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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희 Jan 28. 2024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3)

말 한 대로,  되기까지.

4월,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대한민국이 들썩인다.  


그때도 그랬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 때였다.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하는 삼천포 신수동 사람들이  검붉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분통을 터트렸다. " 아, 배를 대게 해야지.  호남사람들 말이야. 선거철만 되면  원수가 그런 원수가 따로 없으니 어떻게 입항을 하냐고!"


알고 보니 선거 때 만 되면 상대 후보지역 사람들이 항구에 배를 대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어로 중간 지점에서 연료나 기타 생필품 보충도 할 수 없고,  어획물 판매를 못 한다는 것이다. 이 쪽 경남 해안도 마찬가지였다. 호남지역 배들이 입항하는 것을 막았다. 다툼이 심했고 갈등이 깊었다.


그동안 서울에서 자라왔던 나는  두 지역의 갈등의 골이 깊다는 것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 직접 겪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인가, "나는 이도저도 아닌 중간지역인 대전에서 낳아야지, 지역다툼 보기 싫으니."

언제나 잉태의 은총을 받을지 알 수는 없었으나, 아주 희망의 끈을 놓지는 않았는지…


아침 바다는 만선을 꿈꾸며  출항하는 뱃고동 소리가 금빛물결을 타고 반짝였다. 언덕 위 하얀 예배당 종소리도 무사귀항을 기도하는 듯  항구 가득 울려 퍼졌다. 신수교회는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렇지만 해 질 녘, 고운 노을이 저만치서 바닷속으로 잠수할 때쯤이면 네모 진 콘크리트 마당가 화단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발이 많은 긴 절지동물, 지네였다. 원래 섬에는 지네가 많다고 들었는데, 말 그대로였다.

한 번은, 새벽예배를 드리고 사택 방으로 들어왔다. 형광등 스위치를 누르자 어둠이 싹 물러나고 하얀 벽이 보였다. 위에서부터 사면을 샅샅이 훑어 내려 보았다.


전에도 가끔 천장이나 벽 모서리에 지네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파리채로 탁 쳤는데 방바닥으로 떨어졌다가 장롱 밑으로 들어가 버렸었다. 우린 잠을 포기하고  지네가 나오길 기다려야 했었다.  사방이 조용하고 반조명을 해서 어스름했었는데 우리 귀에 사각사각 지네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었다. 남편은 형광등 스위치를 딸깍 켜서 환한 흰 벽에 붙어있는 지네를 실수 없이 빈병 속으로 들어가게 했었다. 더구나 남편은  자다가 발도 물리고, 귓속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잠결에  느끼고 떨쳐버리는 등 위험천만한 순간도 있었지만 별로 개의치 않고 그러면 그런대로 잘 지냈었다.

출처: pngtree.com



나는 그렇지 못했다. 방이건 어디건  일단 훑어보고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선지, 유난히 내겐 더 잘 보이곤 했었다.


방바닥엔 이부자리가 자고 일어난 그대로였다. 아직 동이 트려면 멀어서 따스한 잠자리로 다시 들어 누우려는 순간 베갯잇 레이스가 아주 가볍게 떨리는 것을 보았다. 레이스 사이에서 더듬이가 작게 움직이고 지네의 빨간 눈과 마주쳤다. '아앗! 여보옷, 지네!!! '


그 후론 병적으로 조심하고 경계하게 되었다. 자리옷을 발목이나 손목에 고무줄을 넣어  일명 소시지 바지 등으로 만들어 입었다

자더라도 개미 한 마리 들어가지 못하도록.


이렇게 발이 많거나 긴 절지동물 후유증은 지금도 여전하다. 남들은 이롭다기도 하던 그리마도 너무 싫다. 단독 주택을 떠나 아파트에 거주하게 된 이점 중의 하나가 이 싫은 것들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진주까지가 삼천리라던가. 이곳에 오고선 친정아버지 고희 때 한 번 다녀왔다.  버스로는  여섯 시간 이상, 여덟 시간까지 걸리기 때문에 명절에도 대구 시가까지 갔다 돌아오곤 했다.  사천서 한번 있는 비행기로 서울 친정을 갔는데 김포공항서 시내 들어가기도 쉬운 길이 아니었다.


그렇게 다섯째 해 나던 해, 오월에 대전 가까운 충남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상행 서울, 하행 대구의 딱 중간 지역이어서 좋았다.  양가 연로하신 어른들에 대한 걱정이 삼천포에 있을 때보다 덜했다. 가까워진 거리만큼.


제목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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