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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MMA MAGAZINE Nov 12. 2024

[Editor’s Pick] 무해한 세상을 꿈꾸는 어른

떠오르는 무해력의 가치


다들 ‘긁?’ 이라는 표현, 한 번쯤 들어보셨나요? 좋게 해석하면 상처받았냐는 뜻이지만, 보통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던진 후 “긁?”이라며 상대를 비웃는 의미로 쓰이곤 합니다. 유행처럼 번지긴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런 신조어에 담긴 의미가 우리 사회를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사회적 관계를 맺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만큼, 관계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아픔과 상처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이제는 자신에게 상처 주지 않는 존재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무해력’이 주목받는 이유가 있는데요.  


사회 속에서 무해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은 이제 강력한 매력과 가치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과도한 자기주장이나 부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신, 누구에게도 부담이 되지 않는 순수한 에너지를 전파하는 것이 더 중요한 덕목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죠. 무해력은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과 평온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새로운 지향점이자, 각박한 환경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무해력은 현대 사회에 어떻게 스며들고 있을까요?


Ⓒ freepik

2021년에 출시된 ‘피크민 블룸’이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피크민 블룸은 모바일 위치 기반 증강현실 게임으로, ‘걷기를 즐겁게 하자’는 게임의 주제에 맞게 플레이어는 단순히 걷기만 하면 되는데요. 이 게임에는 묘하게 하찮은 느낌을 주면서 머리에 꽃을 달고 있는 피크민들이 존재합니다. 플레이어는 피크민과 함께 꽃을 심고, 공간 꾸미며, 버섯 파괴하는 등 여러 수집형 콘텐츠를 즐길 수 있습니다. 


ⓒNintendo

이 게임의 핵심은 경쟁이나 성과가 아니라, 걷기를 통해 소소한 즐거움을 발견하고 주변에 꽃을 심어가는 평화로운 경험에 있습니다. 피크민은 플레이어에게 상처 주거나 스트레스를 유발하지 않는, 순수하고 귀여운 존재로 등장합니다. 이들은 걸음걸이에 맞춰 졸졸 따라다니며 묵묵히 작은 임무를 수행하고, 때로는 깜짝선물을 안겨 주기도 하죠. 이러한 피크민의 모습은 현대인들이 바라는 무해력의 가치, 즉 부담 없이 위안을 주는 힘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teeniepingTV

 무해력이 인기를 얻게 된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티니핑’, '루피'와 같이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가 아이들보다 2030대의 성인들에게 더 환영받기도 했죠. 이처럼 동심을 좇는 2030세대를 키덜트(Kidult)라고 하는데요. 키드(kid)와 어덜트(adult)를 섞은 합성어로 이른바 '어른이'들인 것이죠. '키덜트 현상'은 냉혹한 현실에 지친 어른들이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심리적 안정을 찾는 방법입니다. 이러한 키덜트의 확산으로 귀엽고 무해한 캐릭터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관련 콘텐츠, 굿즈, 협업 상품 등이 더욱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때로는 캐릭터들이 키덜트만의 입맛에 맞게 변형되어 소비되기도 하는데요. 티니핑은 이름 맞추기 콘텐츠가 유행할 정도로 수많은 캐릭터가 존재하는데, 어른들은 새로운 밈처럼 ‘거지핑’이나 ‘파산핑’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자신의 처지를 유머러스하게 한탄하기도 합니다. 뽀로로에 등장하는 루피는 어른들의 현실에 맞게 변신하여 사회생활에 지친 모습이나 상사의 눈치를 보는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무해한 동심을 찾으려 하면서도 그 안에서 자신의 현실을 대입해 위로를 받는 키덜트들의 모습이 담겨 있는 셈이죠.


ⓒ인스타그램(@zanmang_loopy)

이처럼 키덜트 현상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인천대 소비자학과 이영애 교수는 "사회에 막 진출한 2030세대는 사회가 주는 불확실성과 스트레스 속에서 캐릭터가 주는 평온함을 통해 심리적 치유를 얻고 있다. 또한 SNS를 통해 이러한 콘텐츠를 체험하고, 소비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시너지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합니다. 이어서 "이러한 문화가 지속된다면 키덜트 시장은 더욱 확대될 것이며, 이들의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콘텐츠도 더욱 다양해질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불안과 경쟁, 그리고 관계 속에서의 상처는 현대인들이 무해한 존재들을 찾게 했습니다. 과거에 단순히 어린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캐릭터들이 이제는 어른들에게도 힐링과 스트레스 해소의 수단으로 자리 잡은 것이죠. 결국, 무해한 존재들이 전하는 순수한 에너지는 현대인들이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한 조각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무해력의 가치가 더 널리 퍼져, 삶 속의 작은 행복과 평온을 나눌 수 있는 문화가 계속 확산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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