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릿이 없는데 열정이 있었겠는가.
대학교만 가면 실컷 놀 수 있다 믿었다.
시험도 그냥 치면 되다 생각했다.
대학교 1학년 1학기 아무런 준비 없이 시험을 쳤다.
시험 학점은 처참했다.
대학생도 공부를 해야 하는구나를 깨달았다.
하지만 학점 복구를 위한 시험기간을 제외하면 참 한가한 대학 생활이었다.
시내 돌아다니기, 맛있는 거 먹기, 웃긴 예능 보기
영화 보기, 음악 듣기, 그땐 책도 읽지 않았다.
4학년 취업준비가 코 앞에 다가와서야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영어 공부에 취업 스터디에
밀리듯 취업준비카페에 올라온 취업 준비생의 매뉴얼을 따라 했다.
취준생들은 모두 열심이었다.
한 취업 스터디에서 야무지게 생긴 여학생을 만났다.
당시 스펙이라 불리던 모든 게 갖춰진 그녀는
얼굴에 이미 '나 똑 부러져요'라고 적혀있었다.
어디든 붙기만 하면 갈 거야 라는 나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녀에게 나는 스터디를 같이해도 얻을 것 하나 없는 멤버였겠지.
그날은 각자 쓴 자소서와 면접 자기소개서를 공유하고 첨삭하기로 했다.
바로 내가 처음 열정이란 단어를 인지하게 된 날.
그 친구 차례였다.
"열정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ㅇㅇㅇ입니다."
유치하지만 반짝반짝 부분에서 손모양까지 해가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연습하는 걸 보자 주눅이 들었다.
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단어.
갓 취업한 신입에게서 느껴지는 풋풋함,
기대감을 최고조에 이르게 하는 열정이란 단어.
글로 적고 보면 저 문구에 그렇게까지 충격을 받을 게 있나 싶지만
그녀의 당당한 태도와 목소리가 순식간에 나를 패배자로 만들었다.
저런 여자와 함께 면접 본다면 무조건 떨어질 거야.
그 스터디는 오래가지 않았지만
15년이 더 지난 지금도 열정이란 단어를 들으면
취업준비 중이던 그때가 떠오른다.
40이 넘어서 여전히 열정이 있는 일을 찾지 못해 스스로가 한심하지만
열정을 느끼는 일을 찾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란 것도 아는 나이다.
하지만 작아지지 말자.
스스로를 계속 들여다보면 열정이 생기는 일도 찾아지지 않을까.
그저 오늘 할 수 있는 걸 하자.
지금은 글쓰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