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이 Apr 23. 2023

____에게

미지의 사랑하는 이에게,

안녕 나야


왜 있지, 우리가 바라보는 어떤 것들은 너무나도 뭉뚱그려지고 또 그만큼이나 소중해서 언젠가 툭하고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을 느껴, 벅찬 행복이라는 게 있다면 그런 걸까

매일의 생각과 감정과 가치들은 어딘가에 커다랗게 쌓여 동그랗고 터질 것 같은, 그러니까 불안정하지만 때때로 활기찬 무언가를 마음에 남긴다?

이 묘하고 수상한 느낌을 나는 좋아해


그래서 요즘이 즐거워

조금의 우울은 글의 영감이 되는데 요새는 즐거워서 타자를 두드릴 일이 그다지도 없더라

있지, 나 이제 내 방 창문을 잔뜩 힘을 주고 열었을 때 보이는 눈부신 사선의 햇살이 좋아

창문에 보이는 까치와, 빨간 지붕들, 그리고 그 사이를 꽃망울이 채워가는 것을 보는 게 기뻐

종일 흐린 날씨는 밉지만, 그만큼 파란 하늘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으니 되었지 뭐

언젠가 한국에 돌아가서 3월의 지금을 떠올릴 때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질 수 있을 만큼 행복해 

돌아가기 싫어질까봐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사람들과 만남이 가득했던 몇주를 보내고 이제는 별 것 아닌 듯이 느껴지던 잠시의 우울을 벗어 던졌어

감사한 날들이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로 이야기를 꺼냈지만, 나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서 이다지도 둥글게 커져버린 행복 뒤에 가려진 무언가가 있지는 않을지를 생각하느라 잠을 설치곤 했고, 그래서 무서웠어

하지만 걱정은 걱정이고, 지금 내게 느껴지는 이 즐거움의 감정은 여느 때의 무엇들보다 확실하고 강력해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야

주변에 아무도 없어질 어떤 날들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것에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은 있지만, 일단 지금의 즐거운 감정은 무엇보다 확실하고, 또 단호해

관계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껴 무서울 정도로

매년, 시간이 흐를 수록 나는 사람 없이 살 수 없구나를 느끼고 그런 내가 좋다가도 무서워지는 때가 와

여기서 만난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고작 다섯달짜리의 의무적인 관계가 되고싶지 않더라


그래서일까

요즈음 며칠은 나는 어떤 사람일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고민하는 날들이었어

감사하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좋은 사람이 되고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어

아무래도 나만 일방향적 행복을 받는 건 좀 이기적이잖아


그리고 나는덴마크로 달아났어

쌓여있는 과제를 처리하느라 피곤했지만 마음은 가벼웠어

어느새 3월의 반이 지났구나, 행복하지만 아쉽구나, 사흘동안 어떤 일이 펼쳐질까, 하고 생각하면서 여정을 보냈어

누군가 덴마크는 어땠냐고 묻는다면

난 지금의 프라하가 너무 좋기 때문에, 그리고 수상해져버린 여행 동안의 날씨 때문에 “사실은 그다지 멋진 곳은 아니더라구요“라고 답하겠지

하지만 여행이 어땠냐고 묻는다면

일초의 고민 없이 아름다웠다고 이야기할 거야

그래 나는 아름다운 것들을 가슴에 안고 돌아왔어


커다란 감동을 받으면 가슴에 파장이 느껴지는 거 아니?

덴마크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가 내게 그런 전류와 같은 무언갈 느끼게 했어

그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눌 때의 나는 행복했고, 눈맞춤을 주고 받을 때 무척이나 기뻤고, 어떨 때 찾아오는 웃음의 지점들에 까르륵 웃고 있는 나와 상대 사이에 흐르는 긍정적인, 전파같은 찌르르함이 행복하고 소중했어

사흘의 시간은 동그랗고 벅찬 긍정적 감정을 잔뜩 남겼어


어떤 사람이 나한테 너는 사람을 너무 좋아한다고 얘기했는데, 사실 난 사람을 좋아하는 내 성격이 좋았지만, 요새는 그게 좀 걱정되기도 하더라

누군가와 대화하고, 상대와의 만남을 설레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한 기대와 같은 어떤 감정을 느끼는 거

그게 내 행복이고 즐거움이고 동기야

그래서 그게 사라지는 어느 순간이, 아마도 순간의 찰나로 다가올 그 일이 벌써부터 두려워

근데 일단 지금은 즐길래


한 순간순간들이 소중해졌다고 했잖아

그건 아마 촛불같은 게 아닐까

불멍하는 것마냥 촛불을 가만히 들여다 보는게 그저 좋고 아름다워보이는 건 주위가 어둡기 때문이잖아

어떤 음악 평론가는 드뷔시의 꿈결같은 음악은 당대의 지옥같던 상황때문이라고 했대

찰나의 행복이 무척이나 소중해지는 이유는 그런 것과 비슷할 것 같아

난 몇주간 조금 벅찼고, 너희가 보고싶어서 괴로웠고, 어두운 날씨도 그 무엇도 다 버티고 싶지 않게 느껴졌어

그 때의 시기와 그 순간을 버티려 주저하던 내 모습은 밉지만, 오히려 지금 이 즐거움의 순간들은 온전하게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한 것 같아서 그 시간들이 아주 약간 다행으로 느껴지더라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닐 거라는 말은 내가 너무 싫어하는 말이니까 그런 얘기는 절대 빼고, (왜 현재의 순간이 힘들다는데 미래를 생각하라는 걸까)

어느새 눈을 뜨고 이불을 정리하는 게 괴롭지 않고,

가만히 불을 끄면 찾아오는 적막에 익숙해지고,

널 감싸는 햇살을 즐길 수 있게 되고,

사람들의 안부 인사를 별 뜻 없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우울을 모티브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하게 행복해지는

그런 순간이 와서 지금 네 마음의 적막은 순간의 영롱을 위한 거라는 생각을 하는 날들이 오면 좋겠어


그리고 그 순간순간 사이에 내가 있기를 바래


괜찮은 날들을 보내보자

때때로 연락하자

건강하자


봄, 나로부터

작가의 이전글 나의 어떤 누군가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