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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노아 Mar 24. 2024

운칠기삼 (運七 技三) 보다
연구운일 (緣九 運一)!

“안녕하세요?”


일상의 용어이고 누구를 만나든 편하게 할 수 있는 인사이다. 그런데 이 평이한 인사말이 부담스러웠고 듣기 싫었던 적이 있던가? 나는 어느 순간, 갑자기 '안녕하세요?'라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적인 인사가 굉장히 불편한 감정으로 다가온 적이 있다. 35년 조직에 몸담으면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했던 그 시기에, 지금은 물론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지만 당시엔 왜 그리 마음관리에 서툴렀는지... 일상으로 건네는 인사조차 불편할 정도로 말이다. '내겐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구나'라는 신호였다. 


해외 법인의 책임자로 있을 때 본사의 사업부장과 맞지 않아서 약 4년간 고생했던 적이 있었다. 비용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과연 얼마를 줄여야 하는지, 합리적인 방안을 찾는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기업 경영, 판매 활동을 위해 기본적인 투자가 필요한 영역이 있다. 이 부분을 제로로 만들라는 지침에 대해 의견 개진하였으나 그 순간부터 상황 파악 못하는 경영인으로 찍혀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 사건은 전 해외조직에 알려졌고 타 조직 책임자는 요령껏 알아서 대처하는 지혜를 발휘하여 자발적인 비용절감(안)을 제시하였다. 한 사람의 희생이 현안 과제에 대해 큰 방향을 제시한 셈이 되었다.


그때까지 나는 조직 내에서 나름 능력을 인정받고 있던 터라, 탄탄대로를 달리다가 장애물에 부딪힌 격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일 이후, 특히 그해 회사의 여러 미팅에서 사업부장의 챌린지는 지속되었고 나의 멘털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작정하고 덤비는 싸움은 쉽지 않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해 연말이 되자 회사는 나의 퇴임을 거론하는 등 장애물이 아니라 차량전복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이었다. 사업부장 의견을 그냥 무시 못하는 게 조직 섭리이니 인사부는 퇴임에 준하는 액션을 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퇴임시키거나, 좌천시키거나…… 이래나 저래나 치명타를 입게 되는 상황에 처해졌다. 


그런데 어떤 연유인지 모르나 다행히 퇴임도, 좌천도 아닌 승진에서 누락된 것으로 그 해를 넘기게 되었다. 위 사람과의 엇박자가 글로벌로 소문이 났는데,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승진시키고 보직을 유지시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니 회사로서는 최선의 대안을 택한 듯했다.


회사의 결정과는 별개로 나의 쓰디쓴 시간은 이어졌고 나와 관련된 소문은 상당히 불편했다. 결과의 부유물들에 마음 쓰지 않고 시간이 지나가길 바랐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해 줄 뿐이다(주 1) 




4년의 시간이 지나, 큰 역할, 지역의 사업을 지휘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회사로서는 큰 결정이었다. 그간 한 번도 담당하지 않았던 지역의 책임자로 보직 발령이 나서 이동하였다. 참고로 국가 책임자와 지역 책임자는 레벨이 다른 보직이다(주 2). 가십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궁금한 것도 많았다. 내 귀에도 들려왔다.


“승진도 늦었고 어려운 시간을 보냈는데 어떻게 큰 역할을 맡게 되었지?”


“뒤에 누가 돌봐주고 있는 거지?”


이들의 이해타산적인 관심을 쓸데없는 것이라고 치부할 것만은 아니었다. 나도 동일한 의문을 갖고 있었으니... 큰 조직의 수장으로 영전한 것은 지난 4년간의 상황을 고려할 때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었다. 


큰 역할을 맡게 된 직후, 우연히 한국 방문 기회가 생겼다. 나는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존경하는 분들에게 인사를 드린다. 대표이사들을 만나서 인사드리고 차 한잔 나누면서 큰 맥락의 업무 얘기를 두루두루 나누는데 통상 본사 방문 때는 최고 경영진들에게 관할 지역 업무 세부 내용을 보고하게 되어 있다. 보고는 예약된 일정에 주요 참석자가 배석한 가운데 준비한 서류로 진행된다.


