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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이 Feb 16. 2024

Epilogue for Prologue

안녕, 2023.


아마도 이건 반성이고 감사이자 다짐이 될 것 같아요.


유독 일이 많은 한 해였습니다.

제게도, 또 여럿에게도 말이에요.

유독 당연하지 않은 일들로 가득찼던 한 해였습니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필요조건을 빼고서도

삶을 영위하는 것에는 생각보다 많은 충분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던 것 같아요.

어땠나요? 올해는 충분했나요?

안부를 부쩍 묻지 못했던 한 해였던지라, 이렇게라도 묻습니다.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공간들이 사라졌어요. 미래를 약속하기가 두려운 날들로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이유도 많았습니다. 때로는 원망이었고, 역병이었고, 돈이었고, 사회였고, 욕망이기도 했습니다.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상황을 바라보며, 때로는 운명론적인 마음으로 나와 세상의 억울한 면모를 조물의 탓으로 돌려보기도 했습니다.

삼신할매, 잘 살라고 태어나게 한 것이 아닌가요

훗날 우리 다시 만날 때 어쩌려고 이러시는 걸까요- 하면서요.

결국 의미 없는 외침이라 느꼈습니다.

죽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잊혀지지 않은 채 남겨진 사람들이 해야하는 일은 원망도 좌절도 아닐 거예요. 뭐 그렇다고 안도의 감정을 느끼자는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그저 허망한 죽음과 소실이 다시는 없기를 바라고, 주변을 살피는 일들에 힘을 쓰는 것이 할 일임을 아는 것, 그렇게 살고자 합니다. 올해는.

그래서 전하고픈 말이 있어요. 

올해도 살아내느라 수고했어요.

남아 주어서 고맙습니다. 떠나주지 않아 고마워요.


제가 감히 무어라 첨언할 수 없겠지만요

올해는, 감당하기 힘들다고 외치는 말들이 유독 많았던 것 같아요.

모두를 살뜰히 챙기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합니다.

저를 살피느라 주변에 소홀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묵묵히 떠나지 않아 주어 고마워요.


관계에는 영원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한 희망을 걸게 되고, 그리워하고, 떠나지 않도록 빌게 됩니다.

저는 이걸 사랑이라고 이름짓기로 했어요.

그리움도 사랑이 될 수 있다면

저는 모두를 사랑하고 있을 겁니다.


점점 확신이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름의 저는 

주저했고

조용했고

낯설었습니다.

반응을 살피느라 웃지 못하던 날들도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보기엔 달라졌고, 

그래서 상대를 마음껏 응원하지 못하는

조금은 모난 마음으로 지냈던 것 같습니다.


올해는 사람을 만나기가 두려웠습니다.

실수하고 싶지 않아서요


사랑이 부담이 되는 일이 제게는 가장 두렵습니다.

우리의 소통 방식은 각자가 너무나도 달라서

해가 갈 수록 저는 무척이나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결국에는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끼리 남게 되는 거라고

사랑하는 누군가가 말해주더군요.

미움과 소원해지는 감정을 

비틀어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결국에는 그게 성장이겠죠.


조각의 순간을 모아두고 

손가락 사이에 스미는 빛으로

가끔 꺼내 보고 쓰다듬으며 

소소하고 예쁜 기억으로 살아가 보아요.


매번 편지글에 적는 간간히 보자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조차도 부담이 되리라 느끼는 요즘이라서요.

그저 가끔 생각이 날 때 안부는 물었으면 해요.

정신 없는 글에 시간 두어 주어 고마웠고, 내년에도 잘 부탁해요.


우리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지내요!


늘 그리울 모두에게,

코끝에 붉은 빛의 추위가 묻어나는 반짝이는 2023년의 겨울에,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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