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책의 음악노트 (2) 잃어버린 청춘에 관하여

클리포드 브라운

by 푸른책


나는 트럼펫 소리를 들을 때마다 한 가지를 고민한다.


‘이 소리는 단순한 연주인가, 아니면 한 사람의 인생이 묻어난 음악인가?’


클래식과 재즈를 넘나드는 수많은 트럼펫 연주자들 중에서, 유독 내 마음을 움직이는 연주자가 있다. 바로 클리포드 브라운(Clifford Brown).


그는 겨우 25년을 살았고, 4~5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음악을 남겼다. 하지만 그 몇 년의 흔적만으로도 그는 트럼펫이 단순한 금속관 악기가 아니라, 삶을 노래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의 연주는 언제나 따뜻했고, 서정적이었으며, 무엇보다 한 인간의 정서가 깊이 배어 있었다.

나는 가끔 모리스 앙드레나 윈튼 마살리스의 연주를 들을 때 ‘아름답다’고는 생각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허전할 때가 있다. 그들의 연주는 너무 완벽하고, 너무 정교하다. 하지만 정작 인간적인 결핍과 여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건축학적으로 완벽한 대리석 조각을 감상하는 느낌이랄까.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정작 거기에 살아 숨 쉬는 온기가 없다.


반면 클리포드 브라운의 트럼펫은 그와는 달랐다. 그의 음색에는 조심스러운 시작, 뜨겁게 타오르는 중간, 그리고 아련한 끝맺음이 있었다. 단순히 빠르게 음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한 음 한 음에 감정을 불어넣었다. 그는 그저 트럼펫을 연주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짧고도 강렬한 삶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클리포드 브라운의 "Joy Spring"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의 연주가 왜 특별한지 깨달았다. 그는 절대로 무작정 음을 나열하지 않았다. 화려한 기교를 뽐내기 위해 불필요한 음을 쏟아내지도 않았다. 그는 재즈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공간’과 ‘여운’을 알고 있었다. 마일스 데이비스처럼 극단적인 절제는 아니었지만, 그 역시 침묵을 음악으로 만드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의 트럼펫 소리는 마치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단단하지만 거칠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과하지 않았다. 나는 그 음색 속에서 그가 잃어버린 청춘을 들었다.


1956년, 그는 비 오는 밤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불과 25살이었다. 너무나 짧은 생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음악을 통해 여전히 그의 젊음을 듣고 있다.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만약 클리포드 브라운이 조금만 더 오래 살았더라면, 우리는 어떤 음악을 들을 수 있었을까? 그의 연주는 더 깊어지고, 더 성숙해졌을까? 아니면, 오히려 우리가 사랑했던 그 특유의 맑고 따뜻한 젊음의 소리가 사라졌을까?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 그는 너무 빨리 떠났고, 그의 음악은 한창 피어오르던 순간에서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의 음악은 영원히 ‘잃어버린 청춘’의 소리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클리포드 브라운의 트럼펫 소리를 들으며 생각한다. 그의 삶은 짧았지만, 그가 남긴 음악은 길고도 깊다. 그리고 그 여운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 끝없이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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