눈앞의 이익과 계산에 유혹을 당하고, 당장의 고통을 이겨내지 못해 진통제에 의존하게 되는 직원과 거래선이 생기기도 한다. 이것들이 갈등이 되고 조직의 에너지를 갉아먹는 뱀파이어가 된다. 이들은 끊임없이 악한 기운을 만들어 낸다.
어떤 상황, 어떤 문제든지 반드시 해답은 있다. 나중에 그때의 문제, 이슈를 되돌아보면 그 해답이 무엇이었는지를 안다. 단지 그 문제, 이슈가 발생했을 그때에 무엇이 정답인지 확신이 없을 뿐이다. 갈등을 피해 가려고, 리스크라는 시한폭탄을 터트리지 않으려고, 해답이 무엇일지 판단을 못해, 문제를 뒤로 미루거나 당장의 입막음을 위한 쉬운 선택과 의사결정을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는 순간, 리더십은 무너지고 직원과 거래선에게 휘둘리게 된다.
해답에 가까운 의사결정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중용의 덕, 즉 도덕과 윤리에 기본을 둔 판단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일에 건전한 주인의식과 균형감각을 가지고 도덕과 윤리에 근간하여 과감한 결정을 하자고 다시 강조한다. 그렇게 선순환의 톱니는 크게 회전할 것이고 선순환의 회전은 선한 파워, 선한 에너지를 기하급수적으로 키워갈 것이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후배들에게는 큰 동력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