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의 텍스트힙 문화가 불편한 사람들에게
지난 10월 10일, 한국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을 울컥하게 만든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로부터 3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첫 노벨문학상 수상을 예찬하고, 이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죠.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 작가의 문학에 대하여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 인간 삶의 연약함을 강렬한 시적 산문으로 표현한 점”을 선정 이유로 밝히며 “신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고리를 독특하게 인식하며, 실험적이고도 시적인 스타일의 현대산문을 혁신하는 작가”라고 그녀를 평가했습니다.
한강 작가의 대표작인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등은 전 세계에서 폭발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에서 그 인기가 더 여실히 체감되는 요즘이죠. 이른바 ‘한강 신드롬’이라고 일컫는데요. 교보문고의 16일 판매 부수 발표에 따르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 10일 오후 8시부터 16일 오전 9시까지 한강 작가의 저서는 교보문고에서만 총 39만 부가 판매되었다고 합니다. 동아일보는 이러한 국내 출판사 3사의 통계를 취합하여, 전자책을 포함한 한강 작품 누적 판매량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15일 오후 4시를 기준으로 총 판매량은 105만 부, 이 지점까지 소요된 기간은 단 5일, 예상 인세는 15억 원, 그리고 예상 총판매 수익은 153억에 달한다고 하는데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로 사양산업 카테고리에 발이 묶여 있던 출판업에는 가히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죠.
이에 따라 ‘텍스트힙(text-hip)’ 문화를 향유하는 MZ세대도 한강 작가의 작품들을 부지런히 음미하는 중입니다. 실제로 앞서 언급하였던 교보문고 판매 부수 관련 발표에서도 구매자층 중 30대가 가장 높은 비율인 28.9%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으니까요. 텍스트힙 문화란 젊은 세대가 문학을 현대적이고 세련되게 소비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활자를 소비하는 것을 일종의 멋이자 가장 효과적인 간접 경험의 형태로 여기는 문화를 말하는 것이죠. 그렇지만 일각에서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젊은이들의 독서를 표방한 ‘보여주기식 문화’가 지나치게 심각하다고 비난합니다. ‘책을 읽는 나’에 취한 젊은 세대들이 독서하는 모습을 SNS에 자랑하기에만 바쁠 뿐이라는 것이죠. ‘지적 허영심’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우며 진정으로 독서 문화를 사랑하지도 않는 젊은이들이 소위 ‘있어 보이려고’ 도서를 구매하고 서점에 방문해 사진을 찍어 간다고 여깁니다.
이러한 사회의 일부 인식은 2주 전 방영된 SNL 코리아에서의 ‘한강 작가 인터뷰 패러디’ 장면이나 ‘MZ들의 독서 모임’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나는데요. 해당 장면들에서 배우들은 게슴츠레한 눈을 뜨고 천천히 발화하며 ‘한강 작가의 수상 소감’을 모방하거나, 독서 모임 장면에서 “여성인데 우먼 부커상이 아니라 맨 부커상을 받으셨네요”라는 대사를 내뱉습니다. 무엇이 풍자고 무엇이 조롱인지, 비난은 무엇이고 비판은 무엇인지 다시금 반추하게 만드는 사례입니다.
텍스트힙 문화의 확산은 이제 막 걸음마 단계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 이를 겉핥기식 문화라고 비판하기에는 근거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제 막 활자가 가득한 종이책을 서점에서 직접 구입하는 것의 재미를 깨닫고, 활자로 읽는 세상을 향유하는 세대가 되어가는 중이죠. 아시아 경제 류정민 기자는 MZ세대의 텍스트힙 문화가 반갑다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텍스트힙 열풍의 숨겨진 배경이 무엇이건, 그러한 행동은 사회 변화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 선물로 건네진 시집이 상대 심장을 경쾌하게 요동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들도 알아 버렸다. 텍스트힙 열풍이 다른 세대로 확장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Z세대 마중물이 사라져 가던 동네 책방에 온기를 불어넣는 모습, 상상만으로도 흥분되는 장면 아닌가.”
독서는 간접 경험 중 가장 과감하고 능동적인 방식으로 타인의 삶을 체득할 수 있는 수단입니다. 텍스트힙 문화를 통해, 진정으로 사람들이 잠시 저물어가던 종이책의 낭만과 그 안에 적혀있던 오돌토돌한 활자들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요? 너무나 다양하고 낯선 모습으로 변화하는 사회에서, 한 떨기의 독서가 많은 사람들에게 든든한 마음의 양식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텍스트힙 문화가 모든 세대에게 더욱 진정한 의미로서 만연히 자리 잡아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