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시간 Oct 26. 2024

임윤찬과 AI가 대결한다면?











매일 아침 뉴스 피드를 열면 하룻밤 새 개발된 새로운 AI의 기능에 대한 정보가 물밀듯이 쏟아집니다. 화면을 스크롤할 때마다 느껴지는 현기증은 변혁의 시대에 몸을 담그고 있는 우리의 본능적인 불안일 것입니다.


해리포터가 "Accio!"하고 주문을 외우면 원하는 것이 소환되듯, AI에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뿅! 하고 결과물이 나타납니다. 뭐든 새로운 것을 접하면 그렇듯이 놀라움의 탄성이 터져 나옵니다. 그러나 신기한 것도 잠시, 내가 설 자리가 점차 좁아지는 기분이 듭니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AI와 AI를 활용하는 인간에 밀려, 아날로그하고 느려터진 생산성을 가진 쓸모없는 3등 시민으로 전락할 것 같은 공포감마저 듭니다.


얼마 전 피아니스트 임윤찬 님의 좋은 소식이 있었습니다.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계적 클래식 음반 시상식인 ‘그라모폰 클래식 뮤직 어워즈’에서 2관왕에 올랐죠.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소식도 그렇고 문화예술계에 살아있는 전설들과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게 믿을 수 없이 감사한 요즘입니다.


임윤찬 님의 연주와 한강 작가님의 소설을 보면서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이 떠올랐습니다.

이 수필에서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노인이 방망이를 만드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장인정신'이었습니다.

노인은 그만하면 된 것 같다고 재촉하는 화자를 아랑곳하지 않고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라고 되려 성을 내며 시간을 들여 방망이를 깎아 완성합니다. 노인이 만든 방망이에는 그날의 날씨, 나무의 상태, 장인의 연륜이 녹아들고, 이러한 '불완전한 완전함'은 그 방망이를 더 특별하게 만듭니다.

AI는 수천 개의 방망이 이미지를 분석하고, 최적의 곡선과 비율을 계산해 '기술적으로 완벽한' 방망이를 설계할 수 있겠지요. 헌데 그 밖의 자연스러운 변수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할까요? 영화 매트릭스에서 오류를 인식하고 '네오'를 보내 제거하려 하듯이 무자비하게 삭제하려들지는 않을까요?


장인의 작업은 단순히 결과물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가 의미 있는 예술입니다. AI가 기술적으로 뛰어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라도, 인간이 오랜 시간 쌓아온 감각과 정서,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철학은 인간만이 만들 수 있는 고유한 가치일 것입니다.

AI가 효율성과 생산성을 담당하는 동안, 인간은 오히려 더욱 인간다워질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유한성에서 오는 선택과 각자의 고유한 경험에서 비롯되는 개성은 AI가 복제하기 어려운 인간만의 특질이니까요.


낙관적으로 보면 AI는 우리의 새로운 도구가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묻는 거울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지금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이전 14화 나는 어느 시간에 살고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