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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이 Apr 23. 2023

Rainer Maria Rilke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1.

예술 작품은 한없이 고독하며 비평만큼 예술작품과 동떨어진 것도 없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예술 작품을 붙잡고 이해하고 정확히 마주할 수 있습니다.


2.

다른 모든 발전이 그렇듯 이런 성장은 내면 깊은 곳에서 나와야 합니다. 모든 것은 달이 찰 때까지 품고 있다가 낳아야 합니다. 모든 인상과 감정의 싹이 그 안에서, 어둠 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공간에서, 무의식 속에서, 이성이 닿지 않는 곳에서 완전해지도록 두십시오.

...

이것만이 예술가로 사는 방법입니다. 이해할 때나 창작할 때나 마찬가지입니다.


3.

하지만 당신이 언제까지고 답을 얻지 못한 상태에 머물지는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

당신이 작고 하찮은 것들을 사랑하며 주인의 신뢰를 얻으려는 하인처럼 가엾은 것들 쪽으로 다가간다면, 모든 일이 더 쉬워지고 당신과 하나가 되고 당신과 어우러질 테지요.


4.

사람들은 모든 일을 쉽게 해결하려고 합니다. 쉬운 해결법 중에서도 가장 쉬운 방법만 찾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려운 쪽으로 향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어려운 쪽을 향하고 자연의 모든 것은 자라면서 나름의 방식대로 자신을 지킵니다. 우리는 식견이 좁지만 어려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이 확실함이 우리 곁을 지켜주는 것입니다.

...

그래서 고독은 좋은 것이지요. 고독은 어려우니까요.



모두가 칵테일 러브 좀비 읽을 때 옆에 있던 릴케 시집 사서 프라하까지 가져온 나..

포스트잇 덕지덕지 붙여둔 부분에서 가져왔다.

아직 반만 읽었다. 왜냐면 하영언니랑 할슈타트 가는 기차에서 읽어야 하기 때문에


프라하에서 태어나(카렐대 다녔다고 한다 케케) 독일에서 일생을 보내고 스위스에서 말년을 맞이한, 윤동주의 모토였고 로댕과 야콥슨을 동경하던 릴케의 편지집이다.

말은 편지집인데 예술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날리신다.


읽을수록 원문의 어투가 궁금해진다.. 이해하고 싶어서 독일어를 배우고 싶을 정도로

이건 번역하신 분의 노고도 대단한 거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번역하신 분이라던데 서간체 형식에 소질이 있으신 걸까나


<말테의 수기> 읽으려고 밀리의 서재 다시 구독했다..

시집은 아날로그처럼 넘기면서 봐야 맛인데.. 체코에 있는 게 한이다


나는 예술을 보면 왜 그랬을까, 뭘 의미할까, 저 화풍과 가사와 멜로디는 무엇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걸까 ..? 하고 미술사적 요소들을 떠올리고는 한다. 거시적으로 작품을 보고 그 안의 시대적 맥락을 보려 하는 편이다


릴케는 이 점을 매우! 지적한다 


그래서 좀 찔렸다


예술은 사랑에 관한 심오한 것이라서 왜?를 묻는 논리적인 어떠한 것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예술 비평은 우스운 거라고.. 말한다. 예술은 그냥 예술 그 자체인 것이고 창작에서 탄생한 것의 아름다움과 추함 여부, 그 이유에 대해 3자가 평가하는 건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생각해본 적 없던 부분인데 또 맞는 말 같다. (비평가들 눈감아) 비평은 이성의 영역인데 예술은 현실과 이성의 영역은 아니잖아


어려워 형태 없는 것들을 사랑하기란 힘들어


갑자기 릴케 얘기에서 벗어나 보자면


프린지의 좋아하는 누군가와 프라하에서 만나서 (우리 둘 아직 서로의 나이를 모른다.. ) 미래 얘기를 좀 했다.

나는 전시기관에서 일하고 싶다는 것도(그라운드시소 나를 데려가라), 그래서 사실 공연과 축제에는 문외한인 것도 들통났다. 그날 집에 와서 생각을 좀 했다. 무형의 무언가를.. 물론 전시는 유형의 것이지만 하여튼 무형의 추상적인 것들에 대해 사유하고 고민하고 그것들을 사라지지 않도록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상미 교수님처럼 intangible한 것들의 지속 가능을 위해 사투하는 사람들은 늘 존재하지만, 무형의 무언가는 상상과 기억에만 존재하니까 그게 영원할 수는 없다. 내가 말하는 영원함은 기록에 남아 있는 거 말고 의미나 의도나 감정같은 것들의 영원성.. 큐레이터와 기획자의 능력도 여기서 오는 것 같다. 추상적인 것들을 유형적으로 어떻게 변형시켜서 기억 속에 최대한 오래 각인시킬지를 고민하는 것 *개인적 견해입니다


아마 그래서 축제와 전시가 갈수록 힘들어지는 거겠지 무형의 예술을 보여지는 것들로 나타내야 하니까.. 그리고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무형적 요소에 큰 관심이 없다. 

해가 갈수록 사람들은 가시적인 것들을 쫓는다. 보고 싶어하고, 보여지기 위해 노력하는 건 가시성 추구의 산물이 아닐까


아 더 뭘 쓰려했는데 생각하니까 머리 아프다

너무 어렵다 !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건 너무 어려워 ! 


내일은 밀리의 서재 틀고 가만히 앉아서 요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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