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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소이 Aug 30. 2023

버리러 간 숲

수구(水球)가 아니라 지구(地球)라 부르는 이유

버리러 간 숲


모든 것을 버리러 숲에 왔다

엄지에 굳게 새겨진 지문도

사랑하던 이가 불러준 이름도

허물 벗은 몸과 시커멓게 그을린 마음도

밑창 닳아버린 신발도 마지막으로

버리러 숲에 왔다


누구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닌데 자꾸만 만난다

하늘도 나무도 산새도 바위도 자꾸만 마주친다

숲이 다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숲은 무엇이 부족한지

소쩍소쩍 뻐꾹뻐꾹 밤마다 울어댄다

잠들어 죽지 않기 위해 날마다 우는 숲

고라니도 멧돼지도 펄펄 뛰어오른다

호흡을 멈추지 않기 위해 날마다 뛰는 숲


지구본(地球本)을 보아라 우리가 사는 이곳

육지보다 수면이 훨씬 많은데도

수구(水球)가 아니라 지구(地球)라 불린다

숲이 다 가졌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바람 소리 들어보아라

바다는 바람을 흘려보내고 숲은 바람을 가둔다

높낮이를 허물어 건반처럼 나무를 연주하는 곳

바다 위를 나는 새들도 숲으로 돌아와 잠을 잔다

세상 밖에 유랑하는 생명을 아낌없이 품어주는 곳


숲에는 죽음도 부패도 멈춤도 없다

뿌리내린 식물은 다음 해에도 이듬해에도 성장한다

일시적 소멸 뒤엔 영원한 탄생만 있을 뿐

고요히 눈 감고 있으니 숲이 말을 건넨다

고향처럼 품어줄 테니 돌아가라고


사는 길 고달프고 외롭거든

숲을 보아라

분명 모든 걸 버리러 왔는데

두 손 가득 쥐고 떠난다


숲이 다 가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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