그러나, 미팅 전날에 진행되는 캐주얼만 자리는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 미리 공감대를 형성하고 공식석상에서 얘기 못하는 여러 내용들을 미리 조율할 수 있다. 다르게 표현하면, 캐주얼 자리에서 협의되는 게 많은 것이다. 


그때 나의 영전 뒷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역 책임자 보직을 받기 위해선 본사 각 사업부장, 대표이사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유추해 볼 때 나의 보직 이동도 최고 경영진의 합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 사건으로 인한 족쇄는 풀어졌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실지로 경영진들이 적극적으로 도왔고 외부 퇴임 임원들도 좋은 의견을 개진해 주었다고 하였다. 




조직 내에서 맺었던 좋은 사람 관계의 혜택을 본 것이었다. 사실, 조직생활 속에서 상하좌우를 구분하지 않고 정성을 다했고 좋은 인연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아첨과는 결이 다른 관계를 의미한다. 


업무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유관 부서 간 협조를 주저하지 않았고, 

해야 할 일은 적극적인 자세로 해냈고, 

도울 일은 솔선하여 나섰다. 


어떤 일을 맡겨도 업무의 질은 높은 수준으로 만들었고,

부서 간 교류에는 시너지를 먼저 생각했고,

내 조직의 이익보다 전체를 먼저 생각했다.    


일손이 부족해도 후배 교육은 적극 추천했고,

일이 차질 나더라도 후배 해외파견은 과감히 추진했고,   

후배 양성은 내 일처럼 챙겼다. 


나중에라도 해야 할 일이면 오늘 했고,

누군가 해야 할 일이면 내가 했고,

이왕 할 일이면 긍정마인드로 했다. 


오늘에 머물려고 하지 않았고,

과거의 경험에 안주하지 않았고,

새로운 것을 접목함에 주저하지 않았다. 


개인기에 의존하지 않았고,

기계적인 반복은 혐오했고,

조직이 시스템적으로 움직이도록 틀을 갖추었다.


자기 계발에 소홀하지 않았고,

자기 성장에 나태하지 않았고,

자기 평가에 허술하지 않았다. 


이러한 노력들이 사람 간에 신뢰를 쌓고, 신뢰는 관계를 단단히 해준다. 단단해진 관계는 어려움도 극복하게 도와주고, 승진, 영전 등 성장에 도움을 주는 조력자가 된다. 




조직생활에는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다. 때로는 무거운 챌린지도 있고, 견디기 힘든 시련도 있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좌절도 있고, 씁쓸한 좌천도 있다. 그러나 자기가 뿌린 건강한 인간관계 씨앗이 자라면 힘든 도전은 극복하고 성장 열매는 반드시 맺게 된다.   


조직 내에서 네트워크를 키워라. 아첨이 아니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인간관계를 키워라. 위사람만 쳐다보는 해바라기도, 후배들만 챙기는 좋은 선배도 결코 좋은 것은 아니다. 상하좌우를 망라하는 균형 잡힌 인관 관계가 필요하다. 


많이 회자되는 운칠기삼(七技三)이라는 용어가 있다. 조직에서 성공은 행운이 칠 할, 기술이 삼 할 기여한다는 뜻이다. 나는 이 의미보다 연구기일(緣九技一)이 맞다고 생각한다. 좋은 인연이 행운을 만들고 궁극에는 성공으로 이끈다.


조직에서 좋은  인연(network)을 만듦에 소홀히 하지 말라.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이외수는 세상에 우연이란 없으며 기회는 인연의 다른 말이라 했다. 머리 좋은 사람이 되지 말고 마음 좋은 사람이 돼라(주 3) 고도했다. 좋은 인연의 시작은 요령과 아첨이 아닌, 신뢰를 위한 경청, 소통으로부터 시작된다.      



(주 1) 우상의 황혼, 프리드리히 니체, 아카넷, 2015

(주 2) 회사 용어로 국가 책임자는 법인장, 지역 책임자는 지역장이라 하며 지역장 밑에는 여러 법인장들이 있다

(주 3) 먼지에서 우주까지, 이외수, 김영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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